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기업의 100년 대계 "전통 지키기보다 더 중요한 건 진화 DNA"

입력 2020.02.21 03:00 | 수정 2020.02.25 15:28

'미래 100년 기업의 조건' 전문가 분석

100년 기업의 100년 대계
미국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500대 기업 평균 수명은 20살이 채 되지 않는다. 60살에 달했던 1950년대에 비해 3분의 1로 짧아졌다. 1955년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회사는 60여개. 한국은 창업한 지 30년만 지나도 '장수기업'으로 쳐준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100년 이상 장수한 기업들은 수만 곳에 달한다. 일본에 3만3000여개, 미국(1만2000여개)과 독일(1만개)에도 수많은 장수기업들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고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두 차례 세계 대전과 대공황,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외부 충격을 극복한 그들의 장수 비결은 뭘까.
더 나아가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그들은 과연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앞으로 100년을 위해 그들은 뭘 하고 있을까. 새로운 장수기업들은 어디서 뛰쳐나올까. 위클리비즈는 세계적인 경영 전문가들과 주요 장수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통해 그 해답의 실마리를 들을 수 있었다.
‘히든 챔피언’을 쓴 독일 경영 대가 헤르만 지몬 지몬-쿠허앤파트너스 명예회장은 “혁신(변화)을 고민하지 않으면 장수기업 절반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장수 가족기업을 연구해온 프랑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 모르텐 벤네드센 교수는 “장수기업이라고 하면 전통 가업 하나만 집중하는 보수적인 이미지가 흔한 통념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그 안에서 치열한 ‘혁신의 전통’이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사와 금융사에 정통한 리처드 실러 뉴욕대 교수는 “창조적 파괴를 위한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면서 "이걸 간과하면 (창립 124주년 해에 파산신청을 한)코닥처럼 될 것”이라고 전했다.
오태헌 경희사이버대 교수(일본학)는 일본 주물회사 노사쿠(1916년 창업) 가츠지 사장의 말을 전했다. “기술과 전통을 지키고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진화입니다. 새로운 방향을 찾지 못하면 전통은 사라집니다. 100년 후에는 지금 닥친 도전에 대한 응전이 전통이 될 겁니다.”
(위쪽부터) 헤르만 지몬 독일 지몬-쿠허 앤드 파트너스 명예회장. 게리 해멀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객원교수. 로라 리스 미국 리스 앤드 리스 회장. 리처드 실러 미국 뉴욕대 교수. 에이미 웹 미국 퓨처투데이연구소 CEO
브랜드가 운명을 가른다
장수기업들을 위한 생존법은 다양했다. 미국 마케팅 컨설팅사 리스앤리스 공동창업자 로라 리스는 “브랜드가 운명을 가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P&G와 GE를 비교했다.
182년전 ‘아이보리’ 비누로 시작한 P&G는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 때마다 ‘프링글스’ ‘위스퍼’ ‘오랄비’ ‘질레트’ 등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냈다. 단순한 상품은 인기 브랜드가 됐다. 현재 P&G는 매년 10억 달러 이상 매출을 올리는 수퍼 브랜드 25개를 거느리고 있다. 최근 10년간 P&G의 순이익률은 13.9%로 미국 대기업 평균의 2배 수준이다.
반대로 한때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었던 GE는 대부분 사업에 GE 이름을 붙였다. GE캐피탈, GE헬스케어 등이 그렇게 나왔다. 그는 “GE는 대부분 사업에 GE 브랜드를 남발하면서 브랜드 파워를 오히려 약화시켰다”면서 “사업을 다각화 했지만 최근 10년간 매출은 33%나 줄었고 수익은 174억 달러 흑자에서 228억 달러 적자로 바뀌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많은 장수기업들이 GE처럼 자기 브랜드를 늘리고 싶어하지만 새로운 분야는 새로운 브랜드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를 만들지만 시장을 주도하는 브랜드는 테슬라죠. 자동차 회사들은 최고의 상품을 만들면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소비자들은 시장을 주도하는 브랜드가 최고의 상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경영 전략가 게리 해멀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객원교수는 “조직을 쪼개 장수기업을 스타트업처럼 운영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혁신 기술을 쏟아내며 장수하고 있는 3M(1902년 창립)을 예로 들었다. 그는 3M을 “100년이 넘은 회사지만 스타트업 정신이 살아 있는 회사”라고 평가했다. 3M은 조직을 스타트업처럼 작게 나눴다. 여기서 직원들은 자유롭게 실험하고 아이디어를 낸다. 해멀 교수는 “조직을 스타트업처럼 만들기 위해선 CEO가 단기적인 수익에 급급해선 안된다”며 “회사의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소비자와 소통, 겸손한 CEO 관건
지몬 회장은 소비자와 소통을 강조했다. 그는 “기업과 소비자는 공생 관계”라며 “소비자로부터 멀어지면 소비자의 니즈(필요)에 어두워지고 문제점도 바로 고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히든 챔피언들은 소비자와 만나는 직원의 비중이 보통 대기업보다 5배나 높았다. “당신의 비즈니스를 제품의 관점이 아니라 소비자 니즈의 관점에서 정의해보세요. 생존을 위한 해법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미래학자인 에이미 웹 퓨처투데이연구소 창업자는 “지속적으로 외부 신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가전업체는 인구통계학, 환경, 지정학 등의 변화 신호를 추적해야 리스크(위험)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는 또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이 살고 싶은 미래 세상을 역으로 설계해보는 것”이라며 “그 속에 장수기업의 생존 방법이 있다”고 했다.
유필화 성균관대 경영대학원장은 “결정적인 실수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쌍용과 해태 등 적잖은 한국 기업들은 충분히 장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경쟁력 없는 분야에 뛰어들다 무너졌다”며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DNA와 맞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태헌 교수는 “장수기업일수록 늘 해오던 익숙함을 경계하고 의심해야 한다”며 “지향점이 명확하다면 잠시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동력은 잃지 않는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해멀 교수는 CEO의 겸손을 핵심 동력으로 꼽았다. “앞으로 세상은 더 빠르게 변할 겁니다. CEO 한 사람의 능력으로 따라 잡을 수 없어요. 직원 등 주변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자만심이 제일 위험해요. 직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 이를 콜라보(결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CEO는 1년에 적어도 몇 주는 실리콘밸리, 런던 등을 직접 다니며 새로운 기술이나 라이프스타일 등을 경험해보라고 조언했다.
신상철 중소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흥미로운 비유를 들었다. “자장면 집 경쟁자는 자장면을 더 맛있게 만드는 집이 아닙니다. 근처에 있는 피자집이죠. 자장면 집을 피자집처럼 인테리어해야 합니다. 디즈니 경쟁자도 넷플릭스가 아닙니다. 해커죠.”
신장수기업, 가맹점 사업(chain store)와 AI에서
그럼 앞으로 새로운 장수기업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어딜까. 지몬 회장은 패션 브랜드와 가맹점 사업(chain store)를 꼽았다. 웹 대표는 데이터와 AI, 합성생물학을 들었고, 벤네드센 교수는 호텔, 식품, 주류 등 고정적인 수요가 있는 분야가 유망하다고 꼽았다. 유필화 교수는 생명공학과 AI 의료서비스, 명상 산업에서 새로운 장수기업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상철 수석연구위원은 “미래에도 제조업에서 장수기업들이 나올 것”이라며 “다만 비용을 줄이는 제조업이 아니라 가치를 불어넣은 제조업이라야 한다”고 했다.
실러 교수는 “미래의 장수기업 CEO들은 경쟁과 각종 규제, 사회적 책임까지 효율적으로 대응해야 해 이전 CEO들보다 더 힘이 들 것”이라고 했다. 웹 대표도 “정책, 환경, 직원들간 세대 차이 등 앞으로 불확실성은 더 커질 것”이라며 “불확실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조직도 이를 전제로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수만개의 장수기업들이 경쟁하고 있지만 한국은 100년 이상 기업이 두산(1896년), 동화약품(1897년), 신한은행(1897년), 우리은행(1899년) 등 10곳 정도다. 
이를 두고 벤네드센 교수는 높은 상속세가 경쟁력 있는 장수기업의 출현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유필화 교수는 “장수기업들이 많은 나라에는 성공한 기업인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며 “사회적인 분위기도 중요하다”고 했다. 신상철 수석연구위원은 “단기간에 승부를 내려는 ‘대박 신화’를 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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