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셔먼법이 최초, 1911년 록펠러가 설립한 '스탠더드 오일' 34개 회사로 강제분할… 아메리칸 토바코·NBC·AT&T도 분할 명령

입력 2020.03.20 03:00

미국 반독점 규제의 역사

1911년 미국의 대표적인 독점 기업이었던 ‘스탠더드 오일’ 근로자들의 모습.
1911년 미국의 대표적인 독점 기업이었던 ‘스탠더드 오일’ 근로자들의 모습. /히스토리센트럴
미국 정부가 산업계의 독과점 시장에 개입했던 첫 사례는 밴더빌트(Vanderbilt)의 철도 왕국이었다. 밴더빌트 가문은 1860년대 뉴욕 중심부를 관통하는 뉴욕중앙철로를 보유하며 정·관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동시에 오만한 태도로 종종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밴더빌트는 우편열차 영업 중단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망할 놈의 대중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답변했다. 또 독과점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겐 "소송할 것도 없이 당신을 부숴버리겠다"고 독설을 내뱉으며 대중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이런 와중에 미국 정부는 1887년 철도회사의 불합리한 요금 부과와 요금 체계의 투명한 공개 등을 골자로 하는 '주간(州間) 통상법'을 만들어 철도 업계의 사업 구조와 요금 체계에 개입했다.

그러나 주간 통상법은 독과점 시장 구조를 바꾸는 법은 아니었다. 미국의 반독점 규제 역사는 1890년 제정된 셔먼법이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국내외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어떤 방식의 연합과 어떤 형태의 독점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셔먼법이 제정되자마자 독점기업이 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후 10여년간 미 행정부가 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8건의 소송 중 7건이 패소 판결을 받았을 만큼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법에 워낙 구멍이 많아 되레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대형 노조 결성을 방해하는 방패막이로 쓰였다.

반독점법은 1900년대 들어 더욱 구체화됐다. 1903년에 법무부 내에 독점금지국을 설립한 데 이어, 1914년 가격 차별, 끼워팔기 금지 등을 포함한 클레이턴법과 연방거래위원회법을 새로 제정했다. 반독점 규제 기관인 연방거래위원회(FTC)도 이때 설립되면서 반독점 규제 체계가 완성됐다. 이 무렵 취임한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은 재임 기간 무려 90건의 반독점 소송을 제기해 '독점기업 파괴자(trust buster)'라는 별명도 얻었다. '포퓰리스트'로 여겨진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임 대통령의 소송 건수(44건)의 2배 수준이었다.



철도왕과 석유왕에게 철퇴

미 정부의 반독점법이 처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은 1911년 세계 최대 기업이었던 스탠더드 오일에 분할 명령을 내리면서부터다. '석유왕' 존 D 록펠러가 1870년 설립한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전역의 석유·철도 회사를 인수하면서 20년 만에 미국 석유 시장의 88%를 장악했다. 록펠러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10억달러 이상 자산을 축적한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실질 화폐가치 기준으로 따져보면 아직도 역대 최고 부자로 추산된다. 하지만 경쟁 업체에 운송 요금을 비싸게 부과하고 무자비한 사업 확장 과정에서 영향력을 남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미국 정부는 수년에 걸친 재판 끝에 스탠더드 오일을 34개 회사로 강제 분할했다. 같은 해 미국 담배 시장의 90%를 장악했던 아메리칸 토바코도 셔먼법의 적용을 받아 16개 회사로 강제 분할됐다.

반독점법은 이후에도 종종 영향력을 발휘했다. 미 행정부는 1942년에는 미국 방송 산업을 독점했던 NBC를 강제 분할했다. 1984년에는 미국 통신 업계를 독점했던 AT&T를 지역 사업별로 쪼갰다. 1990년대 이후에는 IT 분야가 주요 규제 대상으로 등장했다. 1998년 클린턴 행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PC용 운영체제(OS)인 윈도와 인터넷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를 결합 판매하는 것은 반독점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정부 주장을 받아들여 MS를 2개 회사로 분할하라고 판결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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