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에게 배운다: 투자할 때 놓치면 안 되는 것들

    • 저자 김효진
    • 편집 박주현

입력 2020.03.06 12:26 | 수정 2020.03.08 13:34

맨땅에 헤딩하며 버핏을 만나다

고백한다. 나는 주식의 '주' 자도 모른 채 증권회사에 입사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는 것이 없어 질문도 할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결국 맨땅에 헤딩이 무엇인지를 실감하며 스파르타식 공부를 해나갔다.

 

호기롭게 뛰어든 초기 투자에서 중형차 한 대 값을 까먹었다. 어설프게 주워들은 정보로 투자를 하다 보니, 하루 맥줏값 벌고 한 달 월급 까먹는 일이 반복되었다. 물론 얻은 것도 많다. 기업이익, 매출, 경쟁환경에 대해 벼락치기로 파고들었고, 미국 고용, 한국 소비자물가, 수출 등 온갖 경제 통계를 뜯어보았다. 윤여정 씨는 "배우는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가장 잘한다"고 했다. 나 역시 돈을 까먹고 나서야 가장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필자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스승을 곁에 두고 배우기를 추천한다. 좋은 스승에게 배우면 시간도 단축되고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투자에 있어서 가장 좋은 스승 중 한 사람이 바로 워렌 버핏이다.

올해 초에 버크셔에 투자했다면 '에이 워렌 버핏도 별것 없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S&P500이 16% 넘게 오르는 동안 버크셔의 주가는 6% 상승에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5년 이후 버크셔의 총 수익률은 S&P500 수익률의 무려 155배에 달한다.* 이 정도면 스승으로 삼고 배우기에 충분하지 않는가?

* 관련 기사: 워렌 버핏에 투자 맡기고 3개월 후 수익률 봤더니 (머니투데이, 2019.3.18)

 

검증된 투자 스승 워렌 버핏. 하지만 그의 모든 것을 다 흡수하긴 어렵다. 그래서 필자가 고민해봤다. 투자에 관심 있는 우리가 버핏에게서 배우면 좋을 것들을 말이다.


투자가 버핏의 조언, 언제 무엇을 살까

언제 살까: 공포가 친구가 될 때

만연한 공포는 투자자의 친구다.

워렌 버핏의 말이다. 경기 침체나 주가 급락은 공포스러운 상황이지만, 동시에 주식을 헐값에 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버핏의 관점을 빌리자면 S&P500, 다우지수, 나스닥 등 미국 주가지수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지금은 주식을 사기에 좋은 타이밍이 아니다.*

* 관련 리포트: 워렌 버핏의 주주 서한에서 주목할 점 (PUBLY, 2019.3)

경제 위기, 지표 둔화 등의 뉴스가 많지만 주식시장의 최근 분위기는 공포보다 환희에 가깝다(한국 증시는 상대적으로 고전 중이다). 버핏은 2016년 인터뷰에서 "약 10년마다 먹구름이 우리 경제를 뒤덮고서, 잠시 금을 비처럼 퍼부을 것입니다. 이때는 반드시 티스푼이 아니라 빨래통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 관련 기사: Warren Buffett: "When It's Raining Gold, Reach For a Bucket" (CNBC, 20102.27)

 

지금은 주식을 많이 늘리기보다는 더 큰 빨래통을 마련하는 데 시간을 쓸 시기가 아닐까 싶다. 빨래통을 들고 나가야 하는 시기는 그리 멀지 않았다. 2020~2021년을 전후로 금융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공포가 오기까지 2~3년이 남은 셈이다. 그리고 주식을 공부하기에 2~3년은 넉넉한 시간이 아니다. 워렌 버핏 관련 책 중 가장 으뜸으로 평가되는 <스노볼(The Snowball)>만 해도 1840쪽이다.

* 관련 기사: Economists: Second-longest economic boom in US history ends in 2020 … with a recession. (BIGTHINK, 2018.8.6)

 

무엇을 살까: 특정 기업 대신 주가지수에

버핏은 특정 기업을 골라 투자하는 것도 좋지만, 보수가 낮은 S&P500 지수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충고한다. 본인 사후엔, 아내의 재산 역시 S&P500에 그대로 투자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S&P500 투자를 미국이 그동안 일궈온 높은 생산성과 견고한 시스템에 투자하는 것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충고의 저변에는 앞으로도 미국 기업들이 성장을 이어갈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88세 버핏의 반만큼도 살지 않았고, 심지어 한국인인 필자에게 '미국의 생산성 향상'은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가지수에 대한 투자가 매우 좋은 방법이라는 데 찬성한다. 패시브 투자(passive investment)*의 확대, 헤지펀드(hedge fund)** 부진 등의 이유는 빼놓더라도, S&P와 같은 주가지수 자체가 좋은 기업만 추려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 코스피200 등 주요 지수의 등락에 따라 기계적으로 편입된 종목을 사고파는 투자 방식 (출처: 한경 경제용어사전)

** 주식, 채권, 파생상품, 실물자산 등 다양한 상품에 투자해 목표 수익을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펀드 (출처: 한경 경제용어사전)

 

상장되었다는 것은 자기자본, 매출액 등의 일정 요건을 충족했다는 뜻이다. 나아가 S&P500이나 KOSPI200 등에 편입되었다는 건 그중에서도 시장 및 업종 대표성, 거래 유동성 등을 고려해 선별된 기업이라는 것이다. 경영 부진이 오랜 기간 극심하게 이어진다면 S&P500에서 탈락하고, 그 자리는 경영 성과가 나은 기업으로 대체된다.

 

이런 절차를 통해 S&P500이나, KOSPI200 등은 자연스레 그 증시에 상장된 기업 중 가장 우량한 기업들로 채워진다. 간단하면서도 투자자에게는 유리한 구조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이 월가에서 공공연히 회자되는 만큼,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기대보다는 우려가 많다. 그럼에도 미국이 세계 산업을 리드하는 기업 수가 많은 국가임은 분명하다.*

* 관련 자료: Forturne Global 500 (Wikipedia, 2019.5.13)

오늘날의 버핏을 만든 세 가지 태도

많은 사람들이 기업을 고르는 버핏의 안목, 주식 매수 타이밍 등을 궁금해한다. 그러나 막상 버핏에 대해 곱씹어보면 주식투자를 대하는 태도야말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1. 투자 실수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다

최고의 투자가는 어제도 오늘도 사과한다. 세계 3위 부자이자 현인(賢人)이라 불리는 버핏이지만 주주총회나 인터뷰를 보면 '나의 실수', '내가 어리석어서', '나의 뇌가 휴가를 가서'와 같은 발언이 자주 나온다. 구글의 광고 효과를 알아보고서도 투자하지 않은 것, 베조스를 눈여겨봤으면서도 아마존 주식을 사지 않은 것 등 투자 실수를 끊임없이 인정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실패를 외면하거나 남들 탓으로 돌리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 관련 기사: Warren Buffett's failures: 15 investing mistakes he regrets (CNBC, 2017.12.15)

 

대략 100조 원쯤 가지고 있는 부자이니 실수 인정쯤이야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주주총회 같은 공식 석상에서 투자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최근 버크셔가 보유한 종목 중 다수가 실적이 부진했기에, 이번 주주총회에서는 몇 번이나 '실수'라는 단어가 나올지 궁금했다. 실제로 이번에도 그는 수차례 자신의 실수에 대해 언급했다.

 

2.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깨닫다

능력 범위를 확실히 인식해야 하며 반드시 그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투자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잡아서 도전한 것이 버핏의 성공 비결로 보일 수 있지만, 버핏은 오히려 그 반대를 말한다. 모든 산업과 기업을 아는 건 불가능하고, 대부분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이것이 그가 반복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거시경제에 대한 관점을 정립하거나, 거시경제에 대한 수많은 예측에 귀 기울이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어차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비관론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이 잘 알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자신을 믿고 투자하라는 말이다.

3.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배운다

90년대 닷컴 열풍 이후, 버핏이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아마도 '왜 기술주에 투자하지 않는가'였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그게 당시 그의 답이었다.

 

2016년 버크셔가 대표적인 기술주인 애플에 투자하자, 이듬해 주주총회에서 사람들은 '아는 것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이 바뀌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버핏의 동료 멍거는 이렇게 말했다.

버핏이 애플을 매수한 것은 매우 좋은 신호라고 봅니다. 둘 중 하나를 가리키는 신호인데, 그가 미쳤거나 지금도 배우고 있다는 신호이지요. 나는 그가 배우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 관련 기사: Munger on Buffett's Apple Investment: 'Either You've Gone Crazy, or You're Learning' (WSJ, 2017.5.8)

널리 알려진 대로 버핏은 하루 일과 중 상당한 시간을 읽고 정보를 습득하는 데 할애한다. 버크셔의 자회사들을 살펴보면 버핏이 거의 전 산업에 대해 배워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동차 보험회사인 가이코(GEICO)를 비롯해 철도 회사인 BNSF, 사탕을 만드는 시즈캔디, 조립식 주택을 파는 Clayton Homes 등 버핏이 관여하고 있는 산업은 매우 다양하다.*

* 관련 자료: 버크셔의 자산 목록 (Wikipedia, 2019.5.13)

 

산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100% 지분을 인수해 파트너십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렇게 버핏은 배우고 또 배우며 투자를 이어간다.

투자하면서 절대 잃지 말아야 할 것

이번 주주총회에서 버핏은 '가장 재미있는 투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돈을 많이 벌면 언제나 재미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투자 실수 인정, 한계 자각, 끊임없는 배움 등 버핏의 태도를 봤을 때, 그가 돈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따로 있는 듯하다. 바로 평판이다. 하인즈가 최악의 투자 성과를 안겨준* 지금 버핏의 평판 관리는 다시 조명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 관련 기사: `케첩제국` 크래프트 하인즈의 몰락 (매일경제, 2019.2.26)

 

버핏은 지난 2011년 주주 서한을 통해, 인수한 기업의 실적이 부진해도 쉽게 매각하지 않는 이유에 관해 얘기했다. 버크셔는 기업을 인수할 때 기존의 소유주에게 어떤 고난이 있어도 회사를 매각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앞으로도 약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인즈 역시 경영 성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각될 가능성은 작다.

 

회사를 매각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데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은 버크셔의 전체 이익에 비하면 크지 않다. 소중한 기업과 충성스러운 직원들을 맡기려는 소유주들에게 좋은 평판을 쌓은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버핏의 설명이다. 경영권을 보장해주고 충분한 자금을 공급하면, 그만큼 좋은 기업 매물이 자연히 버크셔로 오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좋은 평판이 구체적인 경제적 가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관련 기사: Proven: your reputation can replace a line of credit at the bank (FINN)
 

하인즈와 아마존의 성장만큼이나, 버크셔가 어떻게 평판을 관리해 나가는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평판에 대한 버핏의 가치관과 고집이 느껴지는 글을 전달하며, 2019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리포트를 마무리한다.

우리가 돈을 잃을 수는 있습니다. 많은 돈을 잃어도 됩니다. 그러나 평판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단 한 치도 잃어서는 안 됩니다.
- 워렌 버핏&리처드 코너스, <워렌 버핏 바이블>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