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초저금리 시대엔 선제적으로 행동해야 정책 먹힌다

입력 2020.02.07 03:00

[WEEKLY BIZ Column]

고령화·불평등 등으로 불확실성 커져 금리 약발 잘 안먹혀
중앙은행이 강한 의지 보여야 국민 신뢰

래리 해서웨이 GAM자산운용 수석이코노미스트
최근의 주가와 채권 수익률의 상승은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팽창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으며, 다음 경기 침체 상황이 닥치면 중앙은행들이 충분히 대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을 수 있다. 통화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중앙은행의 신용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중앙은행들은 소비·투자·고용 촉진을 위해 금리 인하에 의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각본은 더 이상 예전처럼 잘 작동하지 않는다. 세계화, 고령화, 소비자 선호도의 변화, 소득과 부의 불평등 증가, 의료 비용 증가, 급속한 기술 변화, 그리고 기타 요인에 의해 높아진 불확실성 때문이다. 경기 불황이 없는 상황에서도 많은 가정과 기업에 미래는 위압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불확실성은 경기 침체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불확실성이 상승하면 일부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시행 중인 저금리 또는 심지어 마이너스 실질금리 정책이 더 많은 소비를 유발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금리가 급락해도 저축이 늘고 투자가 흔들릴 수 있다. 만약 정부가 재정 정책으로 수요를 증가시키기를 꺼리거나 그럴 수 없다면 불확실성이 장기화하고 경기가 깊은 침체의 골에 빠질 것이다.

美 '헬리콥터 머니' 정책에 제약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통화정책 완화의 필요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중앙은행들은 마이너스 금리, 자산 매입, '선제적 안내' 등 대응할 수 있는 비상한 수단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정책을 집행할 때 중앙은행들은 심한 제약에 직면한다. 이는 다음 경기 침체에 대한 중앙은행들의 대응이 불충분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체로 제약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즉, 통화정책으로 할 수 있는 것을 규정하는 법률이나 확립된 정책, 그리고 중앙은행의 의사 결정을 좌우하는 정치적·제도적 제한이다. 법적 제한은 나라마다 중앙은행 관할권을 규정한 정치·제도적 환경과 역사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공개 시장을 운영할 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연방 정부가 발행하거나 보증한 채권만 구매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은행은 주식이나 회사채와 같은 민간 부문의 증권을 구매, 기업금융을 활성화할 수 있는 더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런 차이는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쳐 비상 대책이 필요할 때 상당히 중요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연준은 일방적으로 '헬리콥터 머니'를 만들 수 없다.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찍어 헬리콥터에 실은 뒤 공중에서 민간 시민들에게 마구 뿌리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헬리콥터 머니'가 전달되는 절차를 보면 미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연준이 이를 인수하는 형태로 자금이 연준에서 정부로 이전된 뒤 정부가 민간에 살포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그런데 이런 자금 이전 절차는 연준이 아니라 의회와 대통령만이 결정할 수 있는 정책이다. 문제는 다음번에 경제·금융 위기가 오면 신속하고 결정적인 조치가 필요한데도, 새롭고 간단한 절차를 만들려면 법제화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연준 능력과 독립성 위협받아

'헬리콥터 머니'는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전형적인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기존의 정책 규범 때문에 '헬리콥터 머니' 같은 비주류 정책 사용이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준이 마이너스 정책 금리 도입을 주저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에 다가올 경기 침체에서 평균 실질금리가 제로 이하로 떨어진다면 연준이 스스로 부과한 제로금리 제한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실패는 다음 경기 회복을 지연시키고 연준의 능력과 독립성을 위협할 수 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방출되는 자금 전달이 계획과 의도대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송 채널의 효과가 많이 떨어진 것으로 증명되면서 중앙은행이 중요한 정책 수단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받는다. 또 돈 풀기 정책이 자산 가격을 상승시킬 수도 있지만 그 이익이 부유층에게만 주어진다면 소비는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경기 침체가 올 때마다 중앙은행의 단점을 보완하기에는 너무 늦을 것이다. 중앙은행들은 외부 환경이 변화를 필요로 하기 전에 먼저 선제적으로 변화를 해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럽중앙은행(ECB)은 높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에 단호히 반대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목표 이하일 때에는 물가 상승을 불러올 수 있는 돈 풀기 정책을 상당히 유연하게 운영했다. 2012년 마리오 드라기 당시 ECB 총재는 균형 잡힌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무엇이든 하겠다"고 약속한 뒤 통화 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면 통화 완화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반발도 줄어든다. 중앙은행이 위기가 오기 전에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자산, 즉 중앙은행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고 있다는 국민의 신뢰를 보호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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