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한 반항'엔 포상… 패커드의 신뢰 경영, 직원들 氣 살렸다

    •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입력 2019.11.22 03:00

[이지훈의 CEO 열전] (11) HP 창업한 데이비드 패커드

데이비드 패커드는 도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방개혁위원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
데이비드 패커드는 도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방개혁위원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만일 당신이 어느 기업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고 신제품을 개발했다고 하자. 그런데 시제품을 본 경영진은 관심을 보이기는커녕 "내년에 다시 왔을 때 이 제품을 연구소에서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크게 실망하며 그 일을 관두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한 기업 연구원은 몰래 그 일을 계속했다. 그 제품이 필요한 고객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휴가 기간을 빌려 시제품을 싣고 지방으로 떠났고 제품을 좋아하는 많은 잠재 고객을 찾아냈다. 한 고객은 그의 상사에게 제품을 계속 개발하라고 설득하기까지 한다. 훗날 이 제품은 회사 최고의 히트 상품 중 하나가 된다.

HP 공동 창업자인 윌리엄 휼렛(왼쪽)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전자식 계수기를 점검하고 있다.
HP 공동 창업자인 윌리엄 휼렛(왼쪽)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전자식 계수기를 점검하고 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이 일화는 1966년 휼렛패커드(HP)사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1년 후 이 회사 공동 창업자이자 사장인 데이비드 패커드가 다시 그 연구소에 왔을 때 그 제품은 이미 생산 중이었다. 패커드가 화를 내며 "내가 하지 말라고 했지 않나"라고 추궁하자 문제의 개발자 척 하우스는 이렇게 받아넘긴다. "아닙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 제품은 연구소에는 없습니다. 생산 라인에 있습니다."

[이지훈의 CEO 열전] (11) HP 창업한 데이비드 패커드
그 제품은 HP 1300A라는 모델 이름을 가진 대형 디스플레이 모니터였다. 고작 30개 정도 팔릴 것이란 예측을 뒤엎고 1만7000개나 팔렸다. 개발자 척 하우스는 어떻게 됐을까? 몇 년 뒤 패커드 사장은 그에게 '엔지니어의 통상적 의무를 넘어선 비범한 불복종과 반항'을 치하하며 메달을 수여했다. 그는 훗날 임원으로 승진해 많은 제품 개발을 지휘하게 된다. 그의 이름을 따서 '척 하우스 생산성 상'이라는 상도 생겼다.

척 하우스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반항적이거나 외고집이어서 했던 것은 아니다. HP의 성공을 간절히 바랐을 뿐이다. 이 일로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HP에는 이런 제품이 여럿 있다. 최고의 히트 상품 중 하나인 모델 3000 미니컴퓨터 역시 창업자들이 중단시켰지만, 몇몇 기술자가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몰래 추진한 결과였다.

어떤 의견 말해도 질책 안해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의 HP는 '심리적 안전감'이 있는 조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견을 말해도 무시당하거나 질책받거나 해고되지 않고 안전하다고 믿는 마음을 말한다.

HP는 가장 많이 변신한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주 사업 분야만 크게 여섯 번 바꿨다. 그런데 그 변혁의 대부분을 창업자들이 적어도 초기에는 반대했다고 한다. 그들이 열린 마음으로 직원들의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HP는 결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HP 직원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창업자 빌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직원을 신뢰하는 문화를 구축해 그들의 기(氣)를 살려 놓았기 때문이다.

패커드가 직원에게 준 ‘반항 상장’
패커드가 직원에게 준 ‘반항 상장’
하루는 데이비드 패커드가 공장을 돌아보던 중 한 기계공이 플라스틱 사출 금형(金型)을 만드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오랜 시간을 들여 그걸 닦더니 조심스럽게 잘라냈다. 패커드는 무심결에 손을 뻗어 금형을 닦았다. 그러자 기계공은 "내 금형에서 손 떼시오"라고 소리쳤다. 공장장이 "이분이 누군지 아느냐"고 묻자 기계공은 "상관없소"라고 대꾸했다. 패커드는 그가 옳다고 말해줬다. 그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고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패커드는 자기 회사 관리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종업원들은 부분적으로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가치 있는 일을 성취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첫째 의무는 그들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명령만 해서는 안 됩니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은 HP에 4년간 근무했는데, HP를 그만둬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기술자들이 일하기에 최고의 직장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HP는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전 종업원에게 커피와 도넛을 나눠줬고, 매주 금요일 오후면 맥주 파티를 열어 직원들이 서로 어울리며 생각을 나누도록 했다.

현장 순회 경영… 이익 배분제 도입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휼렛과 패커드는 현장을 중시해서 수시로 공장을 돌아다니곤 했는데, 순회 경영이란 말이 생겼다. 그들은 매년 1회 성과 리뷰를 위해 부서를 방문할 때마다 특이한 행사를 개최했다. 그 부서에서 개발한 최신 제품을 누가 가장 빨리 조립하는지 알아보는 경기였다. 이런 행사를 통해 패커드는 재미난 분위기 속에서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도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제조 라인에 있는 사람들의 공헌에 감사를 전하는 기회를 만들려고 했다.

HP는 이익 배분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회사 중 하나로 연 2회 회사의 실적에 따라 성과 보너스를 지급했다. 또 경기 침체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했을 때도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2주에 한 번 무급 휴가를 실시해 고통을 나누었다.

심리적 안전감이 있는 조직의 조건 중 하나는 리더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HP의 신입사원이 "미스터 패커드"라고 부르자, 데이비드 패커드는 말했다.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그건 제 아버지 이름이에요." 그냥 이름 데이비드라고 부르라는 것이었다.

패커드의 경영 스타일은 위임과 자율로 요약할 수 있다. 패커드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좋은 사람을 뽑아라. 그러면 언젠가 그를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알게 하고, 그러고 나선 그들을 내버려둔다." HP가 일궈낸 많은 변화는 경영진의 지시가 아니라 일을 위임받은 인재들이 스스로 머리를 싸매고 뛰어다니며 일궈낸 것이었다.

구성원들이 소극적이고 아이디어를 자발적으로 내지 않아 고민인가? 그들이 어떤 말을 해도 안전하다는 믿음을 주라. 그들의 기를 살려 주고, 그들의 반항에 상을 주라. 데이비드 패커드가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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