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떻게 골칫덩이 300명을 정예 장병으로 단련시켰나

    •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입력 2020.01.03 03:00

미운 오리를 백조로 변신시킨 에이브러소프 USS 벤폴드 구축함장

제임스 마틴·위키피디아
미 해군 유도미사일 구축함인 USS 벤폴드의 장병들이 2012년 10월 신임 함장 취임식을 치르고 있다. 리더십 전문가 마이클 에이브러소프는 1997년부터 20개월간 이 배 함장으로 근무했다. 왼쪽 위 사진은 유도미사일을 발사하는 USS 벤폴드. / 제임스 마틴·위키피디아
현실에 존재하는 리더는 전지전능하지 않고 만능도 아니다. 인간이기에 경험과 역량의 한계를 가지고, 조직원으로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주어진다. 특히 군대의 지휘관은 상명하복의 질서에서 규율을 준수해야 한다. 명령에 따라 배치받고 병사들을 선택할 수 없으며, 제한된 예산이라는 제약 조건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다.

마이클 에이브러소프(Abrashoff·1961~)중령은 1997년 7월 310명의 장교와 병사들이 근무하는 미국 해군 구축함 USS 벤폴드의 함장으로 부임하여 20개월을 근무했다. 그는 전투력 최하위권의 골칫덩어리를 1년 만에 최우수 함정으로 변화시켰고, 함대 사령관이 가장 어려운 임무를 믿고 맡기는 해결사가 되었다. 나아가 벤폴드에서 도출되고 실행된 창의적 아이디어는 해군 전체로 전파되어 전투력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혁신의 발원지로 변모했다. 그의 지휘 우선순위는 '맛있는 음식, 양질의 훈련, 가능한 한 최대 진급'이었다.

이것은 너의 배다(It's your ship)

아날로그 시대 구식 군함의 함장은 배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이지스함은 병사 개개인의 역량을 발휘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야 했다.

에이브러소프 함장은 계급이 높으면 우월하다고 믿고 행동하는 기존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조직의 상하 관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서로 협조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방향을 잡았다. 처음에는 모두가 냉소적이었다. 의욕에 넘치는 신임 함장이 2~3개월 치르는 통과의례로 생각했다. 그러나 병사 개개인과의 면담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면서 역량과 특성을 파악하고 가능한 한 권한을 위임했다. '인명에 영향을 주거나, 세금이 낭비되거나, 군함 파손 위험성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위임 한계선을 명확히 했다.

시간이 흐르고 병사들이 적응하면서 탁월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실제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연간 4회의 함정 도색을 1회로 바꾸어 예산을 대폭 절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군함의 철제 볼트와 너트에서 주로 녹이 발생한다고 판단한 병사가 이를 스테인리스스틸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상부의 허락을 얻어 교체하자 실제로 녹스는 속도가 둔화되어 도색 주기를 연간 1회로 변경했다. 이는 미 해군 전체로 전파되어 막대한 세금을 아꼈다.

함정 전체의 성과는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장비 고장률이 1997년 75건에서 1998년 24건으로 감소되었다. 유지비 예산 2400만달러 중 60만달러, 수리비 예산 300만달러 중 80만달러를 남겼다. 다음 회계연도 예산에서 남긴 비용만큼 삭감되었지만 다시 10%가 절감되었다. 1998년 미 해군에서 가장 우수한 함정에 수여하는 스포케인 트로피를 받았다.

그는 자유와 권한을 주되 목표와 한계를 분명히 하면서 '이것은 너의 배다. 이 배의 운명이 너 자신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라. 스스로 결정하고 결과를 지켜보라'는 지론을 펼쳤다. 병사들은 더 많은 책임이 부여될수록 더 많이 배워나갔고,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질수록 더 많은 성취를 이루어냈다. '이것은 너의 배다'(It's your ship)는 벤폴드의 구호가 되었다.

작은 변화로 일상을 즐겁게 하라

미 해군 구축함 USS 벤폴드 함장 시절의 마이클 에이브러소프의 모습(왼쪽). 오른쪽 사진은 전역 후 리더십에 대해 매우 인상적인 강연을 한 에이브러소프.
미 해군 구축함 USS 벤폴드 함장 시절의 마이클 에이브러소프의 모습(왼쪽). 오른쪽 사진은 전역 후 리더십에 대해 매우 인상적인 강연을 한 에이브러소프. / 스테판 코헨 트위터
에이브러소프 함장은 병사들의 일상생활을 즐겁고 활기차게 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였다. 출발은 식당이었다. 정규 보급품에 추가하여 규정된 예산 범위 내에서 저렴하고 맛 좋은 민간 식료품을 구입해서 병사들에게 공급했다. 또한 벤폴드의 요리사 전원을 민간 요리 학원에 보내어 실습시켰다. 함장이 직접 주방을 자주 방문하여 요리사들을 격려하자 책임감을 느끼고 분발했다. 병사들의 식사 시간은 맛집 순례처럼 변모했고, 샌디에이고 기지 정박 시에는 다른 군함 승조원들이 벤폴드 식당으로 몰려들 정도로 소문났다.

함내 매점의 운영 방식도 바꾸었다. 보급장교와 상의하여 병사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간식거리와 배 이름이 새겨진 선물용 야구 모자, 라이터 품목을 대폭 늘렸다. 오래 묵은 재고는 함장이 직접 판매하는 재미있는 이벤트를 통해서 규정대로 신속하게 처분했다. 매점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병사들의 복지 기금으로 전입되기에 군대 생활의 만족도를 더욱 높이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매주 수요일 점심은 햄버거와 핫도그가 나오는 '슬라이더 데이'(슬라이더는 햄버거를 지칭하는 해군의 별칭)였다. 무미건조했던 시간에 병사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더니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음악이 단조롭다는 지적에 매주 화살을 던져 과녁을 맞히는 다트 게임을 벌여 우승자에게 음악을 고르는 권한을 부여했다. 매주 햄버거를 먹으면서 듣는 음악은 다양해졌다. 나아가 항해 중에는 금요일 저녁에 비행 갑판에서 음악을 같이 듣고 토요일 저녁에는 영화를 보면서 즐겼다.

스킨십과 이벤트로 사기를 올린다

에이브러소프 함장은 소위로 임관하여 배치받은 함정에 오르던 첫날을 푸대접으로 시작했었다. 사무적으로 대하는 장교들, 냉소적인 눈초리의 병사들로부터 느끼던 냉대와 불편한 느낌을 부하들에게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신임 장교들이 배정되면 환영하는 편지를 보냈다. 향후의 일정, 샌디에이고 기지와 인근의 숙박 시설 현황을 알려주어 불편이 없도록 했다. 벤폴드 로고가 붙은 범퍼 스티커와 야구 모자도 동봉했다. 신참 병사들은 공항에서 데리고 와서 당직사관이 맞이하고 가족들에게 전화하여 무사 도착을 알렸다. 48시간 이내에 함장이 직접 만나 환영 인사를 전했다.

병사 부모의 생일에는 '당신의 가족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으로 함장이 서명한 축하 카드를 보냈다. 그리고 병사들이 상을 받으면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받은 부모는 아들에게 전화해서 자랑스러움을 전했다. 어떤 병사는 부모가 이혼하여 함장이 각각 따로 편지를 보낼 정도로 세심하게 배려했다. 지휘부에서 사용하는 함내 전체용 방송은 유효한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함장이 마이크를 직접 잡고 내·외부 소식을 알리면서 잘한 일을 칭찬하고 격려했다.

한 방향으로 노를 저어라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벤폴드에는 함장을 보좌하는 참모장교 4명이 있었다. 평가에서 상위권에 들어야 진급이 가능하기에 매사에 치열하게 경쟁했다. 에이브러소프 함장은 처음에 이들에게 약속했다. "자네들 모두가 진급할 수 없음을 알고 있겠지. 하지만 임무를 잘해낸다면 귀관들이 배를 떠날 때 원하는 보직을 얻도록 최선을 다하겠네. 또 만약 군을 떠날 계획을 세운다면 민간 생활 준비에 도움 되는 일을 맡기겠다." 방침을 이해한 참모장교들은 스스로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나아가 함장은 각 부서에서 사람을 차출하여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는 빼버리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최고 인력을 보내는 원칙을 확립했다. 부서 차원에서는 불편이 따르겠지만 공통 프로젝트는 최고 팀으로 수행되었고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다. 후일 참모장교는 모두 지휘관으로 진급했다.

병사 차원에서는 항상 팀을 먼저 훈련시켰다. 병사들의 역량은 대부분 팀 차원의 협력을 통해서 발휘되기 때문이었다. 팀 훈련 후에 부진한 병사들에게 별도 보완 훈련을 실시했다. 병사들에게는 적극적 포상과 교육 기회 확대로 진급 가능성을 높였다. 1997년 벤폴드의 병사 진급률은 해군 평균 이하였지만 1998년에는 86명이 진급하면서 평균의 2배를 기록했다.

전체 차원의 협력을 중시했지만 미세한 경계선을 유지했다. 함장의 권위 유지를 위해 노력했고, 병사들이 장교들에게 지나치게 허물없이 대하거나 함부로 도전하지 못하도록 분명한 선을 그어서 기강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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