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위험 수익은 끝났다… 재무 계획 다시 짜라"

입력 2020.02.07 03:00 | 수정 2020.02.16 14:38

[Cover Story] 경제 석학들이 말하는 초저금리 대처법
로버트 머튼 MIT 석좌 교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머튼 매사추세츠 공대(MIT) 석좌교수가 최근 성균관대 국제관에서 열린 특별 강의에서 재무관리와 핀테크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머튼 매사추세츠 공대(MIT) 석좌교수가 최근 성균관대 국제관에서 열린 특별 강의에서 재무관리와 핀테크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이태경 기자
로버트 머튼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 교수는 젊은 시절엔 파생상품 연구에 몰두했던 금융 분야 최고 전문가다. 주식 옵션(매수 선택권)의 가치를 평가하는 주요 수단으로 채택된 블랙-숄스 공식을 변형, '파생상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 파생 금융상품 시장의 급속한 신장에 기여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53세이던 1997년에 재정경제학의 권위자인 숄스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이후 숄스와 함께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를 설립했으나 아시아 금융위기 직후인 1999년에 러시아에서 대규모 투자 손실을 입어 뉴욕 금융 당국으로부터 4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다. MIT와 하버드대 교수를 거쳐 지금은 전 세계 곳곳에 재무설계 관련 강의를 다닌다. WEEKLY BIZ는 최근 한국을 방문한 머튼 교수를 만나 초저금리 시대의 대처법을 물었다.

해 뜨기 기다리지 말고 우산 구입하라

―초저금리 시대에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정답은 없다. 그러나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무(無)위험' 이자율이 떨어졌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과거 금리가 높았던 시절에는 위험이 적은 자산에 투자해도 일정한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초저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는 불가능해졌다. 과거 수준의 이율·수익률을 적용해서는 적절한 무위험 자산을 찾을 수가 없게 됐다는 뜻이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과거의 방식을 고집해서는 기존에 세웠던 재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졌다. 비가 올 땐 비를 맞으며 해 뜨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우산을 구입해 비 오는 상황에 맞춰야 한다. 금리가 마냥 높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는, 저금리라는 상황에 맞게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고 방식을 바꿔야 할까.

"재무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 무위험 이자율이 낮아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금융상품을 찾아야 한다. 낮은 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마법은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금융 기술을 갖고 있는 월가의 금융회사들조차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표적인 무위험 자산인 미국 국채를 대거 사들이고 있는 현상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봐야 한다. 국채 수익률보다 높은 일정한 이익을 거두려면 결국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고, 그만큼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졌다. 문제는 상당수 투자자들이 적절한 방법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점이다. 워낙 금융상품의 수익률이 떨어지다 보니 마냥 고수익을 좇다 '묻지 마 투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금융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투자하더라도 위험을 감수하면 결국은 원금을 잃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로버트 머튼(Merton·76) 프로필
은퇴자·젊은 층 소득 감소 우려

―이러한 변화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은퇴 생활자의 타격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은퇴자들의 생활 수준을 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소득이다. 만약 한 은퇴자가 100만달러 규모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과거처럼 예금 금리가 연 5%였다면 1년에 5만달러를 받을 수 있다. 여기서 금리가 1%포인트 떨어지면 연 소득은 1만달러, 20%가 줄어든다. 예상했던 것보다 금리가 더 떨어지면 생활 규모를 줄여야 하기에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은퇴 가구 중 최대 50%가 현재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자산이나 자금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준비 없이 은퇴하는 세대가 늘어나는 현상이 더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젊은 세대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보나.

"위험을 감수하기 싫은 개인 투자자들은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로 기존 목표보다 은퇴 시기를 늦추거나, 소비를 줄여 저축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기본적인 이자 수입이 줄어드니 이전 세대보다 더 가난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반면,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이자는 줄어들어 주택 등 부동산을 소유하고자 하는 동기 요인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부동산 가지려는 욕구 더 늘어날듯

머튼 교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저금리·저성장이 노후 재테크에 미치는 영향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미국 경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저성장과 저금리 국면으로 접어드는 시기였다. 1990년대 미국 경제성장률 연평균은 3.23%였으나,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 산술평균은 1.83%로 줄었다. 대표 금리인 10년 국채 금리의 1990년대 10년간 산술평균은 6.67%였으나, 2000년대 10년간은 4.46%였다. 2000년을 전후해 미국 경제는 고성장·고금리에서 저성장·저금리로 상황이 크게 바뀐 것이다.

―눈여겨보는 현상이 있다면.

"고령화로 노후 소득 보장의 중추가 공적연금에서 사적연금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적연금의 핵심인 퇴직연금의 운용 주체가 기업에서 개인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노후 소득 보장에서 개인의 책임이 증가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노후 소득 보장의 핵심 주체가 국가에서 기업으로, 다시 기업에서 개인으로 바뀌는 것이기도 하다. 연금 펀드의 수익률이 떨어져 적자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점은 사회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정부가 이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은퇴 소비자가 소비를 줄이게 하는 것은 물론, 직원들의 연금을 쌓는 기업들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공적 연금을 운용하는 정부에도 부담이 된다."

저금리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듯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중앙은행들의 막대한 돈 풀기 정책에 따른 후폭풍은 매우 두렵게 지켜보고 있다. 정부나 중앙은행은 때론 일부 경제 주체들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손가락질은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은 경기를 회복하는 게 지상 과제였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경제 주체들이 만족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양극화를 키웠다는 지적에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중앙은행은 '수퍼맨'과 같은 초인(超人)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이 통제하는 것은 기준금리다. 중앙은행들이 세계 경제를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향후 금리 동향은 어떻게 예측하나.

"당분간 저금리 기조가 바뀌기는 어렵다고 보지만, 앞으로 금리 방향은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은 믿을 수 없지만 1970년대 미국에선 한때 단기 금리가 연 21%까지 치솟은 시절도 있다. 관건은 얼마나 시시각각 변하는 경제 환경에 유연한 사고로 잘 적응하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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