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체지방, 우리가 싹 태워드릴게요" 세계 1등

입력 2020.03.20 03:00

건강을 파는 기업 '다니타'의 회춘 전략

일본 국회와 중앙 부처가 모여 있는 도쿄 나가타초. 이곳의 경제산업성 건물 지하 1층에는 체중 감량 식단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KENKO(건강) 식당'이 있다. 지난 2014년 6월 문을 연 이 사원 식당에 식단을 제공하고 있는 업체는 글로벌 체중계 기업 '다니타(Tanita)'다.

1923년 금속 제품 제조·도매 업체에서 출발한 다니타는 요리용 전자저울과 가정용 체중계로 이름을 알렸다. 특히 체지방 측정계(1992년), 내장 지방 측정계(2001년), 휴대용 디지털 소변 혈당 체크계(2008년) 등 세계 최초 타이틀만 14번 거머쥐면서 건강 측정기기 부문의 글로벌 기업으로 혜성처럼 떠올랐다. 1997년 다니타는 체중계, 체성분 측정계 부문 시장점유율 세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다니타는 경쟁 제품이 쏟아지면서 성장세가 꺾이는 위기를 맞았다. 창업가 3대인 다니다 센리 현 사장이 취임한 2008년, 다니타의 건강 측정 기기 부문 시장점유율은 예전의 절반 가까이 줄어든 상태였다. 하지만 다니다 사장은 사업 다각화 등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다니타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다니타는 건강 측정계 부문에서 일본 시장 1위다. 다니타의 주력 제품은 근육량 등 체성분을 측정하는 의료 기관용 체조성계(體組成計)다. 현재 체조성계는 다니타 전체 매출의 약 50%를 차지한다. 해외 매출 비율은 전체의 20% 정도다. 다니타의 매출은 2015년 146억엔에서 2017년158억엔, 지난해에는 200억엔(약 2310억원)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식당과 요리책에 집중한 역발상

다니타 식당의 한 방문객이 전시된 체조성계에 올라가 체지방과 근육량 등을 측정하고 있다.
다니타 식당의 한 방문객이 전시된 체조성계에 올라가 체지방과 근육량 등을 측정하고 있다. / 블룸버그
다니타는 대기업 본사가 몰려 있는 도쿄 중심가 마루노우치에서 '다니타 식당' 1호점을 8년째 운영 중이다. 다이어트나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은 젊은 회사원들이 주로 찾아와 점심때마다 긴 줄이 생겨난다. 현재 다니타는 일본에 다니타 식당 7곳을 운영 중이다. 매장 한 곳당 하루 평균 300식을 제공하고 있다. 1호점의 한 해 평균 매출은 약 7200만엔(약 8억3000만원). 다니타는 체중계 전문 제조 업체라는 전통 사업 모델의 틀을 깨고 요리책과 식당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기회는 우연하게 찾아왔지만 다니타는 소비자 팬덤을 발판 삼아 적극적으로 새로운 고객 가치를 창출했다.

다니타 식당의 원조는 다니타의 사원 식당이다. 취임 이듬해인 2009년 "뭔가 의미 있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직원들에게 해줄 수 없을까" 고민하던 다니다 사장은 비만을 방지하는 식단을 제공하는 사원 식당을 설립했다. 일본 공영방송인 NHK가 이 식당을 '샐러리맨 발견' 코너에 소개하면서 화제가 됐고, 2010년 다니타 사원 식당의 당뇨 예방 식단 등을 담은 요리책을 출간했다. 이 요리책은 누적 판매 542만부를 넘으면서 요리책으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30만부가 팔리면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일본 출판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요리책 출판 후 사원 식당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자 다니다 사장은 '다니타 식당' 브랜드로 요식업에 진출했다.

다니타 식당의 인기 비결은 '비만이 되지 않는' 식단이다. 500칼로리 미만, 염분은 3g 미만, 야채는 200g 이상에 영양 균형을 갖췄다. 밥을 담는 그릇에는 계량선과 그에 해당하는 열량을 그려 넣어 이용자가 경각심을 갖고 밥을 담도록 고안했다. 식사 테이블에는 20분 타이머를 달아 천천히 먹도록 설계했다. 다니타는 식당에 치밀한 영업 포석도 깔았다. 식당 한편에 다니타의 건강 측정 기기를 전시해 두고 점심시간 한정으로 다니타 소속 영양 관리사가 상주하며 무료로 건강 상담을 해준다. 식사를 위해 방문한 고객들을 자연스럽게 다니타 제품의 예비 구매자로 끌어들인 것이다.

본업인 측정 기기는 제품 세분

다니타의 주력 제품인 건강 측정 기기는 이미 각 가정에 널리 보급돼 급격한 매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일반 가전처럼 소비자들이 취향이나 유행에 따라 자주 교체하지도 않는다. 다니타는 이러한 '소비 절벽'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까지도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해 독특한 성능의 제품들을 끊임없이 시장에 내놓고 있다.

다니다 사장은 "다니타 브랜드 강화를 위해 제품을 다양하게 세분하라"라고 계속 주문하고 있다. 다니타의 체중계와 체지방계, 체조성계를 탄생시킨 원조 기술은 거의 모든 생활 영역을 파고들며 다시 꽃을 피우고 있다. 만보계처럼 몸에 달아 소비 열량이나 지방 연소량을 측정하는 일본 최초의 가정용 활동량계, 피하지방 측정계, 수면 측정계, 휴대용 염분 측정계가 대표적이다. 또한 체중계 등의 중량 센서 기술을 응용한 혈압계, 알코올 도수계 등 제품 라인업을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다. 최근 다이어트뿐만 아니라 조깅이나 마라톤을 즐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다니타는 고성능 건강 측정 기기에도 승부수를 던졌다. 체지방률과 체질량지수(BMI), 내장 지방 등을 한꺼번에 측정해주는 가정용 체조성계는 2015년 발매 이후 정가 2만엔(약 23만원)의 고가임에도 발매 4개월 만에 3만대가 넘게 팔리며 히트 상품이 됐다.

다니타는 해외 판로를 넓히기 위해 과감히 기술 공유에도 나섰다. 올해 초 가정용 혈압계 시장점유율 세계 2위인 일본 기업 '에이앤드디'에 근육량과 체지방률 등 다니타의 독자적인 알고리즘(산출 방법)을 내주기로 결단한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러시아와 북미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은 상대 기업의 판로를 활용해 다니타 제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건강 컨설팅으로 기업·정부 공략

도쿄 중심가 마루노우치에 있는 다니타 식당 1호점. 체중계의 아이콘 다니타는 식당과 요리책이 큰 인기를 끌며 건강을 파는 기업으로 재도약했다.
도쿄 중심가 마루노우치에 있는 다니타 식당 1호점. 체중계의 아이콘 다니타는 식당과 요리책이 큰 인기를 끌며 건강을 파는 기업으로 재도약했다. / 다니타
다니타는 2013년부터 기업과 지자체를 대상으로 건강 컨설팅 부문도 집중 공략했다. 다니다 사장이 법인 시장에 승부수를 던지면서 건강 컨설팅 사업은 흑자 반전에 성공했다. 측정 데이터의 무선통신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모바일 결제 기술의 핵심인 펠리카(FeliCa) 기술을 도입하는 등 성능 개선에 나섰다. 다니다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자사 직원 200여 명을 대상으로 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건강 효과를 실험했다. 그 결과 직원 한 명당 연평균 의료비가 12% 줄었다. 다니타는 직접 이 수치를 책자로 만들어 홍보했다. 현재 다니타의 건강 프로그램을 도입한 기업과 지자체는 지난해 기준 약 150여 곳, 이용자는 1만명을 넘어섰다.

다니타는 식당 운영 노하우를 살려 홋카이도대학 병원 등 병원이나 기업, 레스토랑, 중앙정부 부처 식당의 메뉴 위탁 등으로 라이선스 수익도 확보했다. 또 '건강을 파는 기업'이라는 브랜드를 구축하며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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