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할인점·온라인 다 꿇어!… 괴력의 독일 소매점

입력 2020.02.21 03:00

유럽 유통시장 장악한 독일 슈바르츠그룹

헝가리 베세스(Vecses)의 리들 매장에서 바나나를 정리 중인 직원.
헝가리 베세스(Vecses)의 리들 매장에서 바나나를 정리 중인 직원. /블룸버그
독일 유통 강자인 슈바르츠그룹(Schwarz Gruppe)이 유럽 최초로 매출 1000억유로(약 128조원)를 돌파, 세계 유통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독일 경제 불황 속에서도 매출이 1년 전보다 7%나 늘어나 2016년부터 지켜온 유럽 유통업 1위 자리를 지켜냈다. 국내에서는 이름이 다소 생소한 슈바르츠그룹은 중소형 수퍼마켓 체인점인 리들(Lidl)과 하이퍼마켓인 카우프란트(Kaufland)를 운영하는 모기업이다. 두 브랜드는 알디(Aldi), 쿱(Coop) 등과 함께 유럽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통매장이다. 아마존 등 온라인 유통업체의 대두로 상당수 유통업체가 타격을 입은 가운데, 슈바르츠그룹은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공격적으로 확장 중이다. 유통업계 대격변기에 슈바르츠그룹이 성장 동력을 유지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①가성비 높은 PB 브랜드 활용

"우리는 절대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와 같은 전자상거래 대기업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2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하일브론의 한 대학에서 열린 강연에서 클라우스 게리히 슈바르츠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왜 시대 흐름에 발맞춰 전자상거래 전략에 집중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슈바르츠그룹은 2018년 잠시나마 온라인 시장에 진출했다가 수개월 만에 사업을 중단한 적이 있다. 온라인 배송에 추가로 비용을 투입하다 보면 오히려 경쟁력을 잃어버린다는 게 게리히 CEO의 판단이었다.

게리히 CEO는 대신 브랜드 제품을 주로 팔아왔던 기존 전략을 포기하고, 매대에 브랜드와 PB(유통업체 고유 상표) 상품을 적절히 섞는 방식을 택했다. 값비싼 브랜드 제품보다 비슷한 PB 제품을 선호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수퍼마켓 체인점인 리들은 슈바르츠그룹의 최대 적수인 알디를 꺾고 슈바르츠그룹 전체 매출의 77%를 차지하는 중심 기업으로 성장했다. 리들의 자매회사 카우프란트는 수퍼마켓과 백화점이 결합된 형태의 대형 소매점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슈바르츠그룹의 쌍두마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 동력에 힘입어 슈바르츠그룹은 지난 2018년 매출 1043억유로를 기록했다. 매출 1000억유로 돌파를 이끈 또 다른 요인은 미국 시장이다. 리들은 2016년 6월 미국에서 첫 번째 매장을 열었다. 미국 시장에서도 리들은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PB 제품 등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제품을 진열하는 전략을 고수했다. 월마트, K마트 등 기존 미국 유통기업과 달리 PB 상품 진열에 공을 들인 덕분에, 틈새시장에서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여기에 더해 유기농, 신선 상품 진열을 포기하지 않아 중고가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도 함께 끌어모았다. 예상보다 PB 제품을 원하는 고객이 많은 덕분에, 리들은 2020년 말까지 메릴랜드, 뉴저지, 뉴욕,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등에 100개 이상 점포를 열 계획이다.

2018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오픈한 리들 매장에서 장을 보려고 개점 전부터 줄 선 고객들.
2018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오픈한 리들 매장에서 장을 보려고 개점 전부터 줄 선 고객들. /블룸버그
②음식 메뉴 클릭해 식재료 구매

슈바르츠그룹의 매출 대다수를 차지하는 리들이 고객을 모을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은 독특한 서비스다. 가령, 홈페이지에 음식 레시피를 제공하면서 레시피에 필요한 재료를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만든 서비스는 독일 주부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레시피'를 클릭하면 2000개 이상 레시피가 게재돼 있는데, 식사 시간, 특정 재료, 영양 섭취 방법, 음식 종류, 조리 방법, 조리 시간, 칼로리 등 카테고리별로 원하는 레시피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조리 난도를 세 단계로 조정할 수도 있다. 특히 '운동, 채식, 간편, 저렴' 네 가지 식단 카테고리는 회원들이 레시피에 나온 재료를 바로 구매 가능하게 했다. 이 중 하나의 카테고리를 선택해 음식을 고르면 재료와 양 등의 정보를 포함한 구매 목록이 작성된다. 리들 회원이면 누구나 스마트폰에 저장해서 구매 목록 그대로 가까운 리들 지점에서 장을 볼 수 있다.

여행 상품 판매 역시 리들의 독특한 판매 전략 중 하나다. 유럽 중앙에 있는 독일의 지리적 위치를 십분 활용해 유럽 전역으로의 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여행 상품을 제공하듯 트레킹 투어·버스표 예매를 가능하게 했다. 독일 뮌헨에 본사를 둔 유럽 시외버스 브랜드 플릭스버스와 계약을 맺어 유럽 전역에 걸쳐 28국 2000개 이상 목적지로 가는 표를 제공한다.

③폴크스바겐과 전기차 협력

슈바르츠그룹이 전자상거래를 포기했다고 미래 전략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우선, 기업의 독자적 유통 시스템을 강화하려 클라우드 서비스를 자체적으로 개발 중이다. 독자 개발에 나선 것은 독일 연방정부 정책의 영향이 컸다. 지난해 독일 연방정부는 독일, 유럽 정보기술(IT) 제공 업체들이 향후 데이터를 안전하게 스스로 저장·처리할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클라우드 사업을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뷔르트, 바덴뷔르템베르크 전력회사(EnBW)와 협력을 검토했다. 궁극적으로는 유럽 보안 표준을 갖춘 자체 클라우드 인프라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거대 테크기업에 클라우드 사업을 의존하지 않으면서 유통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는 미래 구상을 담고 있다. 올해 말쯤 슈바르츠그룹의 자체 클라우드 시스템이 완성될 예정이다.

기후·환경문제가 중요시되는 유럽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친환경 시스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폴크스바겐과 전기차 공유 서비스인 위셰어를 공동 출시한 게 대표적이다. 위셰어는 향후 리들 60지점, 카우프란트 10지점을 포함해 총 140개 공공 충전시설을 만들 예정이다. 슈바르츠그룹의 마트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개장 시간 동안 마트 주차장에 설치된 140개의 폴크스바겐 전기차 충전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슈바르츠그룹 매출 추이
④공정무역 상품 판매 확대

리들의 경쟁자 알디와 가장 큰 차별을 보이는 전략 중 하나는 공정무역 상품 판매다. 공정무역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가 꾸준히 늘어나며 리들은 아예 자사 공정무역 브랜드를 만들었다. 지난 2018년 9월 판매된 리들 바나나는 독일 내 첫 공정무역 상품이었다. 당시 리들은 공정거래 인증을 받은 바나나만 매장에서 판매할 것을 선언했다. 바나나 생산국 노동자의 생활과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지속 가능한 생산을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게르트 뮐러 독일 연방경제협력개발부 장관이 "독일의 선두 주자"라며 정부 차원에서 리들의 정책 홍보를 적극적으로 도울 정도였다.

소비자들이 리들의 공정무역 바나나를 사려면 경쟁사 알디의 기존 바나나보다 1㎏당 약 10~20센트를 더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공정무역 판매 전략이 아직 안착한 것은 아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지난해부터는 기존 바나나와 섞어 팔기로 회사 정책을 다소 수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리들은 다양한 공정무역 상품의 배치를 꾸준히 늘릴 계획이다. 지난 몇 년간 독일 내 공정무역 상품 소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무역 시장 규모는 2018년 16억유로로 전년보다 약 22% 증가했다. 독일 경제전문지 비르트샤프츠보헤에 따르면 2018년 독일 소비자들은 공정무역 표시 제품에 연평균 19유로를 지출했다.

클라우스 게리히 CEO

유통업 49년 베테랑… 현장 직원 아이디어 최대한 활용, 발탁


슈바르츠 그룹의 클라우스 게리히 CEO(최고경영자)는 공교롭게도 슈바르츠 그룹의 최대 적수인 ‘알디’에 입사하면서 유통업계에 발을 들였다. 알디 역시 독일에서 손꼽히는 저렴한 중소형 마트의 대표 주자다. 게리히는 알디 입사 5년 차인 1976년에 현재 슈바르츠 그룹 소유주인 디터 슈바르츠의 눈에 들어 슈바르츠 그룹에 영입됐다. 슈바르츠는 당시 리들 전체 12지점을 이끌 사람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클라우스 게리히
게리히는 이후 지점장과 본부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쳐 2004년 그룹 CEO 자리에 올랐다. 슈바르츠 그룹에서는 게리히를 ‘범고래’라 부른다. 범고래가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듯, 그도 유통업계에서 자그마치 49년을 일한 베테랑 사업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는 줄 몰랐지만, 범고래도 팀과 함께 움직이는 사회적 존재”라며 받아치곤 한다.

게리히는 CEO에 오른 뒤 새로운 상품 판매 전략을 짜기 위해 현장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아이디어를 발굴하려 지점장이나 판매직 직원들과 아직도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리히는 아이디어를 듣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해당 직원이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도록 적합한 자리로 인사 이동을 시켜 즉시 직무에 투입했다.

게리히는 평소 매장을 지을 때 “겸손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화려하다고 소비자 이목을 끄는 것이 아니다”며 실용적 입장을 강조한다. 과장된 건축은 매출이나 고객 지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러면서도 전략적 인테리어 방식을 고집한다. 매장에 큰 입구를 두는 것은 공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반면, 선반 면적을 중요하게 생각해 최대한 선반 면적을 키운다. 바닥에 너무 밝은 색을 쓰면 오염 물질을 잘 드러내므로 지양한다. 특히 지난해 새롭게 단장한 매장 ‘미니 리들’은 매장 공간이 협소했지만 최대한 선반을 빽빽하고 높게 진열해 진열 품목 수를 늘렸다. 덕분에 대형 매장에서 찾을 수 있는 온갖 제품을 다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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