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배터리~" 유럽 전기차 업체들 한국 3社에 러브콜

입력 2020.01.03 03:00

최원석의 '業의 경쟁력' (1) 글로벌 시장서 승산있는 한국 배터리, 5가지 이유

최원석 국제경제 전문기자
2019년 11월 4일, 독일 츠비카우(Zwickau)의 폴크스바겐 공장에서 신차 출시 행사가 열렸다. 참석자 규모 100여 명도 안 되는 작은 행사였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독일 총리까지 온 이유는 이날 출시된 차가 폴크스바겐이나 독일 전체에 큰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었다. 이 차는 'ID.3'라는 전기차다.

2020년 초 시판되며, 판매 목표는 연 10만대. 폴크스바겐은 ID.3를 시작으로 전기차 대량 보급에 나선다. 2025년엔 그룹 전체로 전기차 300만대를 판매할 계획이다. 그런데 폴크스바겐 전기차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배터리는 네 업체가 공급한다. 그 가운데 3곳이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업체다. 나머지 한 곳이 중국의 CATL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2~3년은 유럽이 전기차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올해부터 환경 규제가 강화돼 주요 업체마다 전기차 생산을 하지 않고는 거액의 벌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3사는 미래에 어떻게 될까? 다섯 가지 측면에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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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독일 폴크스바겐은 자사의 전기차 생산 확대에 맞춰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와 공급계약을 맺었다. 사진은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ID.3’. 올해 초 시판된다./폴크스바겐
①승부처 유럽 시장, 한국이 선점한다

2019년까지 전기차 시장은 중국이 이끌었다.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자국 업체에 몰아줬기 때문에 중국 배터리 업체 실적이 급등했다. SNE리서치의 2019년 상반기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 업체 순위'를 보면, 중국CATL이 세계 생산량의 26.4%를 차지해 1위였다. 그동안 세계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에 독점 납품했던 일본 파나소닉이 점유율 23.7%로 2위, 중국 BYD가 14.5%로 3위를 차지했다. LG화학과 삼성SDI는 각각 4위(12.8%)와 5위(4.5%)였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하고, 외국 배터리 업체 차별도 없애고 있어 중국 업체 실적이 급감하고 있다. 2019년 10월 업체별 배터리 생산량을 보면 LG화학이 BYD를 제치고 3위에 올랐다. 전년 동월과 비교할 때 1위 CATL이 17% 감소, 2위 파나소닉이 38% 감소, 4위 BYD가 66% 감소한 데 비해 LG화학은 오히려 28% 증가했다.

②자본 집중력, 스피드, 양산력 갖춰

미래에셋대우증권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2018년 15조1000억원, 2019년 25조원에서 2023년 95조8000억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누적은 260조원 정도다. 그런데 국내 배터리 3사가 현재 세계 자동차회사에서 수주한 규모만 170조원에 달한다. 정확한 분석은 어렵지만, 앞으로 최소 4~5년은 한국 업체가 시장을 주도할 것이란 관측이 가능하다. 물론 일본은 파나소닉, 중국은 CATL 등 자국 업체 중심이 되겠지만 향후 수년간 전기차의 중심 시장이 될 유럽은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무대가 될 것이다.

유럽에는 LG화학이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2018년 공장을 지었고 현재 대대적 증설이 진행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헝가리 코마롬에 2020년 가동 목표로 공장을 짓고 있다. 2022년 추가 증설이 이뤄질 예정이다. 삼성SDI도 헝가리 괴드에 2017년 공장을 지은 데 이어 2020년을 목표로 대대적 증설 중이다. LG화학은 현재 70GWh에서 2023년 200GWh로, SK이노베이션은 현재 20GWh에서 2023년 100GWh, 삼성SDI는 현재 30GWh에서 2023년 130GWh로 각각 전기차 배터리 생산 능력이 늘어난다. 게다가 3사 배터리 공장은 유럽뿐 아니라 중국·미국까지 퍼져 있다. 이 정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안정적 품질을 유지하며 생산을 늘린다는 것은 기존에 쌓아온 글로벌 운용 능력과 자금 집중력, 경영자의 빠른 판단 등이 갖춰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현재 세계 1위 전기차 배터리 업체 CATL은 중국에선 강하지만 아직 한국 업체만큼 빠르게 해외 생산기반을 확충하기엔 능력이 모자란다는 평가다. 한 업계 전문가는 "CATL의 배터리 품질은 한국의 80~85% 수준으로 선진국 자동차 업체 요구에 맞추려면 시간이 1년에서 1년 반은 더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해 11월 4일(현지 시각) 폴크스바겐 ‘ID.3’ 공장을 방문해 “2030년까지 전기차 충전소 100만 곳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폴크스바겐
③車회사가 주도권 잡긴 어려워

현재 전기차 원가에서 배터리 비율은 35~40% 수준. 앞으로 원가를 낮춘다 해도 자동차 업체로서는 대단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따라서 대부분 자동차업체가 배터리를 자체 제작해 부담을 낮출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리튬이온 배터리 시대에는 자동차 회사들의 이런 의도가 실현되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테슬라는 자체 배터리 기술력이 있지만, 중국의 모델3 공장에 납품할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LG 화학에 맡겼다. 전문업체만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GM도 LG화학과 합작법인을 만들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생산은 LG화학이 거의 도맡게 된다. BMW는 삼성SDI와 배터리 공급 장기계약을 맺어 사실상 삼성SDI에 의존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이 스웨덴 배터리업체 노스볼트와 합작해 2023년부터 배터리를 양산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이 합작사가 국내업체만큼의 양산력·품질력을 갖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생산에 성공한다 해도 폴크스바겐 전기차에 필요한 양에 크게 못 미친다. 전문가들은 폴크스바겐이 배터리 기술을 내재화해 한국 3사와 CATL 등 배터리 공급업체에 대해 가격협상력을 높이려는 목적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④부품 '세트로 납품', 한국이 최고

국내 배터리 3사의 강점 중 하나는 배터리뿐 아니라 자동차에 꼭 필요한 전장 부품을 세트로 납품해 시너지를 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은 삼성SDI의 배터리뿐 아니라, 그룹 내 삼성전자 아래 세계 1위 전장부품업체 하만을 두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컴퓨터 두뇌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사업도 확장 중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자동차 계기판 등에 적용이 늘어나고 있는 OLED 분야에서 세계 1위다. 최근 LG도 LG 화학 배터리뿐 아니라 그룹이 구비한 전기모터, 디스플레이, 각종 전장품 등을 활용해 자동차 업체와의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⑤수익성 높이는 게 과제

국내 배터리 3사의 과제는 수익성이다. 규모를 늘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앞으로 충분한 수익을 내야만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 파나소닉은 테슬라에 너무 의존했다가 가격 협상력 등이 떨어져 큰 폭 적자를 기록하는 바람에 성장 동력이 줄어든 상태다.

반면 국내 3사는 납품처가 다변화돼 있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다. LG화학은 작년 배터리 부문에서 116억원 적자가 예상되지만 올해부터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SDI는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소형 배터리에선 연 5000억원 흑자를 유지하고 있으나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 부문에서는 아직 적자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유럽 전기차 시장을 중심으로 급성장하고 있고, 특히 유럽에선 가격 협상력도 확보해 나가는 중"이라면서 "국내 업체들의 흑자 전환과 수익 확대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리튬이온 대체할 전고체 배터리 특허, 도요타가 갖고 있어… 10년 후 '걱정'

삼성SDI·SK이노베이션·LG화학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장기 전망은 어떨까? 세 가지 포인트로 분석할 수 있다.

①현재 전기차 배터리의 대세인 리튬이온 배터리는 앞으로 최소 10~15년은 대세가 될 것이다. 따라서 국내 3사 실적은 앞으로도 지속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②10년쯤 뒤부터는 차세대 기술인 전고체(全固體·all solid state) 배터리가 전기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제조공정이 리튬이온 배터리의 연장선 위에 있기 때문에 국내 3사 경쟁력이 유지될 수도 있다. ③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도요타·도쿄공업대가 전기차용 전고체 배터리 양산에 필요한 원천기술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바꾸었기 때문에 화재 위험이 훨씬 적다.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3배 정도 성능이 높다.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양산 단가도 저렴한 꿈의 배터리다. 대체 기술을 찾지 못한다면 도요타 등 일본에서 핵심 재료를 사와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도요타 특허를 회피할 기술 개발이나 국내외 협업이 절실한 상황이다. 도요타는 2025년에 연간 1100만대를 생산할 계획인데, 이 가운데 450만대가 전동차(전기차·하이브리드·플러그인하이브리드 등)다. 이 450만대 가운데 100만대는 순수 전기차다. 이렇게 되면 2025년 도요타의 배터리 수요가 2018년보다 20배 늘어나게 된다. 도요타가 전고체 배터리 원천기술을 무기로 시장을 넓혀나간다면, 배터리시장의 강자로 떠오르는 것도 시간문제이다.

국내 업체들도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특허 조사업체 이패턴트(e-Patent)에 따르면 2014~2018년 출원된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 5629건 가운데 한국은 미국과 함께 공동 3위(점유율 각각 14%)였다. 1위 일본(34%), 2위 중국(26%)에는 밀리긴 해도 의미 있는 수치이다. 조재필(2차전지 산학연 연구센터장) 유니스트 교수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인 국내 배터리 업체와 현대차 등이 도요타의 원천 특허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관건”이라면서도 “기술 개발에 전력한다면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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