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3.05 14:49
[Cover story] 이탈리아 장인기업의 힘
무려 130만개…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伊 기업들

이탈리아는 흔히 ‘명품(名品)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벤베누토 첼리니 등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탈리아 특유의 장인(匠人) 정신 덕이다.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다는 의미인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는 하나의 브랜드로도 성장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KPMG가 세계 3대 브랜드로 코카콜라(Coca-Cola)와 비자(Visa),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꼽았을 정도다.
전통에 현대 기술을 접목
이탈리아인들이 말하는 장인 정신은 '융통성 있는 전통 유지'다. 예를 들어 '세계 최초의 약국'으로 알려진 산타마리아노벨라는 시대 변화에 맞춰 공장 자동화 등 현대 기술을 도입했지만, 수백 년간 전수된 제조법에 적힌 원재료만 고집한다. 자연 성분만을 고집해 사용 기한도 6개월 이내로 짧다. '자전거계의 페라리' 콜나고도 티타늄 소재 같은 현대 기술을 도입했지만, 자전거 앞부분의 러그(lug·차체와 차체의 연결 부품)를 꾸준히 부착하는 등 콜나고만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수퍼카' 업체 파가니는 최첨단 공정을 접목했지만, 수작업으로 차량의 모든 것을 만드는 방식으로 전통을 유지한다. 연간 생산량은 40대 미만이다. 직물 생산 업체 로로피아나는 생후 6개월 된 새끼 염소에게서 단 한 번만 채집한 털로 제품을 가공한 후 방수 같은 최신 기술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조르조 메를레티 이탈리아 장인기업협회장은 "장인 정신은 식품에서 엔지니어링, 가구에서 건축, 의류에서 배송 등 이탈리아의 모든 생산 부문에 존재한다"며 "더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ICT(정보통신기술) 같은 현대 기술도 적극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는 게 이탈리아 특유의 장인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이탈리아에는 이런 장인 정신을 지향하는 크고 작은 장인 기업이 약 130만개가 있다. 이는 전체 이탈리아 기업의 22% 수준으로 이탈리아 인구 100명당 2.2개의 장인 기업이 있는 셈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예컨대 기업 소유주가 직접 생산하는 기업, 건설 분야는 직원 10명 이하, 같은 제품을 연속해서 만들지 않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직원 17명 이하 기업 같은 기준을 갖고 소규모 장인 기업을 지원한다. 이탈리아 장인 기업의 수출 규모는 300억유로(약 40조원)로 추정된다. 구글 같은 글로벌 대기업 매출과 비교했을 때 크지 않은 수준이지만, 이탈리아 전체 고용의 20%(약 270만명), 국내총생산(GDP)의 10~15%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과 영향력은 상당하다. 특히 수십 혹은 수백 년간 이어진 장인 기업 내 가업 승계는 이탈리아 브랜드를 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만든 대표적인 비결로 꼽힌다.
고객 요구에 100% 맞춰
사실 이탈리아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말하는 이탈리아 특유의 장인 정신은 특별한 게 아니다. 이들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맞춰주는 것이 장인 정신"이라고 설명한다. 최고급 합성섬유 업체 알칸타라는 고객이 원하는 '불량률 0%' 소재를 위해 직원들이 3번 이상 수작업 검수 절차를 거친다. 직원들이 완제품 단계의 소재를 일일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본다. 철가루 등 이물질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알칸타라 직원은 수백 명으로 통상적인 장인 기업 범주(50명 이하)에는 속하지 않지만, 스스로를 장인 정신이 깃든 장인 기업이라고 강조한다. 안드레아 보라뇨 알칸타라 CEO는 "장인 정신이 꼭 일일이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며 "제품이 가지고 있는 철학이 명확하고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제품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완벽하게 맞춰주는 것이 진짜 장인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이탈리아 장인 기업들도 최근 여러 고민을 갖고 있다. 경제 위기로 인한 자금난으로 중국 등에 기업이 매각되거나 자녀가 가업 승계를 거부하는 사례가 늘면서다. 현금 복지 등 포퓰리즘 정책 때문에 실업률과 세금이 높아지면서 젊은 인재들이 이탈리아를 떠나 인재 부족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장인 평균 연령대는 40~50세로 고령화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글로벌 명품의 상징인 이탈리아 장인 기업들과 그들이 가진 장인 정신, 그리고 고민을 WEEKLY BIZ 가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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