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저인플레로 전세계가 일본화하고 있어… 적극적 재정정책 펼쳐라"

입력 2020.02.07 03:00 | 수정 2020.02.10 14:19

[Cover Story] 경제 석학들이 말하는 초저금리 대처법
전미경제학회 석학들의 초저금리 진단

지난달 3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에서 경제학자들과 각국 중앙은행 전·현직 관계자들은 저금리 현상에 대해 다양한 분석과 진단을 내놓았다. 재닛 옐런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일본이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경험한 지속적인 총수요 부족과 투자 위축으로 발생한 경기 침체(stagnation)가 미국과 유럽권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낮은 생산성 증가와 인구 고령화가 문제를 심화시키면서 실질중립금리를 더욱 낮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전 미 재무장관)는 "미국은 지난 50년간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경기 침체에 대응했지만 이제는 더 인하할 여지가 없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①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서머스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일각에서 주장하는 '마이너스 금리'에 대해선 "제로 금리 수준이나 마이너스 금리를 통해 경제를 성공적으로 운용할 수는 없다"면서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공공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침체기를 막기 위해 장기 저금리를 고착화(lower for longer)하면 정책 금리가 명목 하한선에 도달하면서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머스는 이미 장기금리가 낮은 상태에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사용해 금리를 0.5~1% 더 낮춘다고 추가적인 통화 완화 효과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더구나 통화정책은 내구재 소비를 통해 파급되는 경로가 크게 작동하는데 국내총생산(GDP)에서 내구재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감소하고 있으며, 세계경제가 개방되고 글로벌화하면서 경기 침체가 전 세계적으로 동조화되고 있기 때문에 통화정책이 환율 경로로 작동하기도 어려운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통화정책 외에 다른 경기 부양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머스는 우카시 라헬 영란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와 함께 발표한 논문을 통해 "재정정책은 실질중립금리를 3~4%포인트 상승시키는데 기여했다"면서 "올바른 경기 대응을 위해선 재정지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저금리 시대엔 더 높은 수준으로 재정 적자를 유지할 수 있어 적극적 재정정책이 가능하므로 재정 적자를 늘리지 않으면서 총수요를 진작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세와 정부 지출을 동시에 늘려 균형재정승수효과를 이용할 수도 있고, 경제성장률이 실질금리보다 높다는 점을 활용, 부과식(Pay-As-You-Go)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부과방식은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거둔 돈으로 은퇴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청년부양형'이란 의미다.)

②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

옐런은 "통화정책 효과가 감소하면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일반적인 정책 도구로 도입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평균적으로 정책금리를 5%포인트 낮추었으나 현재는 기준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전통적인 이자율 정책에 의존하여 총수요 부족에 대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환경에선 장기 채권 매입이나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금리정책 방향을 선제적으로 안내하는 것)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효과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중앙은행 정책 도구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옐런은 말했다.

옐런은 "단기금리가 실효하한선에 근접해 있을 때는 경기 침체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낮은 금리를 더 유지해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목표를 상회하는 걸 용인하는 장기 저금리 정책을 쓰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다음 경기 침체가 시작될 때는 이런 정책을 신뢰성 있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어 통화정책이 제약된 장기 침체 상황에서는 정부 부채 급증 우려에도 인프라나 교육, 연구개발(R&D), 기후변화 분야처럼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부문에 투자를 늘리는 적극적 재정정책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③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

벤 버냉키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전 연준 의장)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여겨졌던 양적 완화와 포워드 가이던스가 저인플레이션·저금리에 직면한 21세기에 유효한 통화정책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양적 완화와 포워드 가이던스가 글로벌 금융 위기 기간 동안 금융 경색을 완화시키고 경제 회복을 촉진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 두 정책 모두 표준적인 통화정책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이후 명목금리는 인구구조 변화와 기술 발전 등으로 인해 추세적으로 하락했다. 역사적으로 미 연준은 경기 침체에 맞서 5% 이상 금리를 인하하는 통화정책을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명목금리가 계속 하락해 제로에 근접하면서 통화 당국이 경기 침체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축소되면서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대안으로 등장했다.

버냉키는 "양적 완화와 포워드 가이던스는 3%포인트가량 금리정책 여력을 추가적으로 제공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면서 "명목금리가 2~3%인 경우, 금리 제로 하한 제약(Zero Lower Bound)으로 금리를 더 내릴 수 없다면 양적 완화와 포워드 가이던스가 이를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④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전미경제학회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통해 "전 세계가 '일본화(Japanification)'하고 있다"면서 "저성장과 저인플레이션, 저금리가 지속하면서 정책금리를 낮추더라도 기대 인플레이션이 하락해 통화정책 효과가 감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 역시 일본식 장기 불황으로 갈 수 있다는 취지다. 그는 유럽이 현재 '일본화' 위험에 직면해 있긴 하지만 강력한 재정 정책을 통해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화'는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인구가 감소하는 또다른 25개국 중 일본만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거시 경제 정책이 충분히 뒷받침하치 않았다는 게 드라기 판단이다. 그는 "거시경제정책을 선제적으로(proactive) 단호하게(determined) 조율해(coordinated) 실행해야 하는데 일본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중앙은행은 1991년 버블 붕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디플레이션을 단호하게 막는 데 주저했고 인플레이션 목표를 지키는 데 실패했다. 완화적인 재정정책을 오히려 수동적인 통화 긴축으로 상쇄한 것도 실책이다.
유럽도 일본만큼은 아니었지만 별다른 학습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2012년 재정 위기 국면에서 유럽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통화 완화 정책을 실시하긴 했으나 긴축적인 재정정책이 효과를 상쇄했다. 
반면 미국은 글로벌 금융 위기에 대응해 통화정책으로 발 빠르게 대응하고, TARP(Troubled Asset Relief Program·부실자산구제대책)같은 재정 정책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뤄 경기 부양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유럽권에서도 저금리를 활용해 더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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