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코로나는 위안화가 달러 따라잡을 절호의 기회

입력 2020.03.20 03:00

[송의달의 Global Edge] '디지털 위안화' 속도내는 중국… 美·中 화폐전쟁 불붙나

송의달 선임기자
송의달 선임기자
"중국이 국가 자기 주권의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는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이 될 것이다." (황치판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 부이사장·작년 10월)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하면 세계경제에 혼란이 벌어진다. (중국은) 발행을 보류해야 한다." (아소 다로 일본 재무상·올 2월)

디지털 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약칭 CBDC)가 세계경제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발원은 2014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디지털 위안화'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는 중국이다. 판이페이 인민은행 부총재는 작년 11월 "디지털 위안화의 설계와 표준 제정, 내부 테스트를 마무리했다"며 "시범 사업을 곧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달까지 84개의 CBDC 관련 특허를 출원한 중국은 올 1월부터는 디지털 위안화 발행의 법적 기반이 되는 암호법(密碼法)을 전면 실행, 이 분야에서 세계 최선두 주자로 꼽힌다. 'MIT테크놀로지 리뷰' 최신호는 CBDC를 '2020년 10대 획기적 기술' 중 하나로 선정하고 "이미 디지털 화폐 전쟁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中, '코로나 19'로 발행 속도 낼 듯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통신
중국 경제 매체 차이징(財經)은 인민폐(위안화)와 1:1로 교환되는 디지털 위안화에는 인민은행을 정점으로 4대 국유 상업은행(공상·농업·중국·건설은행)과 3대 이동통신사(차이나모바일·차이나텔레콤·차이나유니콤)가 모두 참여한다고 전했다. 여기에 기업과 소매점, 개인이 연동되는 메커니즘을 채택했다. 인민은행이 상업은행과 연결해 CBDC를 발행하고, 이들 은행은 기업과 개인에 이를 유통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본인 계좌에 있는 금액만큼 결제와 송금을 하는 체크카드처럼, 디지털 위안화도 본인이 보유한 만큼 결제·송금 등을 하는 구조이다. 체크카드 대신 스마트폰 앱이 사용되고, 실물이 없는 CBDC라는 게 다르다.

세계 최대 암호 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디지털 위안화는 인민은행이 절대적으로 통제하는 중앙 집중식 디지털 화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 당국은 올 1분기 중 광둥성 선전과 장쑤성 쑤저우에서 디지털 위안화 시범 유통을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 19' 확산으로 일정을 다소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리리후이 전 중국은행장은 "코로나 19로 인해 비접촉식 전자(電子) 결제가 확산됨에 따라 디지털 위안화 발행과 사용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했다. 무창춘(穆長春) 인민은행 지불결제국 부국장도 "우리는 디지털 위안화를 당장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상태"라고 했다. 기술적 기반과 인력 자원이 충분한 만큼, 발행은 시간 문제라는 얘기다.

위조 화폐·세금 탈루 원천 봉쇄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사용이 보편화된 중국은 지금도 사실상 '현금 없는 사회'이다. 거지가 구걸할 때도 QR코드를 쓰는 모바일 결제를 활용할 정도다. 그런데도 디지털 위안화를 추진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국내외 자금 흐름과 자본 유출·이동 실태 등을 중앙은행(정부)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게 매력이다.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모바일 결제 빅데이터와 세계 최고의 안면(顔面)인식 기술을 보유한 중국에서 디지털 위안화까지 활성화하면, 주민 생활을 완벽 감시·통제하는 디지털 사회주의가 완성된다. 부수적으로 위조 화폐 발행과 세금 탈루도 원천 봉쇄할 수 있다.

미국 주도 세계 금융망에서 벗어나 금융 주권을 다지는 둘도 없는 지름길이 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작년 말 현재 세계 각국 외환 보유액과 국가 간 통화에서 위안화의 비율은 각각 2.0%, 1.9%로 미미하다.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으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특히 1973년 미국이 만든 국제은행간통신협정(SWIFT)은 중국의 운신을 제약하는 강력한 족쇄이다. SWIFT에서 완전 퇴출당하면, 어떤 중국 대형 금융회사도 생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디지털 위안화 사용 국가가 많아지면 이들을 중심으로 SWIFT를 우회하는 새로운 국제 금융망 구축이 가능하다.

중국은 실제로 2013년 시작한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참여하는 세계 60여 개 국가를 대상으로 국제 송금과 무역 결제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확산시킬 복안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슈쿠와 준이치 일본 데이쿄(帝京)대 교수는 "디지털 위안화는 대외적으로는 일대일로 참여 국가에서 화웨이의 5G 기술을 사용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이 경우 국제통화로서 위안화의 위상은 5G 기술과 맞물려 상승하는 반면, 달러화와 미국의 독보적인 위상은 추락을 피할 수 없다.

EU·미국 등도 실무 검토 착수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일례로 북한이나 이란이 핵 개발 또는 테러 자금을 주고받을 때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하면, 미국의 감시망(경제제재)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에서 중국의 CBDC 발행은 미국 주도 글로벌 금융 패권에 도전장을 던지는 국운(國運)을 건 승부수로 평가된다.

정재호 서울대 미중관계연구센터 소장은 "중국이 디젤엔진 차량과 신용카드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전기차와 모바일 결제 단계로 도약한 것처럼, 중국의 CBDC 선점 노력은 기존의 미국 주도 국제금융 질서를 단번에 뛰어넘으려는 '초월[赶超]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고 했다.

서방국가들은 디지털 위안화 견제에 나서고 있다. 올 1월 국제결제은행(BIS)이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해 영국, 일본, 캐나다, 스웨덴, 스위스 등 6개 중앙은행과 CBDC 연구 그룹을 조직해 공동 연구에 착수한 게 시발탄이다. BIS와 6개 중앙은행 총재들은 다음 달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G20 중앙은행 총재 회의 때 CBDC 관련 회의를 처음 열 계획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도 지난달 "CBDC의 실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며 전향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미국 유력 싱크탱크와 대학 등에서는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금융 시장 장악 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시뮬레이션이 한창이다. 로랜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인민은행이 그간 준비해 온 디지털 위안화를 2020년에는 공개할 것"이라며 "이로 인해 미국 달러화의 지위가 위협받으면 미·중 간 디지털 화폐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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