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사랑에 실패한 천재, 그를 구원한 마지막 사랑

    • 박종호 풍월당 대표

입력 2019.12.20 03:00

CEO 오페라 <17> 오펜바흐의 '호프만 이야기'

독일의 고도(古都) 밤베르크에 있는 극장의 정식 명칭은 E.T.A. 호프만 극장이다. 이 도시에서 살았고 이 극장에서 활약했던 E.T.A. 호프만(1776~1822)의 이름을 붙였다. 그는 이 극장 감독이었지만 직업이 따로 있었다. 판사였다.

법원에서 퇴근하는 순간 그는 다른 사람으로 변모했다. 낮에는 판사지만, 집에 돌아오면 희곡을 쓰는 작가였으며 화가였으며 또한 작곡가였다. 그러면서 자기 작품을 가지고 극장에 가서 연출도 하고 연기도 했다. 특히 호프만은 환상 문학의 대가로 문학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불행하게 살았다. 예술과 현실의 괴리에서 힘들어했으며, 그것은 알코올중독으로 이어졌다. 그가 작품을 대부분 취중에 집필했으리라는 말도 있다. 그의 작품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도 있는데,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나 '코펠리아' 등이 그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오페라도 적지 않은데 가장 유명한 것이 오펜바흐가 작곡한 '호프만 이야기'다.

2016년 11월 영국 왕립 오페라극장에서 펼쳐진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 한 장면.
2016년 11월 영국 왕립 오페라극장에서 펼쳐진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 한 장면. /풍월당
불우했던 천재의 세 가지 사랑

독일의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1819~1880)는 파리에 와서 오페레타라는 영역에서 성공을 거둔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지옥의 오르페'가 가장 큰 성공작이었다. 그렇게 많은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정통 오페라가 아니라 오락적 오페레타에서 성공했다는 것은 그의 콤플렉스였다. 오펜바흐는 인생을 정리하듯이 마지막으로 정통 오페라를 한 편 써서 자신의 진정한 실력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가 눈을 돌린 것이 호프만의 환상 문학이었다.

오펜바흐는 호프만 작품을 그대로 오페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 작품 중에서 세 가지를 고르고 그것을 나열하여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듬었다. 즉 '모래 사나이' '잃어버린 거울 속 모습' 및 '고문관 크리스펠'을 골라, 진주를 꿰듯이 한 오페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오페라 속에서는 실제 작가 호프만이 등장한다. 그는 뉘른베르크의 한 술집에서 오늘도 술을 마시고 있다. 그런데 술집 건너편에 있는 극장에서 지금 막 모차르트의 '돈조반니' 1막이 끝났다. 그리하여 공연을 보던 학생들이 막간에 맥주를 마시러 술집으로 밀려 들어온다. 학생들은 호프만에게 연애담을 얘기해달라고 조르고, 호프만은 자신이 겪었던 세 번의 실연(失戀)을 들려준다. 여기까지가 프롤로그이며, 이어서 세 막에 세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펜바흐는 이 오페라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어서 정작 자신은 이 대단한 작품을 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각 막의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다. 보통 각 막의 여주인공이나 장소 이름으로 막을 부른다. 흔히 처음에 배치되는 것이 '올랑피아'(로마)의 이야기다. 한 과학자가 자동 인형을 만들어서 자기 딸이라며 호프만에게 판다. 순진한 호프만은 진짜 사람인 줄 알고 인형에게 마음을 주었다가, 그녀가 부서지자 큰 상처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그녀는 겉만 예쁠 뿐, 정작 사랑할 내면의 능력이 없다. 다음의 '줄리에타'(베네치아)는 매춘부다. 호프만은 그녀를 차지하려고 다른 사내와 결투하여 사람까지 죽이지만, 그녀는 돈에 몸도 마음도 팔 수 있는 여자였다. 호프만은 또 한 번 상처를 받는다. 보통 마지막에 나오는 '안토니아'(뮌헨)만은 진정 호프만을 사랑할 가슴을 가졌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을 할 건강을 지니지 못하여, 그만 죽고 만다.

예술에서 구원을 얻다

세 막이 다 끝나면 에필로그가 나오는데, 프롤로그와 같은 술집이다. 호프만의 세 가지 이야기를 모두 들은 학생들은 숙연하다. 그들은 호프만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서 '돈조반니'의 2막에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다. 이것에는 "나는 모차르트의 '돈조반니'와도 겨룰 수 있다"는 오펜바흐의 호기가 담겨 있다. '돈조반니'가 다 끝나고 공연을 마친 사람들이 술집으로 들어온다. 그중에는 공연에서 여주인공을 부른 여가수 스텔라도 있다. 그녀가 지금 호프만의 연인이다. 하지만 세 이야기를 맨 정신으로 할 수 없었던 호프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다. 스텔라는 호프만을 버린다. 이렇게 호프만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또 한 번 실연을 당한다. 그런 스텔라를 데리고 나가는 것은 그녀를 노리던 국회의원이다. 예술의 진정한 정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여가수나 유혹하며 어울리는 상류층을 힐난하는 것이다.

그때 쓰러진 호프만에게 다가오는 것은 뮤즈다. 뮤즈는 호프만을 일으키며 노래한다. "호프만, 사랑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고, 눈물은 인간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지. 당신의 심장이 재로 타버려도 당신에게는 예술이 남아있지…." 호프만은 일어난다. 그리고 다시 펜을 잡는다. 사람은 우리를 배신하여도, 예술은 변함없이 곁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호프만 이야기 음반 · 영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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