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같은 사람 없어요 좋아하는 옷도 다 다를 수밖에 없죠

    • 이지훈 교수 세종대 경영학부

입력 2020.01.03 03:00

이지훈의 CEO 열전 (12) 스티치픽스 창업자 카트리나 레이크

이지훈 교수 세종대 경영학부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네이버 쇼핑에 들어가서 '청바지'라고 입력해 보라. 검색 결과가 641만개 뜬다. 너무 많다. 이런 게 오히려 고통스러운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이런 걸 바라기 시작했다. "누가 내게 딱 맞는 걸 골라주면 좋겠어." 맥킨지가 "5년 안에 개인화(personalization)가 마케팅 성공의 가장 중요한 동인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유다.

스티치픽스(Stitch Fix) 창업자 카트리나 레이크(Lake)의 성공 비결 역시 패션의 개인화를 밀어붙인 데 있었다. 9년 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 다니던 레이크에게 쇼핑은 즐거운 경험이 아니었다. 공부하는 시간을 쪼개서 뭘 사려고 하면 고르는 데 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는 생각했다. 옷을 더 편하게 고르고 살 수 없을까? 이 생각은 창업으로 발전했고, 주로 친구인 고객 29명으로 출발한 서비스가 지금은 연간 320만명이 이용하는 서비스로 발전했다. 스티치픽스는 2017년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현재 기업 가치가 3조1000억원(작년 12월 24일 기준)에 이른다. 상장 당시 35세였던 레이크는 미국에서 기업을 공개한 최연소 여성이 됐다.

이미지 크게보기
카트리나 레이크 스티치픽스 CEO가 지난 2018년 2월 미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에서 열린 메이커스 콘퍼런스에서 여성 리더십의 중요성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블룸버그
데이터 분석, 年 320만명 옷 골라줘

스티치픽스라는 회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전담 코디가 있는 인터넷 쇼핑몰'이라고 할 수 있다. 고객이 체형과 취향 정보를 입력하면 딱 맞는 옷이나 신발, 액세서리를 다섯 가지 골라 집으로 보내준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건 사고, 마음에 안 드는 건 반송하면 된다. 스티치픽스는 제조 업체가 아니다. 공장이 없다. 옷은 회사와 제휴한 1000여 브랜드에서 공급받는다. 이런 방법으로 스티치픽스가 올린 매출이 2019년 7월까지 1년 동안 약 1조8000억원에 이른다. 전년보다 29% 증가한 규모다. 어떤 시장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소비자 취향이 변덕스러운 의류 유통업에서 단기간에 이런 성과를 낸 것은 기적과도 같다. 고객의 마음에 쏙 드는 옷을 골라서 추천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티치픽스가 이 일을 경쟁자보다 월등히 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그건 쇼핑을 데이터 과학과 연결한 데 있다. 쇼핑은 남성보단 여성의 영역이다. 그러다 보니 남자들 전유물로 치부되던 IT나 데이터 분석과 연결 고리가 약했다. 그러나 여성이면서도 데이터를 좋아했던 레이크는 둘을 연결했다.

레이크는 학부(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엔 컨설팅 회사에서 소매업과 외식업을 담당했다. 그는 세상이 변했음에도 두 산업이 소비자 경험 측면에선 수십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고, 특히 데이터 활용 측면에서 미개척지와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데이터가 의류 구매 경험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옷에 대한 취향이란 것도 결국은 허리둘레, 길이, 옷의 소재, 색상, 패턴과 같은 여러 속성의 조합일 뿐이다. 모두 단지 데이터일 뿐이다. 데이터를 충분히 모으면 사람들이 어떤 옷을 원할지 그림이 그려진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창업을 생각했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사업 리스크(위험)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배웠다.

알고리즘 추천 기반… 인간이 최종 판단

창업 초기 스티치픽스는 고객에게 간단한 설문 조사를 하고 거기 맞춰 사람이 옷을 골라주는 개인 스타일리스트 방식으로 시작했었다. 그러나 고객이 점점 많아지자 본격적으로 데이터 분석에 착수했다. 획기적인 전기가 된 건 넷플릭스에서 추천 알고리즘을 담당하던 엔지니어 에릭 콜슨을 찾아간 것. 레이크는 "사람들이 쇼핑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며 도움을 청했다. 콜슨은 새로운 도전에 흥미를 느껴 최고알고리즘책임자라는 직함으로 스티치픽스에 입사한다. 콜슨이 보기에 스티치픽스는 넷플릭스와 다를 바 없었다. 넷플릭스가 사용자의 시청 기록을 분석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추천하듯, 스티치픽스 역시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옷을 추천하기 때문이다.

콜슨을 시작으로 현재 스티치픽스에는 데이터 과학자 12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고객 정보에 근거해 정확한 추천을 해주는 일에 골몰한다. 이들이 개발한 다양한 알고리즘을 통해 고객 한 명 한 명의 스타일 지도가 그려진다. 각 지도는 그 고객에게 맞는 수백 개 제안으로 구성된다. 고객과 인연을 맺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데이터는 늘어나고 추천은 더 정확해진다.

그러나 스티치픽스는 옷 추천을 기계에만 맡기지 않는다. 기계와 인간이 협업한다. 이 회사엔 주로 파트타임 재택근무를 하는 스타일리스트가 5100명 있다. 알고리즘이 일차적으로 옷을 고르지만, 최종 판단을 내리는 건 그들이다. 레이크 자신도 일주일에 고객 5명을 스타일링해 준다. 레이크는 "좋은 사람과 좋은 알고리즘의 결합은 강력하다"고 말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스티치픽스 초기 화면. 스티치픽스는 고객들이 전에 고른 옷과 의류 소품 데이터를 분석해 취향에 맞는 새로운 제품을 추천해준다. /스티치픽스
차이를 존중하는 조직 문화

레이크가 개인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남다른 철학에 있기도 하다. 레이크는 혼혈이었기에 다양한 문화와 관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레이크는 키가 크든 작든, 몸무게가 많든 적든 모든 사람에게 맞는 옷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버사이즈(초대형) 옷도 취급하기 시작했다. 제휴 브랜드들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한때 서비스를 중단했지만, 전설적인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를 끌어들여 서비스를 재개했을 정도로 집념을 보이고 있다.

레이크는 'culture fit', 즉 조직 문화 궁합이란 말을 싫어한다. 반(反)다양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들의 차이를 존중하고 그것이 섞이지 않고 더해지는 'culture add', 즉 문화적 추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티치픽스 이사회의 60%가 여성이고, 엔지니어도 35%가 여성이다. 레이크는 말했다. "최고의 개인화를 할 수 있는 기업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고객을 개인화하는 능력에 의해 살고 죽는다. 그것이 우리의 생명선이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Focus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