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보이는 블랙홀 어떻게 찍었나… 전파 관측하고 해석해 표현한 것도 사진

    • 채승우 사진가

입력 2020.01.03 03:00

[채승우의 Photographic] <13> 블랙홀 사진

사진가
사진가
지난 한 해를 정리하면서, 과학저널 '네이처'는 올해의 과학 '사진'으로 블랙홀 사진을 꼽았다. '사이언스'지도 2019년의 혁신 성과 첫 번째로 블랙홀 직접 관측을 뽑았다. 블랙홀 프로젝트의 총괄단장인 셰퍼드 도렐레만 박사는 지난 4월 10일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연구진이 블랙홀을 관측해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모두가 이 결과물을 '사진'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사진은 어떻게 찍었을까? 카메라로 찰칵 찍은 건 아니다. 어쩌면 사진의 의미가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이번 기회에 살펴보자.

블랙홀 직접 관측한 첫 사진

사건지평선망원경(EHT·Event Horizon Telescope) 프로젝트는 2019년 4월 인류 최초로 블랙홀을 직접 촬영한 사진을 공개했다. 금색 고리 안 어두운 부분 가운데쯤에 블랙홀이 있다. / EHT컬래버레이션
사건지평선망원경(EHT·Event Horizon Telescope) 프로젝트는 2019년 4월 인류 최초로 블랙홀을 직접 촬영한 사진을 공개했다. 금색 고리 안 어두운 부분 가운데쯤에 블랙홀이 있다. / EHT컬래버레이션
이 사진을 촬영한 연구팀은 EHT 즉,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건의 지평선이란 블랙홀의 경계면을 부르는 말이다. 세계 200여명의 과학자가 참여했다. 과학자들은 6개 대륙에 흩어져 있는 전파망원경 8대를 연결해 거대한 가상의 망원경을 만들었다. 지구의 자전을 이용해 관측하니, 가상 망원경의 크기는 지구만 하다고 볼 수 있단다. 이번 결과를 낸 관측은 2017년 4월 열흘 동안 진행되었다. 그 후에는 자료를 모으고 그 자료를 분석해 '영상을 만드는 데' 시간이 들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한 전파망원경 8대 중 하나인 ALMA(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파 집합체).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66개 망원경 배열체이다. / ALMA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한 전파망원경 8대 중 하나인 ALMA(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파 집합체).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66개 망원경 배열체이다. / ALMA
이 결과물에 대해 연구자들은 블랙홀의 그림자를 촬영했다고 말한다. 사진의 금색 고리 안 어두운 부분 가운데쯤에 블랙홀이 있다는 뜻이다. 금색 고리는 블랙홀 주변을 빠르게 도는 물질들이 내는 빛이거나, 블랙홀이 내뿜는 소위 '제트'이거나, 블랙홀 뒤편의 별이 내는 빛일 수 있다. 정확한 것은 지금 수준의 관측으로는 알 수 없다.

이 블랙홀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관측의 대상이 되어 왔다. 지구에서 5500만 광년 거리에 있어 비교적 가까운 편이고, 태양의 65억배 질량에 지름이 160억km에 이르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블랙홀은 이름 그대로 빛까지 빨아들이기 때문에 직접 관측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블랙홀의 존재는 그 주변의 별이나 물질들의 움직임 등 여러 가지 간접적인 증거를 통해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이번 결과가 가치 있는 이유는 '최초의 직접 관측'이기 때문이다.

사진의 고정관념을 뒤흔들다

이제 질문을 해볼 차례다. 첫째, 전파망원경으로 뭔가를 '볼 수' 있을까? 전파 역시 빛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은 여러 가지 빛의 한 종류일 뿐이다. 빛에는 자외선, 적외선뿐 아니라 전파도 포함된다. 다른 표현으로 빛은 곧 전자기파인데, 파장이 짧은 것들은 자외선과 가시광선이 되고 파장이 긴 것은 전파가 된다. 이번 블랙홀 사진 덕분에 전파의 흔적도 사진이라 불리게 되었다.

둘째, 사진은 찰칵하는 순간 시간을 고정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이번 관측은 8시간씩 5일간 그것도 자전하는 지구와 함께 움직이며 기록한 측정값이다. 8대의 망원경이 정확히 하나가 되려면, 동시에 관측해야 하는데, 6개 대륙 8개 장소의 날씨가 모두 좋은 날을 만나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촬영은 띄엄띄엄 이루어진 것과 같다. 사실 오래전부터 우주 사진은 그런 방법으로 촬영되어왔다. 광학 망원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셋째, 사진은 카메라에서 완결되는 것인가? 이번에 발표된 블랙홀 사진은 촬영 후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연구실에서 영상화 과정을 거쳤다. 모두 4페타(4000테라)의 데이터를 모아야 했다. 전송하는 것이 불가능해 비행기로 실어 날랐다. 남극 대륙의 데이터는 겨울이 끝나기를 몇 달이나 기다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4곳의 세계적인 연구소가 각각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서로 다른 알고리즘을 사용해 영상을 만들었고, 그 4개의 결과물을 비교해 확인하고 다시 보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제 사진은 카메라보다 컴퓨터에서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낸다.

넷째, 사진은 사람의 개입이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가? 이번 프로젝트에는 이론과학자들이 포함되었다. 이들은 블랙홀에 대한 예측 모델을 만들었다. 8대의 망원경으로 구성된 가상 망원경의 데이터는, 어느 연구원의 표현대로 '건반이 빠진 피아노'와 같다. 건반이 빠진 피아노로 연주되는 음악을 듣고, 원곡이 무엇인지 빈 곳을 만들어 채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 이론의 모델이 관여했다. 이론이 검증을 한 것만이 아니라, 필요한 빈 곳을 채워 넣었다고 봐야 한다. 블랙홀 사진에서 보이는 고리는 정말 황금색일까? 전파에는 색이 없다. 이 색은 완전히 임의로 칠한 것인데, 거기에는 홍보, 좋게 말하면 대중화의 목적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사진의 개념은 변해간다. 누군가는 여전히 구식의 사진을 옹호하며 '사진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진이란 말이 탄생한 지 길어야 200년이다. 그런 마당에 '원래'가 어디 있겠나.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Arts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