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혀서 지각하겠다고요? '고젝' 오토바이 빨리 부르세요

입력 2020.01.17 03:00

인도네시아 승차공유업체 '고젝'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시내에서 녹색 상의를 입은 고젝 배달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자동차 사이를 가로지르며 고객의 물건을 운송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시내에서 녹색 상의를 입은 고젝 배달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자동차 사이를 가로지르며 고객의 물건을 운송하고 있다. /블룸버그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극심한 교통 정체로 악명이 높은 도시다. 네덜란드 위치정보회사인 톰톰에 따르면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교통 체증이 심하다. 그러다 보니 일반 시민들은 바쁠 땐 자동차 사이를 파고들 수 있는 오토바이 운전을 선호할 정도다. '동남아시아의 우버'라고 불리는 승차공유 서비스 '고젝(Gojek)'은 최악의 교통지옥에서 오토바이 호출 서비스로 샛별처럼 떠오른 스타트업이다. 고젝은 인도네시아말로 오토바이 택시를 뜻하는 오젝(Ojek)의 단어를 변형해 만든 것이다. 지금은 오토바이·차량을 활용한 음식 배달, 택배, 공과금 납부 등 서비스 영역을 확장하며 우버와는 다른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로 진화 중이다. 구글과 텐센트 등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받아 지난해엔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중 최초로 기업가치가 100억달러를 돌파,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트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토바이 활용한 모든 서비스 제공

고젝은 2010년 오토바이 운전자와 승객을 연결해주는 콜센터로 시작했다. 시내 곳곳에 오토바이 승차를 원하는 소비자는 많은데, 낙후된 통신 인프라로 인해 고객을 찾지 못해 놀고 있는 운전자가 많았다. 이러한 비효율을 해결해주는 게 고젝 창업자인 나딤 마카림의 첫 목표였다. 고젝이 지금처럼 종합 테크 기업의 모습을 갖춘 것은 2015년 1월 스마트폰 앱을 출시하면서부터다. 고젝은 이 무렵부터 공유차 서비스뿐 아니라 배달 등 오토바이로 응용이 가능한 신규 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발굴해나가기 시작했다. 우버보다 규모도 작은 스타트업이 비슷한 모델로, 단지 모빌리티(운송)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고젝 관계자는 "오토바이를 활용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며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열 곳이 넘는 스타트업과 기업을 인수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발은 고작 오토바이 20대와 전화기 몇 개뿐일 정도로 미약했으나, 지금은 택배(고센드), 음식 배달(고푸드), 모바일 결제(고페이), 공공요금 결제(고빌스), 청소 대행(고클린), 차량 정비 대행(고오토) 등 일상 서비스를 수십개 앱으로 망라해 인도네시아 국민 생활 전반으로 파고들고 있다. 최근엔 자카르타 시내를 다니다 보면 고젝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 금융회사의 자카르타 주재원은 "깜빡 잊고 중요한 서류를 집에 두고 와 집에 갔다 오려면 자동차로는 3~4시간이 걸려 아찔한데, 고젝을 활용하면 한 시간 안에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앱 안의 앱 '수퍼앱'이 핵심 축

고젝 앱 안에 다양한 앱을 두는 '수퍼 앱'은 고젝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 축이다. 모든 서비스가 수퍼 앱 안에 들어 있어 선순환 효과를 내는 덕분에 각 앱 내 개별 서비스들이 각자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기업) 규모로 올라올 정도로 성장 속도도 빠르다. 예를 들어, 지난해 고푸드 등 각 앱의 배달 건수는 4000만건에 달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앱에서 결제하는 고객이 인도네시아에서만 2000만명에 이를 정도로 거대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특히 고페이와 같은 핀테크 서비스는 고젝이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다. 인도네시아가 카드·은행 ATM 등 기본적인 금융 인프라가 낙후됐던 터라 고젝의 디지털 결제 서비스는 파죽지세로 인도네시아의 결제·송금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체 디지털 거래의 40%를 차지한다는 게 고젝 측의 추산이다. KPMG 인터내셔널과 H2 벤처스가 발표한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에도 4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핀테크 업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현금 없는 결제와 금융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려 핀테크 스타트업(Coin.ph)을 인수해 결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고젝이 말레이시아의 차량공유업체인 그랩과 함께 동남아시아에서 우버보다도 더 영향력 있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성장한 것도 동남아 각국 현지의 수요에 맞는 사업을 일궈낸 덕분이다. 현재는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필리핀 등 다른 동남아 5개 국가 210개 도시에 진출을 시도 중이다. 고젝 관계자는 "고젝의 서비스는 주로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인 개발도상국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며 "예를 들어, 태국 음식 배달 시장에 진출한 이후 전체 배달 시장 규모는 2배로 커졌고, 고젝의 매출은 1년 만에 8배 늘었다"고 설명했다.

택시업체와 지분 맞교환해 윈윈

나딤 마카림
한국에서 카카오택시와 타다 등 신생 스타트업이 기존 사업자와 심한 마찰을 빚은 것처럼 고젝도 공유차 사업이 커 갈수록 저항에 부딪혔다. 특히 현지 택시 업체들의 만만치 않은 반발은 고젝의 시장 출시를 가로막았다.

고젝의 해법은 특별하지 않았다. 이해관계가 얽힌 당사자들에게 양보하고 설득했다. 중요한 점은 말로만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이다. 우선, 고젝은 이용자들이 현지 최대 택시 업체인 '블루버드'를 고젝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호출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블루버드'의 지분과 고젝의 지분을 서로 맞교환함으로써 상생이 실질적인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분 구조를 만들어 당사자들을 납득시켰다. 고젝 관계자는 "스타트업이 신종 비즈니스를 만들면 종종 승자와 패자를 만들지만, 궁극적·사회적으로 도움이 되고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다면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기 더 쉽다"고 말했다. 또 "고젝은 일종의 백화점처럼 진화했기 때문에 어느 시장에 들어가도 시장 파이를 2배 이상 키워 갈등을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에선 오토바이 공유 서비스를 대중교통 체계 안에 편입해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고젝에 따르면 블루버드 택시 운전자는 8만명에서 4만명으로 줄어든 반면, 오젝 드라이버가 10만명에서 200만명으로 늘었다.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정부는 고젝과 그랩바이크 등의 신규 기사 모집에 제한을 두는 등 규제 확대를 검토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승차공유 서비스 회사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자유민주주의 시장 원칙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안드리아 부차라 인도네시아 투자청 인프라 담당 과장은 "정부는 당시에 택시운전자들의 반발에 애를 먹었지만 서로가 '윈윈'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설득해 지금과 같은 모델을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35세 나이에 교육부 장관 발탁

지난해 말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고젝의 창업자 마카림을 인도네시아 교육문화부 장관에 임명했다. '100년 대계'로 불리는 교육과 국가 연구개발 혁신전략을 담당할 사령관에 성공한 혁신 기업가를 앉힌 것이다. 35세라는 젊은 나이뿐 아니라 스타트업 창업자가 내각에 입각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인도네시아 경제가 침체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경제를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마카림 장관은 인도네시아의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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