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처럼 사용자 정보를 저장고에 모으면 언젠가 도둑 들 것"

입력 2020.03.20 03:00

[Cover Story] 빅테크 규제 전문가들은 말한다
'구글의 종말' 저자 조지 길더

조지 길더(Gilder)는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 스타로 꼽히는 철학자이자 사상가다. 40년 전 펴낸 '부와 빈곤(Wealth and Poverty)'은 레이건 행정부 시절 경제 복음서로 통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자유로운 기업 활동과 감세 정책을 적극 옹호하는 길더 주장에 반해 이 책을 관료와 정치인들에게 적극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주의자들은 길더가 "복지제도는 가난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 성공하도록 유도하는 자극을 박탈하기 때문에 이롭기보다는 해가 더욱 많은 것"이라고 역설하자 환호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보다 중요하다"면서 "자본주의 없는 민주주의는 사회민주주의인 셈인데 역사적으로 실패한 모델"이라고 말했다.

이위재 기자
이위재 기자
마흔 살 이후엔 첨단 과학기술에 눈을 떠 뒤늦게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실을 찾아가 물리학과 미적분, 양자역학을 공부한 다음, IT(정보기술) 분야에 대한 통찰력 있는 저작을 잇따라 내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텔레비전 이후의 삶'(1989년 출간) '마이크로코즘 : 경제학과 기술에서 퀀텀 혁명'(1990년) '텔레코즘'(2000년), '지식과 권력'(2013년) 등이 그 성과물이다. '텔레코즘'에서 길더는 반도체 성능 자체보다 반도체가 들어간 기기들이 '연결'됐을 때, 즉 광통신망으로 묶인 네트워크의 힘이 정치와 경제, 문화 전반을 변화시키는 동력이라고 진단했다. 2018년 내놓은 '구글의 종말(Life After Google)'은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한때 구글 검색엔진을 향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그가 왜 태도를 바꿨을까.

구글 공짜 광고 모델은 개인 자유 희생 기반

[Cover Story] 빅테크 규제 전문가들은 말한다
길더는 "구글이 만든 시스템은 실패한다"면서 "중앙 집중화된 인터넷으로 구축한 구글의 시대는 종말(eschaton)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시대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길더는 올해 81세. '우리 시대'란 표현은 다소 급진적으로 들렸다. 멀지 않았다는 의미다.

왜 그렇게 보고 있을까. 그건 구글이 가진 수익 모델의 근본적 한계 때문이다. 그에게 구글은 광고회사다. 구글은 사용료를 받지 않는 대신 온갖 광고로 화면을 도배한다. 악성 소프트웨어는 덤이다.

구글 사용자들은 구글을 공짜로 쓰는 대신 광고를 봐야 한다. 공짜를 위해선 보안이 뒷전일 수밖에 없다. 길더는 "구글은 기본적으로 '공짜인데 사용자 정보를 누가 좀 훔쳐가면 어떠냐'는 태도를 갖고 있다"면서 "사용자들은 '자본주의에서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글 세상에서 기업은 보안 관련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 경고 문구를 안내하기만 하면 개인 정보 유출 같은 책임도 사용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 자기 영지를 통과하는 대가로 통행료나 금품을 뜯는 '중세 노상강도 귀족(Robber Baron)'과 다름 없다.

그는 "데이터를 (구글처럼) 거대한 중앙 저장고(silos)에 보관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도둑(해킹)이 들기 마련"이라며 "'멧칼프의 법칙(Metcalfe's law)'은 네트워크 자체뿐 아니라 외부 공격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말했다. 멧칼프의 법칙은 통신 네트워크 가치는 그 이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내용으로 네트워크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의미다.

취약한 보안, 사람들 관심을 끌어 광고를 집행하는 수익 모델, 무료에 대한 집착, 고객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총괄하겠다는 '구글인(Google people)'들의 야심을 세상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광고 차단 소프트웨어 성능이 발달하면서 구글 입지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다만 그는 "사적 자유(privacy)와 익명성은 다르다"면서 "테러범 식별을 위해 얼굴 인식 기술을 도입하는 건 문제 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사적 자유와 범죄를 저지를 자유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크립토코즘'이 새로운 패러다임

그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을 비롯한 일부 강경파들 주장대로 구글을 분해해야 할까. 길더는 "정부가 나서서 뭘 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틀렸다"면서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은 거대 테크 기업을 합쳐서 힘을 키우는데 미국은 나눈다니 미련한 짓"이라고 말했다. 이어 "뭔 법을 만들려 하지 말고 규제하지도 말라(don't legislate and don't regulate). 자유 기업들이 알아서 새로운 해결책(solution)을 찾아내는 게 자본주의"라고 말했다.

구글이 태생적으로 자초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은 수십억달러를 쏟아부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구글 제국에서 독립하려는 노력은 도처에서 진행 중이다. 이런 노력은 새로운 네트워크 세상을 탄생시킬 것이다.

길더는 구글 시대 폐막 이후 세상은 '크립토코즘(cryptocosm)'으로 진화한다고 장담했다. 크립토코즘은 암호(crypto)와 우주(cosm)를 합친 말. 보안이 기본이 되는 암호를 통해 분권화된 세상이 구글 이후 새로운 세상 체계(system of the world)로 자리 잡을 것이란 관측이다. "비탈릭 부테린(암호화폐 이더리움 창시자) 같은 블록체인 기술자들은 데이터를 원래 그 데이터를 만든 사람들에게 복원해주며 이 데이터를 크립토코즘 세상에 수평적이고 상호작용적으로 확립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길더에 따르면 크립토코즘은 10가지 원칙을 내포하고 있다. 보안 우선주의, 중앙집중화는 안전하지 않다, 공짜는 없다, 해킹은 어렵지만 신원 확인은 간편한 비대칭 암호들이 사람들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개인 키는 개인이 보관하지 정부나 구글이 보관하지 않는다, 개인 키 뒤에는 인간 해석자가 있다 등이다. 구글이 공개적으로 내건 철학, 홈페이지에 게시한 10계명을 정면으로 받아친다. 구글 10계명에는 '사용자에게 초점을 맞추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느린 것, 즉 세심하고 오류가 없는 것보다 빠른 것이 낫다' '정보의 필요성에는 국경이 없다' 등이 담겨 있다. 길더는 이를 구글이 축적하는 어마어마한 부와 특권을 감추는 위장이라고 일축했다.

기존 화폐·금융 시스템 뒤흔들 것

길더는 "크립토코즘은 월가를 필두로 한 기존 금융 체계를 뒤바꿀 것"이라면서 "금융기관은 물론 각국 정부 화폐 체계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암호화폐가 국제무역의 기준이 되고 세계 통화 구조에 편입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면서 "중앙은행에서 암호화폐 발행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블록체인 기술을 토대로 한 암호화폐 거래 효율이 낮은 건 사실이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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