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독점 규제해야 경쟁 촉진… 결국 경제 성장에 좋다"

입력 2020.03.20 10:54

[Cover Story] 빅테크 규제 전문가들은 말한다
'테크기업 저승사자' 베스타게르 EU집행위 부위원장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디지털·경쟁 담당)은 '실리콘밸리 테크기업의 저승사자'로 통한다. 2016년 애플에 세금 회피를 이유로 30억유로(약 4조원)를 추징하기로 한 데 이어, 구글엔 시장 지배력 남용을 근거로 들어 2017~2018년 벌금 67억달러(약 8조1000억원)를 부과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그와 논쟁하다 분을 참지 못해 고함까지 질렀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장클로드 융커 전 EU집행위원회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당신네 '세금 여사(tax lady)'는 미국을 정말 미워하는 것 같다"고 불평했을 정도다.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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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타게르는 2014년부터 EU집행위원회 경쟁정책 담당 총괄 책임자를 맡았고 지난해 말엔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가 내리는 결정은 유럽에서 활동하는 기업들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터라 EU 집행위 위원 중에서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뜨거운 주목을 받는다. 베스타게르는 갈수록 달아오르는 빅 테크 업체(거대 IT 기업) 독점 규제와 관련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지난해 말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행사에 참석한 베스타게르 부위원장을 만나 그 속내를 물어봤다. 그는 "광범위한 법을 제정했지만, 어떻게 집행할지 많은 고민거리가 있다"면서 "디지털 과세는 지금보다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크기업 규제는 경쟁 활성화 목적

―EU가 빅 테크 업체들에 까다로운 규제를 잇따라 내리면서 혁신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Cover Story] 빅테크 규제 전문가들은 말한다
"잘못된 인식이다. 우리는 경쟁을 돕는 규제를 내린다. 그건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규제는 거대 자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다. 기술은 궁극적으로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기업에만 봉사하는 게 아니다. 유럽이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개인정보보호법)을 추진했던 건 개인이 가진 디지털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당연하고 필요한 조치다. 일부 빅 테크 기업이 데이터를 독점하면서 기득권을 쥐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활개를 치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술 발전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전도유망한 중소기업들이 발을 못 붙이게 한다. 우리는 기술이 가진 낙관적 잠재성을 다시 살리고 전체적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분야가 있나.

"온라인 결제 시장이다. 이곳에선 기존 빅 테크 업체와 신생 업체 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빅 테크 업체 횡포로 중소기업이 혁신 서비스를 내놓기 어렵게 되는지 관찰하고 있다. 특히 애플 페이에 대해 많은 제보와 의견이 쏟아진다. 아마존을 비롯한 다른 거대 기업에 대한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불공정 경쟁이 얼마나 심하게 이뤄지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구글에 대해선 이미 벌금을 때렸지만 계속 구글의 안드로이드 OS(운영체제)나 구글 쇼핑 검색 결과 등을 정밀하게 점검하고 있다.

소비자 데이터 부당 사용 추적할 것

―구글에 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사람들은 과징금을 얼마나 매기느냐에 관심이 많지만 과징금은 과거 잘못에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과징금 역시 불법 행동을 중단하게 만드는 수단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업이 미래 행동을 바꿀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작업이다. 구글 쇼핑만 놓고 보면 지금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사용자에게 보여줘야 한다. 구글뿐 아니라 다른 빅 테크 업체들도 뭐가 사용자에게 최선인지를 기준으로 기업 활동을 새로 설정해야 한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규제가 더 필요한가.

"테크 기업이 합병할 때 각자 갖고 있던 데이터를 합치는 과정을 눈여겨본다. 이러한 '데이터 합병'이 진입장벽을 쌓고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지가 관건이다. 테크 업체들은 앞으로 소비자들이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남기는 흔적을 엄청나게 활용해서 기업 이득을 챙기는데 이런 행태를 개선해야 한다. 흔적을 추적하는 행위를 줄여야 한다."

―빅테크 기업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떤가.

"해체가 불법 행동을 막는 정답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반드시 빅 테크 기업을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 선택지에서 해체를 완전히 배제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아직은 그들 스스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본다. 해체론은 본질을 꿰뚫지 못한다. 키메라(Chimera·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수)의 목을 자른다고 해서 괴물이 쓰러질까. 목을 하나 치면 또 다른 목이 하나둘 다시 자랄 것이다.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반발이나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민주적 공론장 훼손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 업체들이 정치 광고를 무분별하게 노출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미국 의회에서 벌어진 페이스북 청문회를 유심히 지켜봤다. 페이스북 정치 광고는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전제 조건은 개방성이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 공론의 장은 팩트(사실관계)가 정확해야 하고 이에 대한 반박 논리가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페이스북 정치 광고는 이른바 '개인 맞춤형 전략(microtargeting)' 과정을 거쳐 특정인에게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공론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누구에게 투표할지 '조종(manipulation)'되는 셈이다. 그걸 페이스북은 알고리즘 탓으로 돌린다. 그런 식으로 책임을 미루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알고리즘을 운영하는 건 누군가.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그걸 돈벌이로 삼고 있다. 강력한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

―성장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나.

"아버지는 지역 정치인이셨다. 아침마다 신문을 펼치시면서 세상이 엉망이라고 불평하셨다. 그러면서도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단지 불평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의견이 다르다고 잘못된 게 아니다. 실수하는 것도 아니다. 원래 세상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다. 다만 뭐가 옳고 그른지 나름대로 판단하고 그걸 토대로 타협하고 조화를 이룬다."

루터교 목사 딸로 자란 베스타게르는 덴마크 코펜하겐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25세에 증조부가 세운 사회자유당을 통해 정계에 뛰어들었다. 2011년 총선에서 사회자유당을 이끌었고, 연정을 통해 부총리까지 지냈다. 그의 정치 여정은 덴마크 인기 정치드라마 '보르겐(Borgen)'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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