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200만곡, 기분에 딱 맞춰 골라줍니다"

입력 2020.01.17 03:00

클래식 스트리밍 앱 '아이다지오'의 틸 얀추코비츠 창업자

클래식 스트리밍 앱 '아이다지오'의 틸 얀추코비츠 창업자
클래식 스트리밍 앱 '아이다지오'의 틸 얀추코비츠 창업자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한 편의점에는 하루종일 모차르트의 오페라 곡이 흐른다. 모차르트는 편의점 주인 슈나이더씨가 제일 사랑하는 작곡가다. 그는 "예전에는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수동적으로 들었는데 클래식 음악 스트리밍(streaming)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모차르트만 골라서 실컷 들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회사원 이지영(39)씨는 요즘 출퇴근할 때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을 클릭해 베토벤을 듣는다. 그는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해외 음반도 쉽게 찾을 수 있어 편하다"고 했다.

클래식 음악도 이렇게 스트리밍으로 듣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스트리밍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음악이나 영상을 전송하는 기술이다. 세계 클래식 음악 시장이 정체된 상황에도 클래식 스트리밍 시장은 쑥쑥 크고 있다. 이런 클래식 스트리밍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업체는 독일의 스타트업(신생 기업) 아이다지오(Idagio)이다. 아이다지오는 IT(정보기술)의 I와 '천천히'란 뜻의 음악 용어 아다지오(Adagio)를 버무린 것. 빠른 것과 느린 것의 아이러니한 조합인 셈이다. 바흐와 베토벤을 길러낸 클래식의 나라 독일에서 스트리밍 실험을 하고 있는 틸 얀추코비츠(Janczukowicz·53) 아이다지오 창업자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클래식과 IT의 우연한 만남

얀추코비츠는 20년 넘게 클래식 분야에서 일한 베테랑이다. 독일의 명문 쾰른 음대에서 공부한 피아노 수재였지만 매니저와 기획자로 더 이름을 날렸다. 일찍부터 미국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에서 일했고 33세에 유럽본부를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는 세계 5대 클래식 공연 기획사로 통한다. 그는 "당시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일본의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독일의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과 함께 한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얀추코비츠가 스트리밍에서 가능성을 본 것은 우연이었다. 2012년 친구 소개로 30대 IT 전문가인 크리스토프 랑게(Lange)를 만났고 둘은 클래식 스트리밍 앱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급변하는 21세기에 클래식 음악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함께 고민했어요. 답은 스트리밍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으로 클래식을 듣는다는 아이디어는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얀추코비츠는 결국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베를린의 집까지 팔았다.

급성장 중인 세계 클래식 스트리밍 시장
클래식 200만곡…15년 청취 분량

얀추코비츠는 2015년 아이다지오 앱을 독일 시장에 내놨다. 2018년에는 미국에도 출시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관심을 끌며 앱 다운로드 횟수는 5년 만에 180만 회를 넘겼다. 지금은 세계 190여개국 클래식 마니아들이 아이다지오 앱을 쓴다. 얀추코비츠는 "독일에선 공연장 관객의 평균 나이가 60세 정도인데 아이다지오 사용자는 보통 35~55세 정도"라며 "젊은 층을 클래식으로 끌어들이는 데 일단 성공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거액의 투자도 유치했다. 2017년 유럽의 벤처투자사인 btov, 호주의 사모펀드인 매쿼리 등으로부터 950만유로(약 120억원)를 유치했다. 2018년에 추가로 1000만 유로를 더 투자받았다. 지난해에는 미국의 타임지가 선정한 '2019년 100대 발명품'에 이름을 올렸다. 타임지는 아이다지오를 '인스턴트 클래식'이라고 부르며 "대부분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중음악에 집중하고 있는데 아이다지오는 클래식을 대중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일매일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정신이 없어요.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죠. 클래식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잠시 쉴 수 있게 해줍니다.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말이죠."

아이다지오는 방대한 라이브러리를 갖고 있다. 들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 음원이 200만 개(트랙 기준)가 넘는다. 다 들으려면 15년을 쉬지 않고 들어야 한다고 한다. 얀추코비츠는 "전 세계 2500여개 오케스트라, 6500여명의 지휘자, 6만여명의 음악가를 포함한다"며 "세상에 녹음된 클래식 음악의 대부분이 이 안에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음원 200만 개를 확보하기 위해 아이다지오는 음원을 소유한 그라모폰, 소니, 워너 등 대형 음반사, 작곡가 등과 줄줄이 계약을 체결했다. 로열티를 주는 방식을 바꾼 덕이었다. 얀추코비츠는 "한 곡당 일정 금액을 사용료로 주는 기존 음악 스트리밍 업체들과 달리 실제로 음악을 들은 시간, 이용자 수에 따라 사용료를 주는 모델을 제안했다"고 했다. 작년 10월에는 세계 최고 관현악단 중 하나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손잡고 6개 공연 실황을 독점 공개했다.

수많은 명곡 검색 방법이 탁월

스트리밍으로 클래식 많이 듣는 지역
아이다지오는 클래식을 다루지만 그 속엔 혁신 기술이 담겨 있다. 얀추코비츠도 "우리의 경쟁자는 테크(기술) 기업"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강력한 검색 기능이다.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대중음악 스트리밍 앱의 경우 구조가 간단하다. 가수(아티스트), 곡, 앨범 등 3가지 검색어로 충분하다. 하지만 클래식은 경우의 수가 작곡가, 지휘자, 오케스트라, 음악가, 악기 등 8가지 이상이다. 같은 베토벤의 교향곡도 누가 연주했는지, 누가 지휘했는지 등에 따라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클래식의 역사는 수백 년이다. 얀추코비츠는 "헤르베르트 폰 카랴안이 지휘하고 마리아 칼라스가 노래한 베르디의 오페라 음반에선 누가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클래식만의 알고리즘을 개발해 보다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아이다지오에는 이용자의 무드(기분)에 맞는 곡을 틀어 주는 기능도 있다. 클래식 음악을 16가지 기분에 따라 촘촘하게 나눴다. 기분 중에는 '찬란한(radiant)'도 있고 '비극적인(tragic)'도 있다. '낙천적(optimistic)'을 선택하자 모차르트의 교향곡 29번이 나왔다. 얀추코비츠는 "음대 교수, 아티스트, 클래식 담당 기자 등으로 전문가팀을 만들고 클래식 곡을 16가지로 분류했다"며 "중국의 유명 피아니스트인 랑랑도 참여했다"고 말했다.

아이다지오의 한 달 이용료는 9.99달러(약 1만1600원·프리미엄 상품 기준)다. 다른 클래식 스트리밍 서비스와 비교하면 다소 싼 편이다. 현재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4개 언어로 서비스 중인데 올해는 중국어 서비스를 추가할 계획이다. 얀추코비츠는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중 하나"라며 "놀라운 아티스트가 많이 나오고 있고 클래식에 대한 팬들의 열정도 뜨겁다"고 말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Interview in Depth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