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못 줄이면 끝장" 독일 화학업계 몸부림친다

입력 2020.02.07 03:00 | 수정 2020.02.10 16:03

EU 기후중립 정책에 탄소 줄이기 비상

환경 친화 기업 '랑세스' 5년내 이산화탄소 배출 80만t 더 줄이기로
화학기업 '바스프'는 부산물 재활용 못하는 건설 화학분야 美 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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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바이엘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를 목표로 하고 있다. ②지난해 10월 열린 'K 2019’에서 랑세스가 선보인 신제품. ③바이엘의 지원을 받으며 인도에서 쌀을 수확 중인 농부들. ④바스프와 협약을 맺은 에퀴놈이 생산하는 곡식. /바이엘·랑세스·바스프
독일 굴지 화학회사 바스프(BASF)는 콘크리트 첨가제 분야를 포함한 건설 화학 분야를 지난해 12월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에 매각했다. 매각가는 31억7000만유로(약 4조1031억원). 건설 화학 분야 매출이 연 25억유로(2018년 기준)로 전년 대비 3% 상승하면서 꾸준한 실적을 내고 있었지만, 바스프의 마틴 뮐러 CEO는 "건설 화학 부문은 바스프의 페어분트(verbund·통합 관리) 시스템에 맞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페어분트 시스템은 바스프의 통합 관리 시설이다. 한 공정에서 생산된 제품, 남은 원자재와 부산물을 다음 공정의 원자재나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도록 공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시스템이다.

독일 화학 기업들이 독일 연방정부와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규제 강화에 직면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화학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과 기후 보호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대중의 압력도 한 원인이다. EU의 환경 규제와 업계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기존 제품과 생산 공정의 효율성을 높일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① 탄소 배출량을 줄여라

화학은 제품 생산 시 많은 전력이 필요하고, 석유·가스 처리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온실가스를 많이 생산하는 산업군 중 하나다. 따라서 제품 생산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볼프강 엔트루프 독일산업협회(VCI) 회장은 "우리는 EU 기후 중립 정책에 따라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다국적 회계 컨설팅 회사 PwC의 지난해 화학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화학 기업은 자원·물질 대체, 탈탄소, 재생에너지에 제일 공을 들였다. 보고서는 "지속 가능성과 환경을 생각하는 전략으로 변화하는 일이 향후 몇 년간 화학 산업 성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이제 독일 화학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지속 가능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환경 친화' 화학 기업으로 손꼽히는 랑세스(Lanxess)는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약 650만t에서 320만t으로 줄였다. 이제 랑세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재 약 320만t에서 2030년까지 160만t으로 줄일 계획에 착수했다. 우선 벨기에 안트베르펜 지역에 아산화질소 분해 시설을 지었다. 올해 가동을 시작해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약 15만t 줄이는 효과를 기대한다. 2023년에는 30만t을 더 줄일 계획이다. 인도에 있는 공장을 통해선 바이오매스와 태양열 에너지를 대량으로 공급받는다. 덕분에 앞으로 석탄·가스를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이런 프로젝트에 최대 1억유로를 투자해 2025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총 80만t 줄일 예정이다.

바이엘(Bayer)은 2030년까지 자체 사업장 내 '탄소 중립화'를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100% 재생 가능한 전기로 사업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나머지 배출량은 생물 다양성을 높여 탄소를 포획하는 방식으로 모조리 상쇄한다. 농가와 협력하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주요 농산물 시장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30%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토양 속 탄소의 배출을 감소시키고자 경작지를 줄이고 디지털 기술로 농작물을 보호하며 더 정밀하게 비료를 사용하게 돕는다는 전략이다.

② 특수 화학으로 눈길 돌리다

독일 화학 산업은 매출 악화라는 악재도 겪고 있다. 2018년 독일 화학 산업 매출은 2030억유로(약 266조원)로 제조업 국가 독일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위였다. 반면 2019년 매출은 5% 감소한 1930억유로(약 253조원)에 그쳤다. 지난해 총생산량도 전년 대비 2.5% 감소했다. VCI는 성명을 통해 "지난해 화학·제약 산업은 미·중 무역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올해도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에도 생산이 0.5% 더 감소하리라 예측했다.

바더방크의 애널리스트 마커스 마이어는 지난해 12월 "매출이 매년 떨어지는 상황에서 주요 화학 업체들이 특수 화학물질 생산에 더욱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수 화학제품은 자본 집약적 대규모 공장 시설이 기존 화학제품보다 덜 필요할 뿐만 아니라 더 높은 이윤을 창출한다. 특히 석유·가스와 같은 원료를 덜 사용하기 때문에 저렴한 생산이 가능하다.

이미 특수 화학 분야에 진출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는 랑세스를 꼽을 수 있다. 2018년 기준 72억유로(약 9조3362억원) 매출을 달성한 랑세스는 공격적 인수합병(M&A) 전략으로 특수 화학 사업 분야를 넓혔다. 지난 2017년 4월 화염 지연, 윤활 첨가제 공급 업체 중 하나인 미국의 켐투라를 250억유로에 인수, 화염 방지제 공급 규모를 확대했다.

에보닉(Evonik)은 지난달 10일 독일 기어스타흐트에서 다목적 실리콘 생산 시설을 새롭게 단장했다. 나노 기술을 도입한 혁신 전문 화학제품 생산에 초점을 맞추는 작업이다. 교각 접착제, 실리콘 봉합제, 하이브리드 폴리머, 기타 의료용 접착제 등이 새로운 실리콘·나노 기술 제품에 포함된다.

③ 건강·영양 관련 사업 확대

지난해 12월 바이엘은 유엔의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와 파리 기후협약에 맞춰 올해부터 2030년까지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발표에서 베르너 바우만 CEO는 "강력한 지속 가능성 전략을 세워 장기적 수익을 달성하고 동시에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바이엘의 지속 가능성 계획은 건강과 영양 사업을 골자로 한다. 2030년까지 바이엘은 개발도상국 등지의 소상공인 1억명 지원을 목표로 한다. 지역 식량 공급을 늘리고 농촌 사회의 빈곤을 줄이는 데 기여하기 위함이다. 빈곤층이 약품을 쉽게 살 수 있도록 가격 조정도 들어간다. 대상은 피임약부터 열대병 치료제까지 다양하다.

바스프는 지난해 12월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에퀴놈에 투자했다. 에퀴놈은 종자 기업으로 컴퓨터 기반의 사육 기술을 개발했다. 식품 산업에 최적화된 씨앗을 개발해 건강한 식물성 제품의 생산을 지향한다. 에퀴놈은 현재 대두콩, 완두콩, 팥, 퀴노아 등 다양한 콩 종류를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이는 육류 대체품 제조 분야에서 큰 활약을 한다. 컴퓨터 데이터베이스가 수천 가지 식물의 유전학적 특성을 분석해 원하는 특성에 맞춰 이상적 교차점을 결정한 후 최적화된 특성을 가진 씨앗을 설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백질, 오일, 영양소 함량, 기능성, 해충 저항성 등의 조합이 가능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품종은 맛과 질감 등에서 효율적 육류 대체품 구실을 한다. 바스프 벤처 캐피털의 마쿠스 솔리비데 CEO는 "에퀴놈 투자로 바스프는 식물 최적화 전략을 보완하고 지속 가능한 건강한 식단 사업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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