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디지털 세상에… 종이 잡지로 우뚝 서다

입력 2020.03.06 03:00

[최원석의 業의 경쟁력] <3> 日 '주간문춘'의 미디어 생존 전략

잡지 왕국으로 불렸던 일본도 1995년을 정점으로 20여년간 잡지 판매가 70% 이상 줄었다. 그런데 영향력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커지는 일본 잡지가 있다. 주간문춘(週刊文春)이다. 매주 57만부를 발행하며 일본 시사주간지 가운데 최대 부수·영향력을 자랑한다. 1등 비결은 특종. 아무리 대단한 정치인·기업인도 비리 의혹을 다룬 특종을 터뜨려 사퇴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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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지요다구의 주간문춘 편집국 앞에 선 신타니 마나부 편집국장. 그는 “‘힘 앞에는 굴복’이라는 일본 옛말이 있지만, 권력자가 맘대로 하는 것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것 아니냐”고 했다. / 최원석 기자
특종 행진은 신타니 마나부(新谷學·56)씨가 2012년 편집장에 부임한 뒤 본격화됐다. 그는 2018년 편집국장으로 승진, 온라인을 포함한 콘텐츠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 1월 14일 도쿄 지요다구의 문예춘추사(주간문춘을 발행하는 출판사) 빌딩에서 신타니 편집국장을 만났다. 그는 "일본도 종이 매체 불황"이라면서도 "그렇다고 업계 종사자들이 '불황이니 할 수 없지'라며 재미있는 것을 못 만들어내는 변명거리로 삼아선 안 된다"고 했다. 주간문춘 부흥의 주인공이 되기까지의 경로와 종이 미디어가 살아남을 방법을 그에게 물었다.

남들이 본 적 없는 것을 기사화

―원래 저널리즘이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나.

"그렇지 않다. 중·고교 때는 야구부라 야구만 했다(웃음). 진로를 생각한 건 대학생(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이 된 뒤였다. '버라이어티 쇼나 개그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혹은 영국의 '몬티 파이튼(Monty Python)'이 만든 코미디 쇼 같은 것 말이다. (몬티 파이튼은 1969년 BBC 시사 풍자 쇼로 유명해진 영국 코미디 그룹. 이들이 코미디에 미친 영향은 비틀스가 음악에 미친 영향에 비유될 정도다.) 그래서 방송국에 지원해 기획서를 냈는데, 정치 풍자 버라이어티 쇼에 관한 것이었다. 최종 면접에 떨어져 대학을 1년 더 다니다가 (일본 양대 시사주간지인 주간신조와 주간문춘을 발행하는 출판사인) 신조(新潮)사와 문예춘추(文藝春秋)사 시험을 봤다. 1989년, 스물다섯이었을 때였다."

―어떻게 됐나.

"신조사 시험을 먼저 봤다. 면접관이 '주간신조를 읽고 있나?'라고 해 '안 읽습니다'라고 솔직히 대답했다. 대학생이 시사주간지를 제대로 읽을 리 없지 않은가. 그랬더니 '자네는 저널리즘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군'이라고 했다. 예상대로 불합격. 다음은 문예춘추사였다. 입사 지원서에 '자주 읽는 잡지를 쓰시오'라고 돼 있어 '주간문춘'이라고 썼다. 그랬더니 면접관이 '자네, 정말 주간문춘 읽나'라고 묻더라. '물론 읽고 있습니다'라고 했더니 '주간문춘의 간은 사이 간(間)이 아니네'라고 했다. 간행의 간(刊)을 잘못 썼다 들킨 것이다. '죄송합니다. 실은 읽지 않습니다'라고 곧바로 사과했는데, 놀랍게도 면접관은 '나중에라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마음에 드네'라며 합격시켜줬다."

―입사 이후 무엇을 했나.

"스포츠잡지·월간지 등을 5년간 돌다가 만 서른에 회사 주력 매체인 주간문춘 취재 부서에 배치됐다. 입사 동기 중 가장 늦은 주간문춘 데뷔였다. 데뷔는 늦었지만 스포츠 잡지에서 일할 때 편집장에게 영향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모험가였는데, 항상 남이 가보지 않은 길, 본 적 없는 것을 담으려 했다. 주간문춘에서 기사 쓸 때도 그 편집장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디지털이든 종이든 무기는 특종

―왜 특종에 집착하나.

[최원석의 業의 경쟁력] <3> 日 '주간문춘'의 미디어 생존 전략
"인간에 대한 흥미의 원점이니까. 거물 정치인이 장관실에서 양갱과 함께 현금 다발을 슬쩍 받는다든지, 청순한 이미지의 여성 탤런트가 금단의 사랑을 나눈다든지 하는, 어리석지만 귀엽고, 추악하지만 사랑스러운 인간사에 독자들은 빠져들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것을 먼저 포착해 세상에 알린다. 그렇지만 취재 대상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단죄하지는 않는다. 한 라쿠고(落語·일본 전통 만담) 명인이 '라쿠고는 인간의 업(業)에 대한 긍정'이라고 했다. 주간문춘도 인간의 업을 다루지만, 업을 대하는 자세는 긍정에 가깝다."

주간문춘은 2019년 12월 19일호에 이즈미 히로토(오른쪽 남자) 총리 보좌관과 오쓰보 히로코 후생노동성 관방심의관의 불륜 의혹을 특종 보도했다. 사진은 교토의 디저트 가게에서 찍힌 두 사람. ‘정권 중추(中樞)의 아~앙’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주간문춘은 2019년 12월 19일호에 이즈미 히로토(오른쪽 남자) 총리 보좌관과 오쓰보 히로코 후생노동성 관방심의관의 불륜 의혹을 특종 보도했다. 사진은 교토의 디저트 가게에서 찍힌 두 사람. ‘정권 중추(中樞)의 아~앙’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 최원석 기자
―왜 주간문춘은 특종에 강할까.

"노리기 때문이다. 주간문춘 기자·데스크를 거쳐 월간지·출판부에서 일하다 2012년 편집장으로 복귀했는데, 당시는 미디어의 디지털 전환기였다.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고민했다. 결론은 '무대가 종이 잡지이든, 디지털 세계이든 싸우는 법은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강화한다'였다. 나는 부원들과의 첫 인사에서 '우리의 무기는 특종'이라고 선언했다. 주간문춘엔 특종기자 40여명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미션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요즘 업계에 왜 특종이 많지 않을까.

"미디어들이 특종이라는 비즈니스 모델로부터 스스로 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승부하려는 기자들이 일선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밀려나 있는 것을 많이 본다. 편집국은 얌전하게 윗사람 말 잘 듣는 기자로 채워져 타사와 비슷한 취재만 양산하고 있다. 특종은 위험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특종 하나로 잡지가 얼마나 더 팔릴까만 계산하면 적자일지 모른다. 소송이 걸릴 수도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특종은 브랜딩으로 연결된다. 사람들이 '특종 하면 주간문춘'이라고 인식하게 되면 더 큰 수익을 낳을 수 있다."

온라인 제보의 양과 질 높아져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종이 잡지가 몰락하고 있지 않나.

최원석 국제경제 전문기자
최원석 국제경제 전문기자
"꼭 그렇진 않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유리해진 것도 있다. 특종 잡지라는 브랜드 파워가 생기면서 온라인 제보의 양과 질이 크게 높아졌다. 작년 말 아베 4차 내각의 법무상이 참의원인 아내의 선거운동원 불법 매수에 관여했다는 특종을 해 법무상 사퇴를 끌어낸 것도 온라인 제보 덕분이었다."

―종이 매체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디지털로 바뀌는 건 막을 수 없다. 그래도 종이 잡지는 감소 폭을 최대한 줄이며 끝까지 남길 것이다. 현재는 가판대 판매 중심이지만, 신문 배달망과 연계한다든지 하는 새로운 구독 상품을 개발 중이다. 주간문춘 하나로는 수익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같은 콘텐츠를 여러 형태 무크지로 재구성해 팔기도 한다. 40여 특종기자 외에, 다른 40여명이 이런 일을 한다."

―종이 매체 부수 감소를 보완할 전략이 있나.

"세 가지 수익 모델을 키우고 있다. 첫째는 주간문춘 온라인 사이트다. 작년 4월부터 온·오프 편집부가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 온라인이 단독으로 일했을 때는 월 페이지 뷰가 5000만이었는데, 함께 일하기 시작한 작년 4월부터 1억 뷰, 작년 11월 이후로는 3억 뷰를 넘겼다. 출판사 뉴스 사이트로는 단연 1위다. 특종과 온라인 페이지 뷰 증가는 궁합이 좋다. 배너 광고로 수익을 내는데 계속 오르고 있다.

둘째는 특종 기사를 한 편씩 나눠 라인·야후재팬 등의 플랫폼에 파는 것이다. 한 편에 100~300엔을 받고 종이 잡지 발매 전날 먼저 볼 수 있게 한다. 야후재팬의 출판사 콘텐츠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이 팔린다. 셋째는 특종 콘텐츠를 TV방송국에 파는 것이다. 프로그램 한 편당 5만엔, 주간문춘이 찍은 동영상까지 제공하면 10만엔을 받는다. 2016년 시작 이후 1년간 사용료 수익이 4000만엔을 넘었고 계속 증가세다.

미디어가 살아남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콘텐츠가 정말 재미있는가'이다. 그렇지 못해 플랫폼에 무료나 헐값으로 팔린다면 수익 저하, 취재 비용 삭감, 콘텐츠 질 저하의 악순환밖에 없다. 우리는 다른 매체가 제공하지 못하는 강력한 콘텐츠를 갖고 있다. 우리는 특종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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