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獨·EU의 빅테크 규제

입력 2020.03.20 03:00

[美, 소기업 인수·합병 과정 정밀조사… 불법 확인땐 기업 분할 명령 내릴수도]

미국
미국이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IT 공룡'들의 '디지털 독과점'에 본격적으로 칼을 빼든 것은 작년 중순 무렵부터다. 연방정부와 의회, 주 검찰 등이 가히 파상적인 기세로 '공룡'이라 불리는 이 네 업체에 대해 동시다발로 조사에 착수해 IT 업계가 요동을 쳤다. 기업들의 반독점과 경쟁 정책을 담당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올해 초부터 이 반(反)독점 조사 범위를 소규모 스타트업 인수까지 확대했다. 그동안 반독점 조사는 주로 대규모 기업 간 결합이 독과점을 형성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왔는데, 더 세심하게 반독점 여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조셉 사이먼스 FTC 위원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알파벳(구글 지주회사),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다섯 곳의 기술 기업에 2010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최근 10년간의 소기업 인수·합병(M&A) 관련 자료를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FTC와 법무부의 M&A 신고 기준(9400만달러)을 넘지 않는 소규모 인수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이 4개 기업은 대규모의 벌금 및 법적 규제를 받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기업 분할 명령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이 가격 인상 등으로 소비자 이익을 훼손했다는 증거가 없으면 반독점법 위반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직 어떤 결과로 흐를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FTC는 2011년 구글의 시장 지배력 남용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2년여 만에 조사를 종료해 체면을 구긴 적이 있다. 최근 FTC가 현미경을 들이댄 인수·합병 조사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와츠앱을 합병했을 때와 아마존이 홀푸드를 인수했을 때 등 대부분의 중요한 M&A는 이미 FTC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기업들의 인수·합병이 인공지능(AI)에 집중되고 있는 까닭에 기업 활동을 제약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조셉 시먼스 미국 연방공정거래위원회장(앞줄 왼쪽)과 미국 검찰 반독점국 간부가 워싱턴에서 열린 청문회에 참석해 미국 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조셉 시먼스 미국 연방공정거래위원회장(앞줄 왼쪽)과 미국 검찰 반독점국 간부가 워싱턴에서 열린 청문회에 참석해 미국 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블룸버그
공화·민주 양당 모두 규제 목소리

앞서 미 정부는 이미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보호 위반 실태를 조사해 사상 최대인 50억달러(약 5조9000억원)의 벌금을 매겼다. 또 마크 저커버그 회장이 직접 고객 사생활 보호 준수 여부를 보고하도록 하는 합의안을 승인하는 등 이미 일부 조사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 결과를 내고 있는 중이다. 페이스북이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 쪽의 정치 컨설턴트였던 영국 데이터 분석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에 최대 8700만명의 이용자 개인정보를 유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특히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미 정치권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구글·페이스북·애플·아마존 문제만큼은 민주·공화 양당의 입장이 일치하고 있다. 주 정부 검찰은 연방 정부가 너무 느리게 움직인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의회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지난해 초부터 '구글 해체'를 주장했으며 "이제는 반격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화당 의원들은 구글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보수 여론을 억누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글이 검색 결과에서 보수 진영 뉴스를 억압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EU, 구글에 과징금 10조원… 아마존도 조사]

유럽연합
테크 기업으로부터 개인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을 시행한 유럽을 상징하는 이미지. /블룸버그
유럽연합(EU)은 10여 년 전부터 테크 기업의 독과점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EU와 가장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기업은 구글. EU는 2010년부터 7년에 걸친 조사 끝에 2017년 구글에 기념비적인 첫 과징금을 부과했다. 과징금 규모만 24억유로(약 3조원)에 달해 불공정 거래 혐의로 단일 기업에 부과한 벌금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이듬해엔 구글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운영체제로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43억4000만유로(약 5조7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019년엔 온라인 광고 시장의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 경쟁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14억9000만유로(약 1조9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EU는 구글에 이어 지난해 중반부터는 아마존을 대상으로 고강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제3자 판매 정보 남용 등 반(反)독점법 위반이 주요 혐의로, 아마존이 플랫폼 사업자이면서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 사업자라는 이중 지위를 남용했는지를 조사 중이다. 아마존이 독립적 상품 판매업자들의 민감한 정보를 악용해 경쟁 우위를 점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조사단은 소비자가 ‘구매하기’ 버튼을 눌렀을 때 어떤 판매업체에 연결되도록 할지를 결정하는 데 아마존이 어떤 자료를 활용하는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더불어 프랑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달 중순 애플이 시장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프랑스 독립 소매업체들의 정상적 가격 경쟁을 방해했다고 판단했다면서 11억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EU는 개별 기업뿐 아니라 테크 기업 전반을 대상으로 한 규제도 전 세계에서 가장 발 빠르게 도입 중이다. ‘개인정보보호법(GDPR)’이 대표적이다. EU 시민권자의 개인 정보를 다루는 기업에 정보 보호 의무를 강화하고, 모든 외국 기업은 EU에 지사가 있건 없건 개별적으로 EU의 심사를 거쳐야 EU 내 거주자의 개인 정보를 EU 밖으로 가져갈 수 있게 했다. 또한 기업들은 개인 정보가 포함된 빅데이터를 다룰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정보 보호 책임자를 고용해야 한다. EU 시민은 인공지능(AI) 등이 자동으로 시행하는 평가를 거부할 권리를 지닌다. 개인은 불필요한 정보를 삭제하는 ‘잊힐 권리’도 보유하게 된다. 출장이나 여행으로 EU 역내에 있는 본국 직원 정보, 유럽 직원의 인사 정보를 본국에서 관리하는 것 등도 모두 규제 대상이다. 이를 어길 시 최소 1000만유로(약 129억원)의 과징금을 내게 했다.

콘텐츠 제작자 보상도 강화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끄는 EU팀은 최근 반독점 규제의 하나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빅데이터를 중소 IT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검토 중이다. 독점 데이터를 공개해야 경쟁 구도가 공평해질 수 있다는 취지다. 해당 기업들이 거세게 반발 중이지만, EU는 이미 금융 산업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고객 데이터 공유가 이뤄지고 있어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가령, 대형 금융회사나 자동차 기업들은 현행 규정상 제3자의 고객 정보 접근을 허용해야 하는데, IT 기업은 데이터를 움켜쥐고 있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게 EU 측 주장이다.

유럽의회는 2년 전엔 테크 기업을 겨냥해 온라인 플랫폼에서 작가와 예술가·언론 등 콘텐츠 제작자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저작권 지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뉴스 콘텐츠를 노출하면 해당 제작사에 구글 등 관련 기업이 일정 비용을 지급하게 하는 한편, 글·음원·이미지 등에 대한 검열을 의무화해 콘텐츠 무단 복제를 막도록 했다.

[獨, 빅테크 맞서 독자 클라우드 서비스 '가이아X' 출범]

독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올해 1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독일 기업의 핵심 위험 요소는 테크 기술을 독점한 미국과 중국 기업에 잠식당하는 것이라면서, 독일 기업의 최우선 과제는 빅테크 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완전히 독립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독일 정부는 지난해부터 자체 클라우드 서비스를 구축하는 ‘가이아X’를 출범했다. 그리스 신화 속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에서 이름을 땄다. 독일 공공 기관과 주요 기업들이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아마존 등 미국 IT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자체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골자다. 프로젝트에는 지멘스, 보쉬, SAP 등 독일 IT 기업들이 대거 참여 중이다.

연방 행정집행기구의 권한도 대폭 강화 중이다. 독일 정부가 제시한 디지털법 초안은 기업 간 담합을 규제하는 기관인 독일 연방 담합규제청(Bundeskartellamt)의 개입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은 연방담합규제청이 아마존 같은 플랫폼 서비스 회사가 자사 제품에 특혜를 주는 행위를 금지할 수 있다. 테크 기업의 특정 시장 지배 여부를 더 쉽게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독일 정부는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 독점을 견제하려 데이터 보호 감독청인 ‘데이터 보호와 정보 자유를 위한 연방위원회(BFDI)’의 권한도 대폭 늘렸다. 1978년 설립된 BFDI는 데이터 보호·감시와 자문 등의 업무를 맡고 있고 조사 권한을 지니고 있다. 데이터 보호법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경고하거나 지시를 내릴 수 있다. 독일 의회는 예산을 투입해 기존 250개 직책에 더해 지난해 말 추가로 67개의 새로운 직책을 만들어 조직을 대폭 확장 중이다. BFDI의 대표가 유럽데이터보호위원회의 위원장도 겸직하면서 유럽 데이터 감독의 총괄 역을 맡고 있다. 독일이 유럽의 통일성 있는 데이터 보호 정책을 펼치도록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독일 정부 관료가 정부 주도 클라우드 서비스인 가이아X를 소개하고 있다
독일 정부 관료가 정부 주도 클라우드 서비스인 가이아X를 소개하고 있다. /블룸버그
기업이 직접 문제 게시물 점검해야

약 2년 전부터는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겨냥해 강력한 규제를 시행 중이다. 허위 정보를 제때 관리하지 않은 플랫폼 서비스 기업에 벌금을 물리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 독일 정부로부터 허위 정보 게시물 삭제 통지를 받으면 24시간 이내로 회사는 게시물을 삭제해야 한다. 지난 2월 말 새롭게 상정된 법안에 따르면 여기에서 한층 더 나아가 기업들은 특정 혐오 발언 게시물을 삭제하고 이 내용을 연방 형사청(BKA)에 보고해야 한다. 사용자 프로필에서 가장 최근에 이용한 IP 주소와 포트 번호를 경찰에 제공하는 형식이다. 사법 당국이 아닌 일반 기업이 법을 해석하고 이를 집행하게 만든 규제 안이라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만, 독일 정부는 연이어 빅테크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조세 정책 역시 독일 정부의 주요 관심사다. 올라프 숄츠(Scholz) 독일 재무장관은 지난 2월에도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를 앞두고 각국 재무장관들이 빅테크 기업에 조속히 세금을 부과해야 함을 재차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도 중인 디지털세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숄츠 장관은 “늦어도 올해까지 디지털세가 시행되지 않으면 세계의 조세 시스템이 분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거래하라"… 日, 新디지털법 제정]

일본
지난해 11월 12일 도쿄의 총리 관저에 미국의 빅테크 4인방인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간부들이 모였다. 일본 정부가 대형 IT 기업들의 시장 독점 행위를 규제하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 거래투명화 법안’을 확정하기에 앞서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신(新)디지털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안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앱 안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대형 IT 기업들의 거래 투명성을 확보하고 공정한 거래 환경을 만들자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법안은 지난 2월 일본 정기국회에 제출됐다. 아베 총리가 올해 초 시정연설에서 디지털 시대에 맞춘 규제 필요성을 언급할 정도로 이 법안은 일본 정부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8년부터 이 신디지털법을 준비했다. 데이터와 인터넷 플랫폼이 일본 경제의 중심 요소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2000년 일본 시장에 진출한 아마존은 일본 내 회원 수 4963만명(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일본의 토종 전자상거래업체인 라쿠텐(4677만명)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법안에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뿐만 아니라 일본 토종 IT 기업인 라쿠텐과 야후도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핵심은 투명한 거래다. 가령, 이 대형 IT 기업들이 계약 조건을 변경할 경우 이를 거래 기업에 사전에 고지해야 한다. 또한 사이트 내의 검색 순위 표시가 조작되지 않았는지 설명할 의무도 담았다. 1년에 한 번 사업 운영 상황도 경제산업성에 보고해야 하는데 서비스 이용자들로부터 접수한 불만 사항도 포함해야 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디지털 과세 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디지털 과세 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블룸버그
일본 정부는 독점금지법 강화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도 병행해 대형 IT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 단속에 나섰다. 대형 IT 기업들이 자사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집중 판매해 비정상적으로 시장점유율을 늘리거나 유망한 스타트업을 마구잡이식으로 인수해 시장을 독점하는 행위를 차단할 방침이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에는 이용자가 기업에 개인 정보 이용 정지를 요청할 수 있는 ‘이용정지권리’ 항목도 담았다. 플랫폼 기업들이 인터넷에서 각종 무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이용자들로부터 데이터를 부당하게 취득하는 일을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어길 시 경제산업성 대신(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권고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독점금지법 위반이 인정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당 기업에 구체적인 대책을 요청할 수 있다.

일본판 디지털세 도입 공론화

일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도로 논의가 한창인 디지털세 도입에도 의욕을 보이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실제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수익을 내고 있는 국가에 정당하게 세금을 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지난 2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미국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미국의 빅테크 기업이 디지털세 납부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적용면제’ 제도를 주장하고 나서자 “디지털세의 효과를 크게 손상하는 시도”라며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일본판 디지털세 도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 아베 정권의 세제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은 지난해 12월 빅테크 기업들을 겨냥해 “디지털 경제에 맞춘 세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2020년도 세제 개정 방향에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를 이용해 조세를 회피하는 글로벌 기업에 세금 부담을 적정화한다는 항목을 명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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