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임대료 못 올립니다"… 베를린 시내에 폭탄이 떨어졌다

입력 2020.03.20 03:00

'임대료 동결법' 지난 23일부터 시행

베를린시는 카트린 롬프셔 시의회 상원의원이 제안한 임대료 5년 동결 법안을 지난해 11월에 승인, 올해 2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임대료 동결 법안을 설명하는 롬프셔 상원의원 뒤로 베를린 시내의 전경이 보인다.
베를린시는 카트린 롬프셔 시의회 상원의원이 제안한 임대료 5년 동결 법안을 지난해 11월에 승인, 올해 2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임대료 동결 법안을 설명하는 롬프셔 상원의원 뒤로 베를린 시내의 전경이 보인다. / 블룸버그
독일 수도 베를린의 주택 임대료가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치솟으면서 베를린시 정부가 초강경책을 들고 나왔다. 베를린 시의회의 정당들은 주택 임대료를 5년간 동결하는 내용의 '베를린 주택 임대료 법안'에 작년 11월 합의했다. 해당 법안은 임대료 동결법(Mietendeckel)이라고 불리며, 2월 23일부터 시행됐다. 2014년 이전에 지어진 약 150만채의 임대 주택에 적용된다. 베를린시의 임대료 동결법은 독일 16개 주(州) 가운데 최초다. 미하엘 뮐러 베를린 시장은 "이번 임대료 동결법으로 독일 주택 정책이 새로운 차원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베를린시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임대료가 안정되면 세입자들의 거주권이 보장되고 임대주택 공급도 늘어날 것이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사회주의 정책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민원 폭발하자 임대료 일단 동결

'임대료 동결법' 지난 23일부터 시행
베를린의 임대료 등 집값은 사실 유럽의 다른 주요 도시에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었다. 덕분에 베를린은 유럽의 스타트업 허브로 불리며 기업들이 선호하는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투기꾼과 거대 부동산 업체들이 몰리고 매년 4만명이 넘는 인구가 새로 유입되면서 임대료 급등에 따라 원주민이 이탈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2008년과 비교했을 때 주택 임대료는 두 배 이상, 매매가는 세 배 이상 올랐다. 베를린 세입자협회는 "월평균 베를린 임대료가 매년 약 70유로 가까이 올랐다"며 "집주인의 약 70% 이상이 더 높은 임대료를 받기 위해 기존 임대 규정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전체 시민 중 84%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면서 주거권을 잃은 주민들은 불만이 많다. 2018년에는 베를린 시민 7만7000여명이 "거대 임대기업의 임대용 집을 몰수하자"는 내용의 시민청원 운동에 서명할 정도였다.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에 따르면 베를린 일부 시민단체는 베를린 주택의 12.5%에 달하는 25만개의 부동산을 정부가 매입해 공공주택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임대료 동결법을 제안하고 통과시킨 핵심 인물로 꼽히는 카트린 롬프셔 베를린 시의회 상원의원은 "현재 베를린에는 주택의 단기 매매로 돈을 벌려고 하는 투기꾼들이 득실거린다"고 지적했다.

향후 인상률도 연 1.3%로 제한

'임대료 동결법' 지난 23일부터 시행
결국 이런 집값 폭등과 세입자들의 불만이 이어지면서 임대료 동결법이 탄생하게 됐다. 임대료 동결법에 따르면 세입자는 법안의 초안이 발표된 작년 6월 18일을 기준으로 합의된 임대료를 지불하게 된다. 세입자는 월 임대료가 법 허용치인 1㎡당 10.80유로(약 1만4700원)를 넘을 경우 인하를 요청할 권리를 얻게 된다. 세입자가 해당 관청에 신고하면 임대료를 인하할 수 있는 추가 조치가 오는 하반기부터 시작될 방침이다. 5년간 임대료가 동결된다고 하지만 집주인의 경제적 권리 등을 고려해 임대료 인상은 2021년 12월 31일까지만 금지된다. 2022년부터는 물가상승률을 고려, 세입자의 동의를 얻어 연간 최대 1.3% 인상이 허용된다.

새로운 세입자들도 임대료 상한 제한 혜택을 받는다. 임대료 동결법에 따르면 새 임대계약은 1㎡당 최대 10.80유로를 넘지 못한다. 이는 2013년 평균 임대료 수준이다. 베를린 시의회와 시정부는 임대료 제한책 준수 여부를 상시로 감시할 방침이다. 집주인이 제한책을 위반할 경우 최대 50만유로(약 6억8000만원) 상당의 벌금이 부과된다. 임대료 동결법으로 베를린 세입자들은 5년간 총 25억유로(약 3조4006억원) 이상의 부담금을 덜게 될 전망이다. 5년간 세입자에게 안정된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부족한 주택량을 공급한다는 것이 베를린 정부의 구상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다른 도시에도 임대료 동결법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브레멘과 뮌헨 등은 임대료 동결법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뮌헨의 세입자협회는 임대료 동결안을 추진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준비 중이다.

베를린시는 임대료 동결과 함께 신규 주택 공급도 늘릴 방침이다. 롬프셔 상원의원은 "베를린에 2030년까지 약 19만4000개의 새로운 주택이 필요하다"며 "연간 약 1만7000채씩 새로 지어 5년 안에 9만채 이상의 신규 주택을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주인들 "건축비 상승에도 못 미쳐"

하지만 임대료 동결법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다. 개인 재산권을 압박하는 사회주의 정책이라는 비판과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급등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대다수다. 2018년 임대료 통제 정책을 연구한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1994년 이전에 샌프란시스코는 임대주택에 살고 있던 임차인들에게 혜택을 줬다"며 "하지만 나머지 임차인들에게는 해를 끼쳤고 오히려 사회적인 비용만 키우게 됐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임대료 동결법 발표 후 부동산에 대한 기업 투자도 멈췄다. 임대 사이트 등에서는 실거주용 매물조차 찾기가 어려워졌다. 임대료 동결법의 위헌 여부 재판이 독일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임대인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다. 레오니드 버시드스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독일 정치인들은 당장 자신들에게 표를 줄 수 있는 전체 시민의 84%에 달하는 세입자에게만 더욱 신경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실을 모르는 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건축비 상승 같은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는 것이다. 베를린 건물주 협동조합은 낡은 건축물이나 새로운 건물의 건축비는 매년 6%씩 상승하지만, 임대료 인상은 2022년 이후에나 겨우 1.3% 인상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미하엘 아브라함 베를린 건물주 협동조합장은 "임대료 동결안은 임대료가 많든 적든 동일한 제한을 두기 때문에 공평하지 않다"며 "정부는 건축비 상승률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차인 부익부 빈익빈 심화될 수도

전문가들은 임대료 동결제도를 어떻게 볼까. 임대료 동결제가 임대료 상승을 단기적으로는 막을 수 있지만, 급등하고 있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를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예를 들어 독일의 개인소유 주택 가격은 매년 평균 9.7% 올랐다. 베를린과 뮌헨, 쾰른 등 상위 7개 도시의 주택 매매가는 2010년 이후 10년간 100~180% 상승했다. 임대료 동결법이 이런 상승세를 막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임대료 동결법이 임차인들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임대료가 싸지면서 임대 주택에 사는 부자들의 주거비용이 저소득층보다 상대적으로 더 싸지기 때문이다.

미하엘 포이그트랜더 쾰른 독일경제연구소 금융부동산팀장은 WEEKLY BIZ 인터뷰에서 "임대료 동결법은 임대료 상승 중단 효과를 잠시 낼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임대주택사업을 하는 소규모 투자자들이 적당한 임대료 수익을 거두지 못해 빚에 짓눌릴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조치를 계기로 1960~1970년대 임대료 동결 조치를 시행했던 스페인이나 영국처럼 많은 독일 집주인들이 주택을 월세로 내놓는 대신 오히려 팔게 되면서 저소득층의 주택난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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