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산! 너를 끌고가 녹여서 마셔야겠다 … 황당 프로젝트 아닙니다, 남아공·UAE서 실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입력 2019.12.06 03:00

이철민의 Global Prism (27) 빙산의 식수 활용

이철민 선임기자
전 세계에서 물 부족 현상을 겪는 인구는 이미 21억명. 4년 전 유엔 보고서는 "2030년엔 세계 물 수요의 40%를 채울 수 없다"고 경고했다. 급격한 인구 증가와 도시화, 기후 변화 등이 주요 원인이다. 그런데도 지하수 개발 외에 마술 같은 해법(解法)은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카타르 등 중동 4개국이 전 세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바닷물의 담수(淡水)화 공정만 해도, 플랜트 건설 비용과 에너지 투자가 막대하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남극 대륙 주변의 빙산을 끌어다가 담수로 쓰자는 것이다. 매년 남극 대륙의 가장자리 빙붕(氷棚)에서 떨어져 나오는 빙산만 14만 개가 넘고 그 양도 2조t에 달해 전 세계 연간 담수 소비량보다 많은 것을 고려하면 아주 황당한 생각도 아니다. 빙산들이 바다에 녹아 들어가 해수면을 높이는 걸 방치하느니, 일부라도 끌어 식수(食水)로 쓰자는 것이다. 실제로 1975년엔 사우디 왕자 무함마드 알 파이잘이 두 차례 국제 콘퍼런스를 주도하며, 남극 빙산을 사우디까지 끌어오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빙산이 녹지 않게 적도를 넘어 예인할 수는 없다는 결론 끝에 흐지부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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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마시먼(트레블링 부머스닷컴)
비싼 담수화 플랜트 대안으로 주목

이후 잠잠했던 '빙산의 식수 활용' 방안은 2010년 사우디 프로젝트의 주역이었던 프랑스인 엔지니어 조지 무제이가 캐나다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700만t짜리 빙산을 대서양 건너 아프리카 서쪽의 카나리군도까지 예인하는 컴퓨터 실험을 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무제이는 해당 빙산을 3D 스캔한 정보와 전년도 날씨와 온도, 해류 정보를 입력했다. 또 빙산의 용해(溶解)를 늦추기 위해 특수 제작한 길이 3㎞짜리 지오텍스타일 그물로 빙산 주변을 치마처럼 둘렀다. 해양 석유굴착 플랫폼을 끄는 6000마력짜리 예인선이 이 빙산을 시간당 1.5㎞ 속도로 끌도록 했다. 모두 4000t의 선박유가 소요된 이 컴퓨터 실험에서 700만t짜리 빙산은 141일 동안 대서양을 건너가면서 408만t으로 줄었다. 케임브리지대의 극(極)연구소 소장을 지낸 피터 워드햄스는 이 정도 손실이면 카나리군도가 의존하는 담수화 플랜트의 투입 에너지와 생태계 파괴를 고려할 때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무제이와 함께 유럽연합(EU)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141일은 컴퓨터 실험이 예상할 수 없는 돌발 사태가 발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긴 기간이라는 것이 거절 이유였다.

이런 비관론에도 불구하고 현재 UAE와 남아공 케이프타운 등 두 곳에서 별개의 남극 빙산 예인 프로젝트가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UAE의 기업인 압둘라 알셰히가 이끄는 프로젝트는 4000만t짜리 대형 빙산을 선정해 호르무즈해협 동쪽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다. 10개월에 걸친 예인 기간의 비용은 1억~1억5000만달러. 아라비아해의 연평균 바닷물 온도는 26도. 아무리 초대형 빙산이라도 적도를 넘는 이동 경로와 해수온도 탓에 빠르게 녹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압둘라는 지난 7월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예인 중에 모두 30%가량이 녹아 없어져도 5년간 100만명에게 1억~2억㎥의 식수를 제공할 수 있다"며 "해수 담수화 플랜트보다 훨씬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UAE 프로젝트에도 관여했던 케임브리지대의 워드햄스는 "적도 주변의 높은 온도와 난류, 장거리 예인 등의 요인 때문에 아무리 용해 방지 조치를 취해도 이 프로젝트는 현실성 범위 밖에 있다"고 진단했다.

남극 해류에 태워 남아공 이동

한편 '서던 아이스 프로젝트'라 불리는 케이프타운 빙산 예인 프로젝트는 이동 거리나 해류의 온도와 방향 등을 고려할 때 이보다 현실성이 높다는 평을 받는다. 인구 400만명의 케이프타운은 2018년 봄에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면서, 말 그대로 수도꼭지를 잠그는 '데이 제로(Day Zero)'의 위기에 처했다. 작년 2월 1인당 물 사용량은 욕조의 절반도 채울 수 없는 50L로 제한됐다.

이 케이프타운의 해묵은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빙산을 끌어오겠다는 이는 전 세계 해난 구조에서 명성이 자자한 닉 슬로언(58). 2014년 지중해에서 전복돼 32명이 숨진 길이 290m의 크루즈선 코스타 콘코디아를 일으켜 세운 것도 그의 회사였다. 그의 계획은 케이프타운에서 서쪽으로 약 2700㎞ 떨어진 고프(Gough)섬 주변에서 8500만~1억t 규모의 빙산을 골라서 일단 남극대륙 주변을 도는 남극환류에 태운 뒤, 서아프리카를 따라 북상하는 벵겔라 해류로 갈아 태워 케이프타운 연안까지 예인한다는 것이다.

그는 작년 봄부터 위성 추적을 통해 매일 고프섬 인근의 빙산과 해류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 음파와 레이더 스캔으로 빙산의 모양과 크기, 구조적 결함을 파악해 타깃 빙산을 고르고, 이 빙산을 부력과 장력, 강도를 갖춘 지름 12㎝ 이상의 특수 섬유로 된 길이 3.2㎞, 폭 18m의 그물로 치마처럼 둘러 0.8~1.2노트(시속 1.4~2.2㎞)의 아주 느린 속도로 예인하게 된다. 이 빙산을 끌 2만 마력 이상의 수퍼탱커는 이렇게 낮은 속도에선 조향(操向) 능력이 없어, 이 유조선들을 다시 2척의 예인선이 끈다. 80~90일이 지나 8% 정도 부피가 준 빙산을 케이프타운 인근에 정박시키고, 빙산의 윗부분부터 노천(露天)광산처럼 파 내려가 녹은 물로 빙산 내부에 저수지를 만들고 이를 왕복 탱커로 케이프타운에 나른다. 슬로언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인터뷰에서 "1억2500만t짜리 규모의 빙산 하나면, 케이프타운 연간 물 수요의 20%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빙산 이동을 추진 중인 닉 슬로언./케이프타운 프레스클럽
경제성 찬반 의견 엇갈려

이 빙산의 이송에는 2억달러가 든다. 경제성에 대해서는 케이프타운시에서도 "빙산 식수는 1000L당 2달러인데, 지하수·지표수 식수 비용은 0.36달러"라는 의견과 "담수화 플랜트의 물 비용은 앞으로 16달러를 넘을 수 있어, 빙산은 지하수의 보조 수원(水源)으로 유효하다"는 의견이 맞선다.

예인 구간 너울이 15m를 넘고 시속 130㎞의 강풍이 부는 최악의 환경인 데다가, 아직까지는 모두 컴퓨터 실험 외에 검증된 것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미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해양 석유굴착 플랫폼들이 빙산과 충돌하지 않게 북극 빙산들을 끌어내는 작업을 한 경험이 있는 회사들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1912년 초대형 크루즈선 타이태닉호가 빙산과 충돌한 곳도 바로 이 해역이다. 빙산 예인업체인 애틀랜틱 타워링은 BBC방송에 "최대 3일 반 동안 빙산을 예인해 봤는데, 예인선 1척당 하루 40만~50만t의 연료를 썼다"며 "차 한 대가 지구를 1767번 돌 수 있는 연료"라고 말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북극 빙산과 달리 남극 빙산은 바둑판처럼 평평해 안정적이고, 용해 속도가 빠르지 않은 한류(寒流)에서 이동하게 된다. 슬로언은 BBC에 "관건은 철로를 갈아타듯이 해류를 갈아타는 것이며, 이 해류를 바꿔 탈 때에 자연에 거슬러 밀어 넣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 30년 후면 '빙산 배달'은 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빙산에서 식수를 캐는 아이스버그 헌터선이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보나비스타 베이에서 울퉁불퉁한 북극 빙산 앞에 떠 있다. /피스.오그
피오르 해안 따라 바다로 굴러떨어진 북극 빙하는 울퉁불퉁… 빙산은 민물, 해빙은 소금물

지구 육지에서 두꺼운 얼음 덩어리인 빙하(glacier)로 덮인 지역은 약 10%로, 남극 대륙과 그린란드, 히말라야와 안데스 산맥 등의 만년설이 이에 해당한다.

북극과 남극의 빙산은 각각 남극대륙과 그린란드의 이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러나 북극 빙산이 불규칙한 모양인 데 반해, 남극 빙산은 상대적으로 덩치가 더 크고 수면 위 모습이 평평하다. 이는 빙산의 생성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북극 빙산은 그린란드의 빙하에서 분리된 얼음이 가파르고 좁고 깊은 피오르 해안을 따라 바다로 굴러 떨어지면서 쪼개져 울퉁불퉁하다. 북극 빙산은 그래서 그린란드 서쪽 해안과 캐나다 뉴펀들랜드섬 사이에 많이 떠 있다. 북극점 주변은 남극점과 달리, 거대한 대륙이 없고 1450만㎢의 북극해만 있다. 이 바다가 언 것이 해빙(海氷)으로, 1985년 이후 10년 평균 -5.3%씩 얼음 면적이 녹으면서 북극해 항로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해빙은 소금물이고, 빙산은 담수(淡水)다.

남극 빙산은 북극해와 비슷한 면적(1400만㎢)인 남극 대륙을 덮은 빙하의 가장자리에 형성된 빙붕(氷棚·ice shelf)이 떨어져 나가면서 생긴 것이다. 따라서 평평한 모양이 많다. 남극 대륙의 얼음 두께는 2160m에 달하고, 빙붕은 대륙과 연결됐지만 밑은 바다인 얼음 덩어리다. 일반적으로 빙산은 폭이 5m 이상인 것을 일컫지만, 지금까지 남극에서 관측된 최대 빙산은 길이 13㎞·폭 6㎞ 크기였다.

북극 빙산은 구르고 쪼개지는 형성 과정상 남극 빙산보다 작고 지름이 100~300m짜리가 대부분이다. 크기도 작고 떠 있는 상태도 안정적이지 못해 담수 공급 목적으로 장기간 예인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북극 빙산의 수질은 마그네슘·소듐·칼슘 등의 미네랄이 극도로 적고 청정하다. 캐나다에선 ‘빙산 조각’을 캐는 ‘아이스버그 헌터’ ‘아이스버그 카우보이’들이 크게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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