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도수 1도 낮춰… 매출 115배 늘리다

입력 2020.02.07 03:00

[박순욱의 술술 경영] (3) 김기환 지평주조 대표의 '도수(度數) 경영'

김기환 지평주조 대표
'5도(度) 막걸리' 지평막걸리의 가파른 상승세가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지평막걸리를 만드는 지평주조는 2019년 매출이 전년(166억원)보다 64억원 늘어난 230억원을 기록했다고 최근 밝혔다. 전년 대비 매출액 신장률이 38.5%에 달한다. 다른 주류 업체들이 넘보지 못할 압도적 성장세다. 그러나 지난해 이 같은 상승률은 1년 전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약과다. 2018년에는 그 전해에 비해 매출이 50%나 늘었다. 지평주조는 최근 몇 년 사이 연간 매출이 매년 40~50%씩 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현재의 김기환(38) 대표가 취임한 뒤 10년 만에 매출이 무려 115배 늘어났다는 점이다. 2010년 28세 나이에 대표로 부임했을 당시 매출이 약 2억원, 작년 매출은 정확하게 115배 증가한 230억원이다. 지평주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양조장 중 하나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1대 사장 고(故) 이종환씨가 설립했다. 1960년에 김 대표의 할아버지인 고 김교섭(2대 사장)씨가 인수했고, 부친 김동교(3대 사장)씨에 이어 김 대표가 경영을 맡고 있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10년간 매출 115배 증가

95년 전에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의 '동네 양조장'에서 출발한 지평주조가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전국 양조장'으로 거듭난 비결은 무엇일까? 양조장 대표로서는 젊은 나이인 김 대표는 어떻게 매출을 10년 만에 100배 이상 키웠을까? 그 비결은 한마디로 '알코올 도수'에 있다. 국내 막걸리 시장 점유율 1위인 장수막걸리를 비롯해 대부분 막걸리가 알코올 도수 6도인 데 비해, 지평막걸리는 1도 낮은 5도다. 김 대표는 2015년에 도수를 종전의 6도에서 5도로 낮추었다. 그런데도 지평막걸리는 막걸리 애호가들 사이에서 '묵직한 보디감이 좋다'는 평을 받으면서, 특히 젊은 층이 선호한다. 술에 있어 '보디감'이란 술을 입안에 머금었을 때 느끼는 무게감을 말한다. 술을 목 안으로 다 넘겼을 때, 입안에 남는 여운(피니시가 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을 일컫기도 한다. 묵직한 보디감을 가진 술은 마신 후에도 한참 동안 잔향이 입안에 머물러 있다.

일반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보디감은 묵직해진다. 그런데 알코올 도수 5도 막걸리 보디감이 묵직하다니?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알코올 도수를 5도로 맞추었을 때 가장 지평막걸리다운 맛이 났다"며 "기분 좋은 단맛에 묵직하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발효 조절해 도수 낮춘 덕택

―도수는 왜 낮추었나.

"2010년 대표로 취임한 이후 제조 공정을 표준화해 가는 과정에서, 알코올 도수가 6도보다는 5도일 때 '가장 지평스러운 맛'을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소주 등 다른 주류 업계에서도 저도수를 내놓으면서 주류 음용 트렌드가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에서 '즐기기 위해 마시는 술'로 변화한 시대 흐름과도 잘 맞아 5도 제품 매출이 꾸준히 상승할 수 있었다."

―'가장 지평스럽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술의 맛과 향에 있어 지평막걸리가 갖고 있는 장점을 잘 살렸다는 의미다. 과거 손맛과 감에 의지하며 술을 빚었던 시절에는 온도나 환경에 민감한 막걸리 특성상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균일한 맛을 내는 것이 최상 품질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판단해, 끊임없이 제품의 맛과 향을 테스트하면서 가장 지평막걸리다운 맛과 향이라고 판단한 지점이 알코올 도수가 5도일 때였다."

―도수를 낮추면서 물을 더 탔나.

"일반적으로 도수가 낮아졌다고 하면 물을 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물을 더 타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술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기 때문에 물을 타지 않고 내용물 그대로 알코올 도수를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 그 덕분에 알코올 도수는 5도로 낮아졌지만 오히려 보디감은 높아졌다."

―물을 추가하지 않으면서 도수를 어떻게 낮출 수 있었나.

"막걸리의 주원료인 쌀이 가진 전분질이 당화 발효되면서 알코올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알코올 발효 과정을 제어함으로써 당분인 전분질을 더 남게 해, 도수를 낮추었다. 다시 말해, 발효 공정에서 알코올로 바뀌는 전분질의 양을 줄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 6도보다 오히려 잔당이 더 남게 되고, 이것이 보디감에 영향을 주어 기분 좋은 단맛을 낸다."

지평주조 매출 추이
지평주조
고가 마케팅도 성공에 한몫

―시장 점유율 1위인 장수막걸리의 도수가 6도이기 때문에 5도 지평막걸리에 대한 소비자 거부감은 없었나.

"술을 마실 때 알코올 도수를 먼저 보고 마시는 소비자는 사실 많지 않다. 대부분 술 자체의 맛과 먹고 나서 몸으로 느끼는 취기 등 경험과 취향에 따라 술을 선택하는 편이다. 이런 면에서 알코올 도수가 5도로 낮아져도 '묵직한 보디감'과 같은 고유 특징을 유지하면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데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봤다. 실제로 5도로 도수를 바꾸고 난 다음 이를 알아차린 소비자는 많지 않았다. 리뉴얼 제품이 출시된 이후 알코올 도수가 5도로 내려갔다는 부분을 회사 차원에서 홍보하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경우가 더 많았다."

―차별화된 영업 전략도 성공에 한몫했다고 들었다.

"국산 쌀을 쓰는 지평생막걸리(소매가 1800원)는 외국 쌀을 쓰는 장수막걸리(소매가 1200원)보다 생산 단가가 높아 업소에서는 1000원 더 비싸게 팔린다. 음식점에서 장수막걸리는 1병에 4000원, 지평막걸리는 5000원 하는 곳이 많다. 그런데 이윤을 계산해보면 식당에서 장수 한 병 파는 것보다 지평 한 병 파는 게 더 유리하다. 소매가격은 지평이 600원 더 비싸지만, 식당에서는 장수보다 1000원 더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식당 주인은 손님에게 지평막걸리를 권하게 되고 지평을 취급하겠다는 대리점도 늘어나는 선순환을 이루게 되었다."

지평주조 개요
지역 농특산물 재료로 활용 계획

―젊은 층에 반응이 더 좋은 비결은.

"젊은 층이 도수 낮은 술을 선호할 거라 보고, 서울 광장시장을 비롯해 젊은이가 많이 모이는 곳에 지평막걸리를 집중적으로 깔았다. 20대들이 술과 음식을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 SNS에 자발적으로 올리는 성향이 강한 것을 마케팅에 활용해 지평막걸리가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효과를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큰 효과를 봤다."

―지금 판매하는 제품에는 인공감미료가 들어 있다. 무감미료 제품 출시 계획은.

"작년에 신제품 개발을 끝냈기 때문에 올해 내에는 출시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신제품 출시는 올해 완공을 앞두고 있는 양조장 리모델링 사업과 연관되어 있다."

―올해 매출 목표를 알고 싶다. 그리고 올해 주요 사업 전략은.

"올해 매출 목표는 300억원이다. 올해 주요 사업으로는 지평양조장 문화재 복원 공사를 완공하고, 프리미엄 라인(무감미료 막걸리)의 생산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 농특산물을 활용한 농업회사 법인도 설립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쌀을 바탕으로 한 술만 만들었는데 앞으로는 지역 농특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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