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때 빚은 모두 갚는 것이 좋을까

입력 2020.01.17 03:00

[Editor's note]

김기훈 경제부 부장
김기훈 경제부 부장
미·중 무역 전쟁이 작년 말 휴전하면서 세계 경제가 잠시 한숨을 돌리는가 했더니 새해 들어 미국과 이란이 격렬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달 초 전미경제학회에 모인 학자들은 중동 사태가 악화하고 이에 따라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 기업과 가계가 유가 부담이 커지면서 이게 세계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있다고 경고한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과 신흥국의 막대한 부채를 우려했다. 그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 시장은 물론이고, 미국 등 선진국의 막대한 부채도 주목해야 한다"며 "이 나라들의 재정 여건을 보면 세입 구조가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제학자들은 주로 과다한 국가 부채와 이에 따른 외환 위기 가능성을 주목한다. 그러나 빚의 위험은 기업과 가계도 마찬가지이다. 미·중 휴전으로 경제가 되살아날 때는 빚을 더 내 투자해야 할까? 미·중이 다시 격돌하고 미·이란의 긴장이 심해져 앞날이 불투명할 때는 빚을 미리 다 갚아버리는 것이 좋을까?

채권 발행과 은행 대출로 대표되는 빚(차입)은 양면성이 있다. 만약 기업이 투자받은 자본금 외에 많은 자금을 차입해 큰 이익을 내면 자본금이 늘어나면서 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반면 빚을 갚지 못하면 파산한다. 희비를 가리는 기준은 경영자가 빚낸 돈으로 이자 이상의 수익을 내는 재무 관리와 사업 능력이다.

경영 전문가들은 대체로 호황이 예상되면 빚을 내 투자를 늘리라고 권한다. 반면 불황기에는 우량 자산을 매각해서라도 빚을 갚으라고 이야기한다. 빚을 내도 이자 이상의 수익을 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차입은 기업 재무 구조의 약점이라고 보고, 주식을 더 발행해서라도 은행 빚을 갚으라고 조언한다. 회사 주식을 안 가진 전문 경영인은 주로 이 조언을 따른다.

그러나 주식 보유자 관점은 다르다. 회사 주식을 보유한 오너 경영인은 호황이든 불황이든 주식을 더 발행해 주식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꺼린다. 대신 좋은 실적을 내는 사업 부문이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차입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또 차입 이자는 세금을 낼 때 비용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감세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가치 투자의 창시자 벤저민 그레이엄은 "빚이 없다면 경영자는 매우 편해지겠지만, 주주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량 기업은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빚을 약간 갖고 있는 것이 좋다. 1929년 미국 대공황 직전에 일류 기업 사이에 빚 갚기 광풍이 불었다. 은행들은 좋은 대출처를 찾지 못해 이류·삼류 기업의 주식 담보대출에 매달렸다. 그 결과 대공황 때 은행 부실이 더욱 심각해지면서 경제 위기가 악화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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