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효과는 작고 부작용은 커… 재정정책·구조개혁이 진짜 약이다

입력 2020.03.06 03:00

루도비치 수브란 알리안츠 수석이코노미스트의 금리 전망

루도비치 수브란 알리안츠 수석이코노미스트
세계적으로 초저금리 시대가 열렸다. 세계 금리 추세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은 작년 7월 10년여 만에 금리를 내려 통화정책의 방향을 돌렸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1.25%까지 내렸다. 유럽과 일본은 이미 마이너스 금리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최대 보험사인 독일 알리안츠의 수석이코노미스트 루도비치 수브란(Subran)에게 초저금리 시대의 미래를 물었다. 프랑스 출신인 수브란은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와 글로벌 신용보험사 외러 에르메스의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거시 경제 전문가다. 인터뷰는 지난달 서면으로 진행했다.

중앙은행들, 돈 푸는 정책 이어갈 것

수브란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통화정책이 세계경제의 성장을 위한 안전망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중 무역 갈등 등 정치 리스크(위험)와 경제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투자를 촉진하고 경기를 방어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그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현재 연 1.50~1.75%인 기준금리를 올해 1.00~1.25%로 내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제조업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중국 우한발 폐렴(코로나19) 사태까지 터져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는 바클레이스나 시티은행, 노무라증권의 전망치와 같은 수준이고, 기준금리가 0%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골드만삭스나 소시에테제네랄보다는 높다. (인터뷰 이후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1.50~1.75%에서 1.00~ 1.25%로 전격 인하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28일 "코로나 사태로 인해 금융시장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다"며 "미국 경제의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수브란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금리가 이미 마이너스인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도 유럽중앙은행(ECB)이 올 4월 금리를 연 마이너스 0.5%에서 마이너스 0.6%로 0.1%포인트 더 내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보면 2020년 이후에도 세계경제는 저성장에 허덕이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돈을 푸는) 완화된 통화정책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금리 인하가 장기 침체 원인될 수도

하지만 그는 금리 인하의 효과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고령화, 투자 위축 등으로 저성장 흐름이 고착화돼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린다고 달라질 상황이 아니라는 것. 그는 "그동안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해온 일본과 유로존의 경제 상황을 보면 그다지 고무적이지 않다"며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기업과 정부는 싼 대출 이자 덕에 당장 이득을 볼 수 있지만 대출 이자도 못 갚는 부실기업인 '좀비 기업'이 늘면서 시장의 경쟁과 혁신을 방해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경기 침체를 방어하기 위해 단행한 금리 인하가 장기 침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마이너스 금리가 저성장을 부채질해 또 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는 '침체의 함정'에 빠질까 우려된다"며 "세계 경제가 조만간 '둠 루프(doom loop)'에 진입할 위험도 크다"고 경고했다. 파멸의 올가미란 뜻의 둠 루프는 재정 상황이 어려운 정부의 국채를 사들인 은행권이 부실해지고, 이를 지원하다 정부 재정이 더 악화되는 악순환 상황을 말한다.

금리 전망
디지털과 녹색경제로 체질 전환해야

수브란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인하만으로는 고착화된 저성장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며 (예산을 푸는) 재정 정책과 경제 구조의 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단기 카드를 동시에 써 시너지를 내고 체질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재정 정책으로 호황, 불황 등 '비즈니스 사이클(경기 순환)'을 관리하는 동시에 미래 성장을 위해 구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며 "구조 개혁은 디지털과 녹색 경제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교육 시스템과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먼저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구조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 시장과 민간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구조 개혁은 정부 혼자 달성할 수 없고 혼자 달성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민간의 투자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시장의 경쟁을 살리고 그동안 억압됐던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풀어주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야성적 충동은 기업가가 위험을 감수하며 투자를 하는 동력이다. 이 말을 쓴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야성적 충동이 회사를 키우고 경제를 발전시킨다고 했다. 그는 시장의 경쟁을 되살리고 야성을 북돋아줄 구체적인 방안으로 스마트 정부의 구축, 중소기업 규제 완화, 디지털 경제에 걸맞은 새로운 경쟁 정책의 도입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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