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같은 어선, 그물 속 고기 빨아올려… 1분에 250마리 머리·꼬리 싹둑

입력 2019.12.06 03:00

[Cover Story] 노르웨이 수산업 세계 1등의 비밀
고등어 수출 세계 1위 '펠라지아'

이미지 크게보기
펠라지아 고등어 가공 공장에서 본 풍경. 노르웨이의 고등어 어선은 터치패드로 시설을 관리·조종한다(왼쪽). 조타실은 비행기 조종석 같다(가운데). 오른쪽 사진은 공장장이 고등어의 온도를 측정해 보여주는 모습. 그는 고등어 가공에는 온도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 셀리에(노르웨이)=최종석 기자
한국인에게 고등어는 '국민 생선'이다. 명실상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수산물 1위(2019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설문조사)이다. 그런데 요즘은 마트에 가면 고등어 10마리 중 2~3마리가 노르웨이산이다. 한국에 들어오는 수입 고등어의 88%(3만7000t)가 노르웨이산이다. 2010년만 해도 29%에 불과했는데 8년 만에 3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최근에는 한국 정부가 노르웨이에 무기를 수출하고 대금으로 고등어를 받아서 시중에 고등어가 넘쳐난다는 얘기가 돌 정도다.

노르웨이 고등어 맛의 핵심은 온도

[Cover Story] 노르웨이 수산업 세계 1등의 비밀
지난 10월 세계 1위 고등어 수출 업체 펠라지아(Pelagia)의 노르웨이 셀리에(Selje) 생산 공장을 찾았다. 펠라지아는 연간 140만t의 고등어를 가공해 55국에 수출하고 있다. 영국, 덴마크 등에도 공장이 있다. 한국에 수입되는 노르웨이산 고등어의 절반이 펠라지아 제품이다. 셀리에는 어업 도시 올레순에서도 4시간이 걸리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이 마을이 매년 9~11월만 되면 세계 곳곳에서 온 바이어와 근로자들로 북적인다. 고등어가 살이 꽉 차올라 가장 맛있는 '황금 조업기'이기 때문이다.

공장 안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인건비가 시급 3만5000원 정도로 높다 보니 대부분 작업을 기계가 한다. 무게에 따라 고등어를 자동 분류하는데 1시간에 50~60t을 처리한다. 머리와 꼬리를 자르는 작업도 기계가 한다. 1분당 250마리가 잘려나간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자르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바다에서 잡은 고등어를 가공하는 단순한 공정이지만 곳곳에서 신선함을 지키기 위한 오랜 노하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 공정에서 사용하는 물은 바닷물인데 영하 2도 정도로 수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펠라지아 측은 밝혔다. 머리와 꼬리를 잘라낸 고등어는 2단계에 걸쳐 얼리는 작업을 한다. 얼리는 속도를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서다. 대형 냉동기를 통과하면 고등어의 온도는 영하 30도 정도가 된다. 이쯤 되면 고등어가 나무처럼 딱딱해진다. 그렇게 나온 고등어를 0도 물에 살짝 담갔다가 포장을 한다. 이렇게 하면 얼린 고등어 표면에 얇은 막이 생겨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박스에 담은 고등어는 영하 30도 창고에 보관했다가 공항으로 보낸다. 공장장인 아스외른 뵈스트란드(62)씨는 "고등어는 매우 민감한 생선"이라며 "최대한 빠르게, 부드럽게 생산하는 게 신선도를 유지하는 핵심"이라고 했다.

펠라지아는 이렇게 생산한 고등어의 절반 이상을 일본으로 수출한다. 한국, 중국, 동유럽, 태국으로도 많이 나간다. 한국에는 보통 통고등어 형태로 수출한다. 이를 한국 공장에서 가공한 뒤 파는 것이다. 펠라지아는 고등어를 100% 다 활용한다. 살은 가공해 식품으로 수출하고 기름 등은 사료로 쓴다. 고등어로 오메가3 영양제도 만든다. 버릴 게 없다.

최근에는 롯데, 동원, 오뚜기 등 한국 기업이 연달아 이 공장을 찾고 있다고 한다. 노르웨이 고등어를 활용한 신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노르웨이 고등어는 동북아에서 잡히는 고등어와 품종이 다르다. 노르웨이 고등어는 지방과 오메가3 가 많이 들어 있는 애틀랜틱 고등어다. 지방이 많아 육즙이 풍부하고 맛도 고소하다. 등에 짙은 청록색 물결무늬가 있다. 동북아에서 주로 잡히는 퍼시픽 처브 고등어는 좀 더 날씬하고 작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지방이 많은 고등어보다 대구를 많이 먹는다. 고등어는 주로 통조림으로 만들어 먹는다.

엄격한 어획량 규제와 투명성

[Cover Story] 노르웨이 수산업 세계 1등의 비밀
펠라지아의 욘 스틴스리드 선임 매니저는 노르웨이 고등어 산업의 강점으로 ①엄격한 정부 규제 ②투명한 어획·유통 시스템 ③깨끗한 자연환경 등 세 가지를 꼽았다.

먼저 엄격한 정부 규제. 노르웨이에선 면허가 있어야 고등어를 잡을 수 있다. 또 한 해 잡을 수 있는 어획량도 철저하게 제한된다. 어획량은 매년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영국, 덴마크 등 인접국과 협의해 정한다. 노르웨이에서 어선들은 매일 자신의 활동을 수산청에 보고해야 한다. 연어 양식장은 매달 연어 마릿수, 무게 등을 보고할 의무를 진다.

둘째, 정부는 투명한 어획·유통 시스템을 구축했다. 누구나 인터넷에서 각 어선에 할당된 어획량과 앞으로 더 잡을 수 있는 물량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잡은 고등어는 공개된 사이버 경매로만 팔 수 있다. 특정 업체와 전속 공급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 고등어를 잡아서 유통하는 전 과정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공개돼 있는 것이다. 이런 투명성이 부담스러울 것 같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투명성 덕택에 예상이 가능하고 효율성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리브 홀메피오르 수산청장은 "1960년대 남획으로 청어의 씨가 마르는 위기를 겪은 뒤 수산물은 국가적인 자원이라는 공감대가 생겼다"며 "수산 자원의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는 인식도 거기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노르웨이에서 수산 자원을 관리하는 기본 원칙은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고 덧붙였다. 노르웨이는 1900년에 수산청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수산 자원을 연구·관리·감독하고 있다. 초기에는 연구 기능이 강했는데 1980년대 이후에는 수산 자원 관리 기능이 주력이 됐다. 깨끗한 자연환경을 유지해 품질 좋은 수산 자원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수산청은 서로 상충할 수 있는 기업의 이익과 환경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최선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 균형은 정치적인 타협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과학적인 균형입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Cover Story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