보잉은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입력 2020.04.03 03:00

'코로나 19' 직격탄 맞은 보잉

에어 유로파의 보잉 737 맥스 항공기가 미국 캘리포니아 빅토리빌에서 운항 재개를 기다리고 있다. 기체 결함으로 사망자를 낸 보잉 737 맥스는 보잉사의 베스트셀러 항공기인 737의 최신형 기종으로 전 세계에 약 350대 판매됐다.
에어 유로파의 보잉 737 맥스 항공기가 미국 캘리포니아 빅토리빌에서 운항 재개를 기다리고 있다. 기체 결함으로 사망자를 낸 보잉 737 맥스는 보잉사의 베스트셀러 항공기인 737의 최신형 기종으로 전 세계에 약 350대 판매됐다. /블룸버그
지난달 17일(현지 시각) 미국 최대 제조업체이자 군산복합체인 보잉이 미국 정부에 무려 600억달러(약 77조4000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요청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이야기에 뉴욕 주식시장이 들썩였다. 보잉은 지난 1월 138억달러(약 17조8000억원)의 은행 대출을 받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주거래은행 대출 한도가 소진돼 정부에 SOS를 치는 모습을 보이자 '절대 망할 리 없다'는 미국 간판 기업의 심각한 자금난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면서 월스트리트에 충격을 줬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제너럴 모터스(GM)에 투입됐던 구제금융 금액(360억달러)보다 67%나 많은 수준이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미 반 토막이 났던 보잉의 주가는 이날 25% 넘게 폭락했다. 올 들어서만 주가가 70% 넘게 급락해 지난 18일엔 89달러까지 미끄러졌다. 다우존스지수의 대장주가 폭락하자 투자 심리는 더 나빠지는 악순환도 반복됐다. 최근 영국계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보잉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2단계 대폭 내려잡는 등 금융권에서 보는 보잉의 향후 전망도 어둡다. 여기서 한 단계만 더 떨어지면 보잉이 투자부적격 등급 회사가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보잉을 돕겠다. 보잉의 잘못이 아니다"라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의 상징' GM이 2008년 금융 위기로 휘청이다가 파산했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37 맥스 사태에 코로나 충격 겹쳐

보잉은 최근 잇따른 악재가 겹치며 창사 후 최악의 시기를 겪고 있다. 2017년 출시한 비행기 '737 맥스(Max)'가 기체 결함으로 잇단 추락사고를 냈던 게 도화선이었다. 737 맥스는 기수 센서 소프트웨어 결함 등 복합적인 원인이 겹치며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 작년 3월 에티오피아에서 추락했다. 각각 189명과 157명이 숨지는 참사였다. 737 맥스기는 두 사건의 여파로 지난해 3월부터 전 세계 40여국에서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주력 항공기의 운항 중단으로 보잉은 지난해에 6억3600만달러(약 8200억원) 적자를 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운항 허가 재발급을 기다리며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상황에서, 우한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발주 취소와 납품 연기가 잇따르는 악재를 만난 것이다. 이 사이 보잉 경쟁사였던 에어버스는 세계 비행기 제조 1위 자리를 꿰찼다. 지난 1월 보잉이 상용기 주문을 한 건도 받지 못한 사이 에어버스는 274건을 발주받았다.

데이비드 캘훈 보잉 CEO가 투자자 설명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데이비드 캘훈 보잉 CEO가 투자자 설명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블룸버그
보잉 / 데이브 캘훈
전문가들은 보잉의 위기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최근 미국 하원 교통위원회는 737 맥스 사고에 대한 중간보고서에서 개발 일정을 재촉한 사내 프로세스를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저비용항공사(LCC) 붐이 일자 에어버스는 소형 기종인 A320과 파생 기종 수주를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이에 다급해진 보잉이 737 맥스 개발과 생산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사내 엔지니어들에게 "평소보다 2배 빠른 속도로 설계작업을 진행하라"고 독촉할 정도였다고 한다.

비밀주의가 만연한 보잉의 기업문화도 난제로 꼽힌다. 평소 고객인 항공사는 물론 감독 당국인 미국연방항공청(FAA)에까지 은폐하는 사실들이 많아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보잉이 737 맥스 사태 당시 논란의 중심이었던 '조종특성향상체계(MCAS)'의 설계 결함을 인지하고서도 항공사에 알리지 않은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 이러한 결함을 숨기려고 FAA 담당자를 포섭하거나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사람을 감독직에 앉히는 등 로비 활동에 열중한 것도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고용 감축 등 허리띠 졸라매기

데니스 뮬렌버그 전임 보잉 최고경영자(CEO)는 737 맥스 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의 뒤를 이어 올해 초 취임한 데이비드 캘훈 CEO는 일단 허리띠 졸라매기로 대응에 나서는 중이다. 이달 중순 사내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선 당분간 신규 고용을 중단하고 초과근무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또 CEO와 이사회 의장 등 상당수 임원이 올해 임금을 반납하기로 했다. 또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주가 부양을 이끌었던 자사주 매입도 중단하고, 배당금 지급도 올해는 보류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보잉의 배당금 지급액은 46억달러에 달했는데, 정부에 자금 요청을 한 만큼 투자자들에게도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감원 가능성이다. 보잉은 이르면 다음 달 중 직원을 감원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행 수요가 급감하고 있는 데다, 737 맥스 운항 재개가 늦춰진다면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만 10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보잉은 9·11 테러로 항공기 수요가 급락했던 2001년 3만명을 일시 해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보잉의 이번 조치가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한다. 투자분석업체 로버트 베어드의 피터 아멘트 애널리스트는 "보잉 투자자 일부는 보잉이 초과근무 등을 제한해 생산 여력을 줄일 경우 발주받은 항공기 인도가 그만큼 지연되고, 이 때문에 다음 분기에 자금 흐름이 더욱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말했다.

보잉 매출 추이
므누신 "세금 투입 고려 안한다"

미국 정부는 일단 보잉의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최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항공업계 전반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보잉에 세금을 투입하는 방안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캘훈 CEO도 최근 인터뷰에서 구제금융 가능성을 일축하며 "만약 의회나 정부가 지분 매입을 시도한다면, 우리는 다른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잉의 위기가 아직 현재 진행형이라 자금난이 어떤 식으로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600억달러의 대출 요청안이 사실상 반려된 만큼 부족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자구안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 의회를 최근 통과한 경기 부양안에는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산업에 170억달러의 대출 지원'을 해준다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를 전부 보잉이 사용하지 못할뿐더러, 지원액도 보잉이 당초 요청한 금액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뿐 아니라 민간 백기사를 찾아 자금 수혈을 받아야 부품 업체 등 하도급업체의 연쇄 도산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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