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물러난 후, 주가 결국 반토막… 누가 진짜 배임자인가

입력 2020.02.07 03:00 | 수정 2020.02.21 18:12

[최원석의 業의 경쟁력] <2> 카를로스 곤 사태에서 본 '배임(背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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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유두호
2018년 11월 카를로스 곤(Ghosn) 당시 르노·닛산 회장이 도쿄지검에 체포된 뒤, 곤이 닛산을 사유화하며 자기 이익만 챙겼다는 비판이 일본에서 쏟아졌다. 곤 축출극의 본질은 르노가 닛산을 완전 통합하려 하면서 르노에 닛산을 완전히 뺏길까 우려한 일본인 경영진과 정부가 연합해 '르노의 대리인(곤 당시 회장)'을 쳐낸 것이라는 게 해외 언론 분석이다. 그러나 본질은 간데없고 일본 미디어·전문가들은 곤 개인을 흠집 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맥킨지재팬 회장까지 지냈던 일본의 유명 경영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조차 "곤은 성격이 아주 나빴다"며 경영 능력이나 체포 혐의와 무관한 부분을 예로 들어 곤을 비난했다.

범죄 혐의는 다툼 소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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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그러나 경영자로서 곤의 평가는 회사의 실적·가치가 기반이 돼야 한다. 일본 검찰이나 닛산 측은 "곤이 닛산에 심각한 배임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곤에게 제기된 혐의들은 모두 다툼의 소지가 크다는 게 일본 법조계 반응이다. 특히 최초 체포 혐의인 '퇴임 후 고문료에 대한 유가증권 보고서 미기재'는 검찰이 무리했다는 게 중론이다. 곤이 퇴임 후에도 거액을 챙기려 한 의혹은 있지만, 계약 체결도 안 된 내용의 기재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배임 문제'는 다른 방향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곤이 아니라 곤을 쳐낸 닛산 경영진이나 혹은 관여가 의심되는 일본 정부 쪽으로 말이다. 작년 11월 19일 블룸버그는 "곤 체포 이후 1년간 닛산 시가총액 중 (3분의 1인) 1조3700억엔(약 14조8000억원)이 사라졌다"며 곤을 무리하게 쳐낸 일본 측을 간접 비판했다.

더구나 2017년 이후 닛산은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 CEO(최고경영자) 겸 사장이 경영을 책임져 왔다. 곤은 직접 경영에서 손을 떼고 르노·닛산 연합의 경영 전략에 집중해 왔다. 닛산 주가는 사이카와 CEO 체제 이후 곤 체포를 거쳐 현재까지 줄곧 내리막이다. 현재 닛산 시총은 27조원에 불과하다. 사이카와 CEO 취임 전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사이카와는 경제산업성 인사와 긴밀히 연락하며 곤 축출 쿠데타를 주도했다. 당시 사이카와는 실적 악화로 사임 압력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곤을 쫓아낸 이후 자신의 임원 보수를 부정한 방법으로 부풀렸던 게 발각돼 CEO에서 물러났다. 닛산에 누가 진짜 배임이었을지 생각해 볼 만한 대목이다.

르노·닛산 통합 시도가 배후 원인

도쿄지검 출신인 고하라 노부오(鄕原信郞) 변호사는 곤이 탈출하기 직전 2개월간 다섯 차례 10시간에 걸쳐 곤을 비밀 인터뷰했는데, 탈출 직후 곤의 허락을 받아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곤은 인터뷰에서 르노가 닛산을 완전 통합하려는 과정에서 프랑스·일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밝혔다. 인터뷰에 따르면 닛산의 일본인 이사진과 정부는 프랑스 정부와 르노의 통합 요구에 결사 반대했다. 곤 자신은 르노·닛산의 완전 통합을 원치 않았다. 르노가 닛산 주식 43%, 닛산이 르노 주식 15%, 닛산이 미쓰비시 주식 35%를 갖는 기업연합(얼라이언스) 관계를 이어나가는 게 모두에게 득이라 생각했다.

곤이 생각한 것은 지주회사 체제였다. 지주회사가 3사 주식을 보유하고 파리·도쿄에 같은 이름으로 상장하는 것. 이사회 멤버는 10명, 닛산에서 3명, 르노에서 3명 추천, 나머지 4명은 독립된 인물로 하고 3사 경영은 각사 경영진이 책임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닛산의 일본인 이사진이 맹렬히 반대했다. 닛산 단독 주식이 없어져 버린다는 게 이유였다. 대신 일본인 이사진은 재단 설립을 제안했다. 르노의 닛산 보유 주식, 닛산의 르노 보유 주식, 닛산의 미쓰비시 보유 주식을 전부 재단에 넘겨, 재단이 3사 주식을 갖고 각 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었다. 재단이라면 경제산업성 관여도 쉬워진다. 프랑스 정부는 강력 반대했다. 재단이 큰 힘을 갖지만 책임은 지지 않게 된다는 게 이유였다. 이 과정에서 곤은 프랑스에서도 일본에서도 적(敵)으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있다.

곤은 또 인터뷰에서 "2008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봉 20억엔 조건으로 GM CEO 자리를 내게 제안했을 때 거절한 게 실수였다"고 했다. 곤은 "당시 미국발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에서 닛산을 버리고 GM으로 갈 수는 없었는데, 닛산을 위해 남았다가 이런 꼴을 당했다"고 했다.

곤의 글로벌 車연합 꿈 무산

곤이 최근 전력했던 것은 '연합의 확대'였다. 체포 직전에는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과 FCA(피아트·크라이슬러 연합) 제휴의 막바지 단계까지 갔다. 르노·닛산과 FCA가 제휴하면 연간 1600만대를 파는,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 연합이 탄생한다. 각각 연 1000만대 수준인 도요타와 폴크스바겐그룹을 크게 넘는 것이다. 전기차·자율주행·차량공유 등 IT 업계에서 밀려드는 신기술 물결에 맞서 자동차 회사가 생존하려면 덩치를 키워 연구·개발비 부담을 나누는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대세다. 그러나 곤이 체포된 뒤 협상의 맥을 잃어버린 FCA는 르노·닛산 대신 PSA(푸조·시트로앵)와 연합하는 차선책을 택했다.

르노·닛산·FCA 연합이 탄생했다면 닛산에 득이었을까 실이었을까? 기술력이 뛰어난 닛산이 연간 1600만대 체제의 연구·개발을 주도할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닛산 주가는 어떻게 됐을까? 닛산 주주·직원·소비자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줬을까? 적어도 주가가 반 토막 나고 직원 1만2500명의 정리해고 계획이 발표되는 최악 상황은 면했을지 모른다. 오히려 닛산 주가가 곤 체포 당시보다 더 올랐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인 신임 경영진 도피성 이적도

국제경제 전문기자
국제경제 전문기자
물론 닛산의 일본 경영진이나 경제산업성은 일본 제조업의 순혈주의를 지키고 싶었을 수도 있다. 르노의 닛산 통합을 차단한 뒤 닛산과 혼다를 제휴시켜 도요타 연합과 함께 양강 체제를 만든다는 시나리오도 업계에 돌았다. 이미 도요타는 스바루·마쓰다·스즈키와 자본 제휴, 르노·닛산과 같은 강력한 형태는 아니지만 연 1600만대 연합 체제를 결성했다.

그러나 경영 중심을 잃은 닛산이 실적 부진에 빠지면서 모든 게 어려워지고 있다. 작년 4~6월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99% 감소했는데, 이후 1만2500명 감원을 발표했다. 실적이 나빠지면 르노 간섭이 심해지고 경영 혼란이 심화될 수 있다. 곤이 사라진 닛산은 르노와 신(新)경영체제 타협에만 1년을 허비했다. 작년 12월2일 우치다 마코토(內田誠) 닛산 신임 CEO 등의 3인 체제를 출범시켰지만 3명 중 1명인 세키 준(關潤) 생산·제품 총괄이 취임 한 달도 안 돼 일본 전기부품회사 일본전산의 사장으로 이직해버렸다. 르노 파견 경험도 있어 르노·닛산 양쪽의 실무 경험이 풍부한 이 임원이 닛산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도망간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나카니시 다카기(中西孝樹) 나카니시자동차산업리서치 대표는 "신경영진이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바탕으로 개혁에 나서야 한다"면서 "혼란이 장기화되면 과거의 관료주의·무사안일주의·사내분쟁이 부활해 1980~ 1990년대 닛산의 업적 악화 시기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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