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시대, 막걸리 맛은 365일 달라야 한다'… 궤변이 아닙니다

입력 2019.11.22 03:00

박순욱의 술술 경영 <1>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

"無감미료 막걸리는 누가, 언제, 어디서 만드느냐에 따라 조금씩 맛이 달라
4차 산업혁명은 개성있는 소비 시대 천편일률적인 술로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감미료를 넣지 않은 느린마을 막걸리는 365일 맛이 다 달라요. 경기도 포천 공장에서 만든 막걸리와 전국 25개 도심 느린마을 양조장에서 만든 막걸리는 레시피(제조법)와 재료는 똑같은데, 미세하게 맛이 다릅니다. 또, 여름철에 만든 것이랑 가을에 만든 것도 살짝 맛에 차이가 있어요. 어디서 만드느냐, 언제 만드느냐, 또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조금씩 맛이 다 다른 게 느린마을 막걸리의 매력이죠. 4차 산업혁명 시대, 요즘 같은 '개성 있는 소비' 트렌드 시대에 천편일률적인 맛의 술은 앞으로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무감미료 막걸리 내놓은 '이단아'

국내 최초 '무감미료' 느린마을 막걸리를 개발한 배상면주가의 배영호 대표는 민속주 업계 '이단아'다. 2010년도쯤 막걸리 붐이 일어나던 당시 대부분의 양조장들이 아스파탐 같은 인공 감미료를 넣은 막걸리를 앞다투어 내놓았을 때, 홀로 무감미료 막걸리를 내놓았다. 가장 값이 싼 감미료 막걸리보다 가격(2500원)이 두 배쯤 비싸 오랫동안 판매에 애로를 겪기도 했다. 가격이 비싼 것은 감미료 없이 단맛을 내기 위해 쌀 함유량을 여타 막걸리보다 두 배 이상 늘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품질에 관한 한 타협을 하지 않은 배 대표의 뚝심은 결국 소비자들에게 통했다. 감미료 막걸리에 식상한 소비자들이 뒤늦게 무감미료 막걸리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이다. 느린마을 막걸리가 나온 게 2010년, 올해가 꼭 10년째다. 몇 년 전부터 판매는 탄력이 붙었다. 전국의 대형마트에 이 막걸리를 생산, 공급하는 포천 공장은 작년 들어 생산량이 전년에 비해 30% 이상 늘고 있다. 판매 호조로 회사가 몇 년간의 적자 경영에서도 벗어났다.

그런데 막걸리를 만들 때마다, 또 마실 때마다 맛이 다 다르다는 그의 말은 무슨 뜻인가? 막걸리의 품질은 곧 맛이다. 그런데 맛, 즉 품질이 일정하지 않은 막걸리가 제대로 된 막걸리, 21세기형 막걸리라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느린마을 막걸리 개발의 주역인 배 대표를 만나 막걸리에 대한 생각을 자세히 들었다. 인터뷰는 서울 양재동 배상면주가 1층에 자리한 느린마을 양조장 주점에서 진행됐다.

배영호 대표는 매일매일 빚을 때마다 맛이 다른 막걸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개성 추구 흐름에 꼭 맞는다고 생각한다. 배 대표가 서울 양재동 본사 1층 양조장에서 웃고 있다.
배영호 대표는 매일매일 빚을 때마다 맛이 다른 막걸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개성 추구 흐름에 꼭 맞는다고 생각한다. 배 대표가 서울 양재동 본사 1층 양조장에서 웃고 있다. /장련성 기자
매일 새로 빚어 맛이 모두 달라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시점에 따라 조금씩 맛에 차이가 있나?

"인공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구매 후 언제 마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막걸리가 완성돼 병에 담더라도 그 속에서는 유산균, 구연산, 젖산균 등 무수히 많은 미생물들이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미생물들은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토해내며, 갖가지 향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들 미생물의 활동도 온도·습도·누룩 상태 등에 따라 달라 막걸리를 만들 때마다 맛의 차이가 조금씩 있다.

그래서 내가 주장하는 것이 '365 빈티지 어 이어(vintage a year)'이다. 느린마을 막걸리는 365일 만들지만 매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와인은 빈티지(와인에 들어간 포도 수확 연도)가 있지 않으냐? 해마다 포도 작황에 따라 와인 맛이 달라지는 게 와인 빈티지에 대한 설명이다. 똑같은 밭에서 기른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도 2018년산 와인 맛이 다르고, 2019년산 맛이 다르다. 해마다 포도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와인은 일 년에 한 번만 빚는다. 그런데 막걸리는 365일 빚으니까 365일 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막걸리 맛이 조금씩 다른 게 단점이 아니란 말인가?

"막걸리 맛이 조금씩 다른 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키워야 한다. 세계에 이런 술은 없다. 만드는 사람마다, 만드는 장소마다, 만드는 계절마다 술맛이 다름을 즐기라는 것이다. 이게 막걸리의 매력이다. 그래서 내가 자주 쓰는 말이 '다름의 미학을 즐겨라'는 것이다. 이게 새로운 시대의 막걸리 가치다.

천편일률적인 맛의 술, 그건 20세기에나 통하던 구시대 유물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에나 통하던 가치다. 21세기에 왜, 제품이 얼마나 많은데, 대안이 얼마나 많은데, 귀한 돈을 소비자가 지불하면서 왜 천편일률의 맛을 강요받아야 하나? 마실 때마다 맛이 다른 술이 세상에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게 바로 막걸리다."

경기도 포천에는 대형 양조장이 있다. 전국의 대형마트와 도매상에 공급하는 막걸리는 이곳에서 만든다. 하루 생산량은 5000~8000병. 하루에 1만 병 이상을 생산할 설비를 갖추었지만,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딱 하루 판매치만큼의 막걸리만 생산한다.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
저온 숙성과 미생물로 맛 더 차별화

느린마을 막걸리는 만드는 방법부터 판이하다. 고두밥을 찌지 않고 쌀을 곱게 가루 내서, 이 생쌀가루에 물과 누룩을 섞어 발효를 한다. 생쌀발효법 역시 배상면주가 막걸리만의 특징이다. 찬 물에 커피를 천천히 내리는 '더치커피'와 비슷하다. 발효 탱크에 1주일 두면 막걸리가 제대로 익는다. 일단 완성된 셈이다. 그러나 숙성 탱크에서 2주를 더 보낸 뒤에야 병에 넣는다. 포천공장 이인수 공장장은 "저온 숙성은 맥주의 후발효 공법과 유사한 것으로, 잡취가 제거되고, 과일향과 탄산미가 풍부해진다"고 말했다.

저온 숙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생물이다. 이 미생물들은 막걸리가 완성돼 병에 술을 담아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좌충우돌' 활동하는 덕분에 막걸리 맛에 변화가 생긴다. 처음에 단맛이 강하던 막걸리가 사흘만 지나도 단맛이 줄어들고 신맛이 도드라진다. 그래서 느린마을 막걸리는 병입 후 숙성 정도에 따라 봄(단맛이 강한 가장 신선한 술), 여름(단맛이 줄어들고 탄산, 신맛이 강해진다), 가을(신맛이 절정에 이른 막걸리), 겨울(진정한 술꾼들의 술) 네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사계절 막걸리'라 부른다. 마니아들은 '비발디(사계) 막걸리'라고 부르며 애정을 표시한다.

개성 추구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부합

―같은 술을 사서, 마실 때마다 다른 맛을 즐긴다는 게 신기하다.

"요즘 소비자들은 참여하는 걸 좋아한다. 미래에는 모두들 '나만의 자동차'를 탈 것이다. 인터넷에서 엔진, 차체, 배기량, 소음 정도 등 여러 옵션을 클릭만 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를 살 수 있을 것이다. 이게 21세기, 4차 산업 시대 트렌드다. 기업은 소비자들의 '개성 있는 소비' 트렌드를 맞춰줄 수 있는 서비스를 계속 개발해야 한다.

맥주, 소주 그 어떤 술과 비교해도 막걸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가장 맞는 술이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감성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술은 막걸리뿐이다. 느린마을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도 단맛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가게에서 사서 바로 마시면 되고, 단맛은 싫고 대신 탄산이 강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서 2~3일 냉장고에 두었다가 마시면 된다."

―20대 젊은 층들이 막걸리를 좋아할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소비하는 계층이다. 젊은이들은 대체로 막걸리를 즐기지 않지만, 비싼 막걸리를 찾아서 먹는 젊은이들은 정말 개성 있는 소비를 하는 소비자다. 이러한 소비자 수요에 맞춰 업계 처음으로 정기 구독 서비스를 곧 시작한다. 매월 혹은 매주 일정량의 막걸리를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신문, 잡지, 우유뿐 아니라 술 구독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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