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에게 분열되고 쇠약한 유럽을 물려줄 순 없어요"

입력 2020.01.03 03:00

7남매의 엄마, 폰데어라이엔 신임 EU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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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해 12월 EU 정상회의에서 EU의 새로운 성장 전략인 ‘그린 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②앙겔라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가 지난해 11월 CDU(기독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③폰데어라이엔 위원장 부부와 7명의 자녀들. ④독일 국방장관 재임 시절인 2015년 나토(NATO) 사령관(앞 줄 가운데)과 함께 나토군 훈련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 /신화통신·블룸버그·소프랑스·NATO
작년 12월 12일(현지 시각) 치른 영국 총선에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공약했던 집권 보수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며 압승을 거뒀다. 이에 따라 영국은 올 1월 EU(유럽연합)를 탈퇴하고 연말까지 EU 집행위원회와 '이행 협상'을 벌인다. 이행 협상은 탈퇴 후 둘 사이의 관계를 분야별로 다시 정하는 절차다.

하지만 속도를 내려는 영국에 EU가 최근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그 중심에는 지난달 1일 취임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von der Leyen·62) 신임 EU 집행위원장이 있다. 독일 국방장관이던 폰데어라이엔은 장클로드 융커에 이어 EU 행정부의 수반인 집행위원장에 올랐다. 여성이 집행위원장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경한 유럽 통합파로 통하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지난달 18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에서 단호한 어조로 "영국과 EU가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상태로 협상 기간이 끝나면 EU보다 영국이 더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벌레로 통하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집행위원회 위원장실 옆에 숙소를 차렸다. 사무실 옆에 진지를 치고 출퇴근 시간까지 아껴가며 일하겠다는 뜻이다.

7남매의 엄마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독특한 개인사로 주목받았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합계 출산율)가 1.5에 불과한 독일에서 그는 7남매를 낳아 기른 엄마다. 본인도 7남매로 태어났다. 독일 괴팅겐대와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졸업한 대학은 독일 하노버 의대다. 의대 재학 중이던 1986년 명망가 출신인 의사 하이코 폰데어라이엔과 결혼했다. 1987년 의대를 졸업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1991년 산부인과 박사가 됐다.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1990년에 이미 독일 기독민주당(CDU)에 입당했다.

아이를 키우느라 바빴던 그는 1990년대 후반 지방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2003년 아버지가 주지사를 했던 독일 니더작센주의 사회·여성·가족·보건장관이 됐다. 2005년 총리가 된 메르켈은 저출산 문제와 사회복지 개혁이 이슈로 떠오르자 일곱 아이의 엄마인 폰데어라이엔을 가족·청소년장관으로 전격 발탁했다. 폰데어라이엔은 이후 메르켈 내각에서 14년간 세 부처 장관을 거치며 메르켈 내각의 최장수 각료가 됐다. 기독민주당에서도 당수인 메르켈을 보좌하며 정치 행로를 함께했다.

'강한 유로, 친환경 성장' 강조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강한 유럽을 강조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작년 7월 유럽의회에서 선출된 직후 소감은 "강한 EU를 만들겠다"였다. 그는 또 자기 트위터에 "우리 부모들이 번창한 유럽을 물려준 것처럼 우리는 강하고 성공적인 유럽을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썼다. 영국의 주간지 더위크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더 강하고, 대담하고, 친환경적이고, 응집력 있는 유럽을 만들기를 꿈꾼다고 전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우선 유로화의 지배력 강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EU가 수입하는 석유, 가스 등 에너지의 80% 이상이 미국 달러화로 결제되고 있는데 이런 관행부터 바꿀 계획이다. 당장 러시아 최대 석유 회사인 로즈네프트가 결제 수단을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바꾸겠다고 선언하며 호응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지난달 취임 후 첫 EU 정상회의에서 EU의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그린 딜(Green Deal) 정책을 발표했다. 앞으로 친환경적 경제성장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2050년까지 EU를 세계 최초 '탄소 중립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도 내걸었다. 탄소 중립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신재생에너지 발전 등 상쇄 대책을 마련해 전체적으로 탄소 배출량 0을 이룬 상태를 말한다. 오는 3월 구체적 조건을 담은 기후법을 발의하고 여름까지 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기로 했다. 당초 EU 목표는 2030년까지 40% 감축이었는데 목표치를 크게 끌어올렸다. 투자할 돈은 1조유로(약 1300조원)로 예상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그린 딜은 단순히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라며 "혁신을 유도해 새로운 비즈니스와 시장,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임기 중 탄소국경세 도입 계획도 밝혔다.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상품을 수입하는 경우 생산 기업에 추가로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배출 규제로 불이익을 받을 EU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EU에 석유화학, 철강 등 상품을 수출하는 중국이나 한국 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집행위원회에 통상 감찰관을 신설했다. EU와 교역하는 나라들이 EU의 환경·노동 규범을 잘 지키고 있는지 감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무역협회는 "한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질 검증 안 돼" 지적에 비리 의혹도

일부에선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인구 5억명의 EU를 이끌 집행위원장 자질이 있는지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집행위원장이 되기 전에 그는 국제 무대에서 무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예전 위원장들은 유럽의회 의장이나 총리 출신이 많았는데 장관 출신인 점도 약점이다. 독일 국방장관 시절 비리 의혹으로 국정조사를 받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정부 조달 규정을 어기고 수억유로 규모의 용역을 외국 컨설팅 회사에 맡겼다는 의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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