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한 나라 터키! 내 애인 내놔… 모차르트의 편견

    • 박종호 풍월당 대표

입력 2020.02.21 03:00

[CEO 오페라] (18) 모차르트 '후궁 탈출'

모차르트 오페라 '후궁 탈출'. 2017년 6월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공연하는 모습이다.
모차르트 오페라 '후궁 탈출'. 2017년 6월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공연하는 모습이다. / 풍월당
한동안 이란 문제가 지상(紙上)에 오르내렸다. 그럴 때면 우리는 이란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어쩌면 미국과 이란, 아니 구미와 중동 나아가서 동서 갈등 문제는 오래된 상호 이해 부족에서부터 오는 게 아닐까. 오페라는 겉으로는 종종 애정사가 많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늘 시대상의 반영이었다. 중동에 대한 유럽인들 시각 역시 오페라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차르트 '터키 행진곡'도 유명

모차르트(Mozart·1756~1791)의 '터키 행진곡'은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잘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 외에도 베토벤, 슈베르트 그리고 하이든도 '터키 행진곡'을 작곡했다. 그런데 그 많은 나라 중에서 왜 하필 터키일까? 오스트리아 사람인 모차르트는 주로 빈에서 활동하였으며, 터키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에 빈에서 '터키풍'이라는 건 가장 새롭고 세련된 이른바 '핫한' 소재였다. 빈은 기독교 세계의 동쪽 보루 역할을 하는 도시로서, 오스만튀르크의 침략을 몇 번이나 받았다. 그런 빈 사람들에게 튀르크 즉 터키라는 나라는 주적(主敵)이면서 동시에 신비롭고 흥미로운 양가감정(兩價感情)의 대상이었다. 유명한 빈의 커피 문화도 튀르크 군대가 빈에서 퇴각할 때에 놓고 간 원두로 시작한 것이다.

그런 빈의 모차르트가 자신도 잘 모르는 터키를 배경으로 오페라 '후궁탈출(後宮脫出·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을 작곡했다. 그가 고향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으로 와서 발표한 첫 오페라였는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 오페라의 이면에는 유럽인들이 바라보는 터키, 나아가서 동양에 대한 편견이 여과 없이 녹아 있다.

'후궁탈출' 주요 음반·영상물
무대는 18세기경 터키의 해안이다. 벨몬테라는 스페인 남자가 홀로 해변에 상륙한다. 그는 약혼녀 콘스탄체를 찾기 위해 터키에 왔다. 콘스탄체는 하녀 블론테와 벨몬테의 하인 페드딜로 등과 배를 타고 지중해 여행을 하던 중에 터키 군함에 의해서 납치되어, 다 함께 터키 태수(太守)의 후궁에 갇혀 있다. 벨몬테는 궁전 문지기인 오스민을 만나서 그녀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태수가 콘스탄체에게 반하여 그녀에게 열렬히 구애하는 중이다. 그러나 벨몬테를 그리워하는 콘스탄체의 마음을 태수는 돌리지 못한다. 벨몬테는 페드릴로를 만나고, 페드릴로는 태수에게 벨몬테가 건축가라고 거짓으로 소개한다. 그리하여 벨몬테는 궁전에서 지내게 되고 이어 콘스탄체와 재회한다. 그리고 이들은 탈출을 계획한다. 그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는데, 탈출하려는 네 명의 유럽 젊은이와 그것을 저지하는 오스민의 계략과 노래가 교대로 펼쳐진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이 중요하다. 탈출하려던 네 젊은이는 결국 오스민에게 잡혀서 태수 앞에 끌려나온다. 그러자 태수는 관용을 베풀어 그들을 풀어주어 유럽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 상상하지도 못한 말이 태수의 입에서 나오는데, 실은 자신이 벨몬테 아버지의 옛 친구로서 스페인 출신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에 군중들은 태수의 자비로움을 칭송하고, 네 사람은 무사히 스페인행 배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관용은 오직 유럽인의 미덕' 선입관 담겨

한마디로 잘나가다가 마지막 태수의 고백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왜 그랬을까. 당시 유럽인들은 관용을 베푸는 터키인은 있을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관용은 오직 유럽인의 미덕이며 동양인은 잔인하고 속이 좁다는 그들 선입관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런 사고의 배경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그들의 관점이 있다. 즉 유럽인은 우월하며 모든 지성과 미덕도 유럽의 것이며, 반면 아시아를 비롯한 유색인종은 열등하고 야만적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이다. 이런 사고는 결국 유럽인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합리화하는 데 영향을 준다.

'후궁탈출'은 1782년 빈에서 초연됐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나서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의 지성 괴테는 14세기 이란의 시인 하피즈가 쓴 '시집(Divan)'을 접하고 충격을 받는다. 세상의 지성은 유럽과 백인의 것이라고 믿었던 괴테는 아시아에도 뛰어난 문학과 지성인이 있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다. 그리하여 그는 500년 전 시인에게 보내는, 그가 받아볼 수는 없는 답시(答詩)를 쓰는데, 그게 '서동시집(西東詩集·West-östlicher Divan)'이다. 서양인이 동양에 대한 존중의 시각으로 사색과 성찰을 담은 책으로는 거의 최초다.

여러 서양 오페라를 보면 종종 우리에게 불편한 내용이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후궁탈출'이다. 그러나 이것도 시대의 산물이다. 이런 작품을 통해 우리를 바라보는 그 시대 그들의 시각을 이해하는 한 방편으로 삼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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