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위험하다… 위성들의 '킬링 필드' 되나

입력 2020.02.21 03:00

이철민의 Global Prism <29> 쏟아지는 위성 파괴무기

지난달 31일 위성을 관찰하던 미 퍼듀대의 항공 역학 전공 대학원생인 마이클 톰프슨은 이례적인 현상을 발견했다. 작년 11월 러시아가 '사찰(inspection) 위성'이라고 발사한 코스모스 2524호가 1월 중 세 차례 추진(推進)을 통해 미국의 첩보위성인 KH 11호와 같은 궤도에 오른 뒤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것 아닌가. '사찰 위성'은 자국 위성의 작동 상태를 파악하고 수리하기 위해 발사되는 위성이다. 그런데 러시아의 사찰 위성은 미국의 첩보 위성을 '사찰'하고 있었다.

열흘 뒤인 지난 10일 미 우주군사령부의 존 제이 레이먼드 사령관은 "2기의 러시아 위성이 미 국가정찰국(NRO) 소속 첩보 위성 KH 11호를 같은 궤도에서 스토킹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코스모스 2524호는 작년 12월 6일 본체에서 2543호를 분리했고, 이후 두 러시아 위성이 자세와 타이밍을 조정해 KH 11호를 약 160㎞ 뒤에서 쫓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찰 위성에 장착된 로봇 팔은 우주쓰레기 수거나 위성의 부품 교체뿐 아니라, 상대국 위성의 태양전지판이나 민감한 광학 장비를 훼손하고 표적이 된 위성을 대기권으로 밀어 넣어 파괴할 수 있다. 또 근접해 레이저나 마이크로파와 같은 지향성(指向性) 에너지 무기를 발사할 수도 있다. 미 국방부는 지난 1일 "우리 위성들이 인공적 위협에 어떻게 작동할지, 지금으로선 그 지속성이나 효율성, 적합성을 평가할 수단이 없다"는 보고서를 냈다.

미국이 주도하는 위성 세계

지구 주변을 도는 위성의 수는 5000여 기(基). 그중에서 현재 작동 중인 위성의 수만도 2218기이고, 이 중 절반 가까이가 미국 소유(1007기)다. 그다음은 중국·러시아 순이다. 현대사회에서 위성은 위치확인(GPS)·통신·방송·금융거래·운송 등 일상생활 인프라다. 특히 군사적으로도 1991년 걸프전 이후 미사일 발사 탐지 및 궤적 파악, 병력의 신속한 배치, 정보 수집과 공유, 전장(戰場)과 통신 등에서 위성은 핵심 자산이 됐다. 올해 초 미국이 바그다드 공항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을 드론으로 살해하고, 이란의 보복 미사일 발사에 실시간으로 대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글로벌 GPS·관측·첩보 위성들 덕분이었다.

그런데도, 미 국방부의 이 보고서는 이런 위성이 적의 사이버 공격이나 전파방해, 미사일 공격 등을 받을 경우 어떻게 작동할지 다층(多層)적으로 평가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군의 첨단 기술이 가장 취약한 아킬레스건(腱)이 된 것이다. 특히 위성과 기지국 간 데이터 송수신을 전파방해(jamming)하는 기술은 비교적 쉽게 습득할 수 있어, 2015년 4월엔 이슬람 테러 집단인 IS(이슬람국가)가 프랑스어권 최대 TV 채널인 'TV5 몽드'의 유럽·아시아 권역 방송통신 위성을 전파방해해 11채널의 서비스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러·중, '위성 파괴 무기' 개발

사실 위성을 표적으로 삼은 무기(ASAT· anti-satellite weapons)는 냉전 때부터 존재했다. 미국은 1985년 9월 F-15 전투기에 탑재한 미사일로 지구 상공 555㎞에 위치한 자국의 과학위성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고, 우주 개발 초기부터 우주를 '전투 수행 영역'으로 간주했다. 다만 조용히 ASAT를 개발하고 이를 이슈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과 인도도 각각 2007년, 2019년 자국 위성을 미사일로 격추하는 데 성공하고, 2000년대 들어 주요국들이 ASAT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잘 조율된 위성 공격에, 미국이 '우주판(版) 진주만 기습'을 당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현재 개발되는 ASAT는 지상 발사 미사일뿐 아니라, 킬러 위성을 발사해 표적 위성에 레이저 광선을 쏘거나 아예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방식, 지상에서 고출력 레이저나 마이크로파를 쏴 위성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기, 송수신 전파방해 등 전방위적이다. 일부는 암암리에 배치됐다. 러시아가 2018년 12월 지상에 배치한 레이저 무기는 미사일 요격은 물론 저궤도 위성까지 파괴하거나 작동 불능에 빠뜨릴 수 있는 것으로 서방 정보 당국은 본다.

2007년 자국의 노후한 기상 위성을 미사일로 파괴하면서 ASAT 무대에 등장한 중국은 이미 미국의 저궤도(LEO) 첩보·관측 위성들은 모두 떨어뜨릴 능력을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2월 미 국방정보국(DIA) 보고서는 "중국이 2020년까지 저궤도 위성을 격추할 레이저 무기를 지상에 배치하고, 2020년대 중후반까지는 더 높은 궤도를 도는 통신·기상 위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고출력 레이저를 개발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우주의 전장화를 막는 국제법은 없다. 1967년의 우주 조약은 핵무기와 같은 대량파괴 무기의 우주 배치나 달과 같은 천체의 군사기지화를 금지할 뿐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위성 파괴 무기의 우주 배치를 금지하는 조약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특정 우주 물체의 목적이 위성 수리 및 잔해 수거인지 위성 파괴인지 알 수 없는 현실을 들어 반대한다. 두 나라 안(案)은 또 지상에서 발사하는 ASAT는 금지하지 않는다.

노르웨이는 통신 위성에 보호장치

결국 각국은 위성 방어에 나섰다. 위성 보유 5위(68기)인 프랑스는 작년 10월 공군에 우주사령부를 신설했고, 2025년까지 36억유로(약 4조6374억원) 규모의 우주 군사 계획 프로그램과 7억유로짜리 킬러 위성 개발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은 작년 7월 "앞으로 위성에 적 위성의 태양전지판을 파괴할 기관총이나, 위성을 무력화하는 레이저 건을 장착하겠다"며 "2023년부터는 중량 1㎏짜리 초소형 위성 수십 기를 주(主)위성 주변에 배치해 적의 위협을 사전에 탐지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랑스는 2017년 러시아 위성이 프랑스·이탈리아 공동의 통신위성인 아테나-피두스를 수개월간 근접 거리에서 스토킹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8개 위성의 교신을 교란하거나 카메라 작동 불능 사태를 초래한 것에 발끈했다. 또 2022년 노르웨이가 발사할 통신용 위성에는 전파방해·전자기파 차단 장치 등의 보호 장치가 장착된다. 위급 시 위성 기능의 복원력을 확보하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킬러 위성이나 레이저 건 등 ASAT이 본격적으로 배치되지 않은 지금도, 우주는 넘쳐나는 쓰레기로 위성 운항에 결코 안전한 환경이 되지 못한다. 수명을 다한 위성 3000기 외에도, 폭발·충돌 등으로 발생한 10㎝ 이상 크기의 파편 3만4000 개, 90만 개에 달하는 1~10㎝ 크기의 우주 쓰레기가 초속 11㎞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1㎜짜리 파편이라도 위성과 충돌하면 수류탄 수준 파괴력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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