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충격의 파장

입력 2020.02.07 03:00

[Cover Story] 경제 석학들이 말하는 초저금리 대처법

안전 투자처는 옛말… 마이너스 국채까지 등장

초저금리 충격의 파장 ① 채권
 

전 세계적으로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채권 시장의 상식도 뒤바뀌고 있다. 과거에 채권은 일정한 이자 수입을 원하는 안전 투자자의 수요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가 오랜 기간 이어지며, 중앙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에 베팅하는 막대한 투기 자금까지 채권 시장에 흘러들면서 기이한 현상들이 속출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면 채권 가격은 올라 높은 자본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마이너스 국채의 등장이다. 대표적인 안전 국채로 인정받는 독일, 스위스의 30년 만기 국채는 지난해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일본과 프랑스의 10년물 국채에서도 지난해 초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고, 안전자산 수요가 늘어날 때마다 이 수익률들은 하락 폭을 키우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2014년 유럽중앙은행(ECB)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직후 마이너스 금리 국채는 34억달러에 불과했으나 2018년에는 6조달러로 불었고, 지난해에는 20조달러에 육박할 정도다. 국내 은행들의 DLF 사태도 이처럼 상식을 깨는 금융시장의 움직임이 주된 원인이었다.

전세계 마이너스 채권 발행액 추이
과거 인기가 없었던 20년물 이상의 초장기 채권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해외에서는 50년 이상 초장기채에 뭉칫돈이 몰리는가 하면 국내에서도 초장기채 물량이 모두 소화되면서 발행량이 증가세를 보였다. 가령 재정 위기를 겪는 이탈리아의 50년물 국채는 30억유로 모집에 170억유로 규모의 신청이 들어와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오스트리아도 100년물 국채 재발행 때 투자자가 몰리면서 연 1% 초반대의 금리로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10년 만기 이하의 채권에 투자해 일정한 수입을 얻을 것을 권하는 교과서적 채권 투자 방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이다. 게다가 자칫 금리가 오르면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미국 국채는 미·중 무역 갈등 등 경기가 하강 흐름을 보일 때 상대적으로 안전 자산이면서도 양호한 수익을 낼 수 있는 '보험성 상품'이다. 그래서 금융회사들이 많이 산다. 미국은 금리 인하에 더해 경기가 양호한 상황을 이어가면서 앞으로도 국채와 회사채가 동반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금리가 너무 낮아져 기업들이 손쉽게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탓에 기업 부채가 지나치게 빠르게 늘어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전세계 시총 1년만에 17조달러 늘어 86조달러

초저금리 충격의 파장 ② 주식


"현금은 쓰레기다. 현금에서 벗어나라."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회장은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저금리 여파로 현금의 가치가 워낙 떨어지다 보니 주식·금 등 다양한 상품으로 자산을 배분해야 저금리 여파의 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금리 여파로 일부 주요국 증시는 '과열' 논쟁을 불러올 정도로 거침없이 상승 중이다. 지난해 전 세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1년 전보다 17조달러 늘어난 86조달러에 달해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증가 폭도 2001년 이후 최대였다. 46개 주요국 증시 중 44개국 증시가 상승 마감했다. 브라질, 유럽 등 주요국 증시 모두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국 다우존스 주가 지수 추이
특히 지난해 중대형 우량주 중심의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S&P500) 지수는 1년간 28%나 오르며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 미국 경제의 탄탄함을 과시했다. '혁신 대기업'인 구글(알파벳)·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페이스북 등은 지난해 여름부터 대부분 50~200% 상승해 주가지수 상승을 이끌고 있다.

저금리 여파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반영됐던 터라 주가 수준을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미국 증시의 현 주가 수준의 적정성을 보여주는 주가이익증가비율(PEG·Price Earnings to Growth Ratio)이 1.8로 1986년 관련 수치를 작성한 이래 가장 높다고 밝혔다. PEG가 1을 넘으면 주식시장이 과대평가됐다는 얘기다. 최근의 주가수익비율(PER)도 18.4배로 2002년 이후 최고치다. 골드만삭스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주식시장 비중이 상대적으로 가장 크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내부에서도 읽힌다. 로버트 캐플런 댈러스 연방은행 총재는 연준의 금리 인하 조치들로 인해 위험 자산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연준이 환매조건부채권(Repo) 매입을 통해 시중에 푼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최근 주가 상승은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이 주된 요인이지만, 미국 경제가 아직 탄탄하고 기업 실적이 좋은 요인도 작용한다는 의견도 있다. 팩트셋에 따르면 S&P500 기업 가운데 약 7%가 지난해 4분기 실적을 공개했는데 이 중 76.5%가 예상보다 나은 순익을 보였다.


글로벌 주택가격지수 사상 최고… 돈이 흘러넘친다

초저금리 충격의 파장 ③ 부동산


전 세계 주요 대도시는 저금리 여파로 부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몰리며 홍역을 치르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곤두박질쳤던 글로벌 부동산 가격은 최근 4~5년간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더니, 현재는 금융 위기 당시 수준에 거의 근접하거나 넘어서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하는 글로벌 주택가격지수는 이미 2017년 4분기에 160으로 상승,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 수준(159)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5년 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유럽은 서유럽은 물론, 남유럽 국가들도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중이다. 포르투갈·룩셈부르크·슬로바키아·아일랜드 등 일부 유럽 국가의 집값은 5년간 40% 넘게 올랐고, 같은 기간 스페인 마드리드, 스웨덴 스톡홀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도 30% 상승했다. 특히 파리는 주택 평균 가격이 지난해 3.3㎡(1평)당 4350만원까지 올라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프랑스 전체 평균 집값보다 4배가량 비싸다. 앤 이달고 파리 시장은 '집값과의 전쟁'도 선포했으나, 주택 규제가 까다로워 공급을 늘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덴마크 정부는 유입되는 투기 자본에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재개발에 따른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전 세계 부동산 가격 지수 추이
주택 공급이 비교적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일본도 최근 3~4년간 저금리 자금이 쏟아지면서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도쿄의 맨션(한국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2013년 5800만엔대에서 지난해 7600만엔대까지 올랐다. 오키나와에서 수백㎞ 더 떨어진 외딴 섬까지 중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자금이 몰리고 있다.

급격한 집값 상승에 따라 도시에 직장을 가진 주민들이 높은 월세에 못 이겨 외곽으로 밀려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주거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0년대 9%에서 최근 11%까지 올랐다. 워낙 집값이 오르다 보니 주택 소유를 포기하는 젊은 층도 늘어나는 추세다. 1990년에 미국 30대의 주택 소유 비율은 전체 주택의 3분의 1에 달했는데, 지금은 4%에 불과하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과 달리 부동산 거품 붕괴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 위기 때는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지만 현재는 국가별 편차가 커서 위기 발생 여지가 적다. 또 당시 부동산 가격 상승은 주로 부채에 의한 것이었던 반면, 현재는 저금리와 함께 주택 공급 부족에 주로 기인한다는 게 IMF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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