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 어디로… 전문가 5인 긴급 진단

입력 2019.11.22 03:00 | 수정 2019.11.25 10:45

[Cover Story] 유럽 침체 속 잘나가는 3개국 비결

유럽 경제 어디로… 전문가 5인 긴급 진단
베르너 호이어 유럽투자은행 총재
"수백만 영세기업에 자금 지원"


유럽연합(EU) 집행 기관인 유럽투자은행(EIB)의 베르너 호이어 총재는 "융커 플랜은 지지부진한 유럽 경제를 되살릴 마지막 퍼즐"이라고 강조했다. 융커 플랜은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5년 전 취임 직후 내놓았던 장기 경기 부양책이다. 민간 금융을 활성화해 유럽에 돈이 돌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은행의 부실 대출이 늘어나자, 정부가 공적 자금을 직접 중소기업이나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이 골자다.

호이어 총재는 "벤처 투자가 활발한 미국과 달리 유럽은 2011년 재정 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제아무리 금리를 낮춰도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자금을 구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벤처 캐피털을 통한 자금 조달 비율이 14%에 불과했기에, 대형 은행들이 망가지자 중소기업도 자금난에 시달렸던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형 은행이 투자를 망설이던 공백을 메워준 것이 융커 플랜이었다"면서 "2014년부터 지금까지 약 4394억유로를 투입해 유럽연합 회원 28국 내 100만 중소·영세기업에 자금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유럽투자은행은 융커 플랜이 EU의 경제성장률을 1.2%포인트 끌어올리고 100만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추산한다. 2022년까지 70만 자리를 더 만들어내는 게 목표다.

호이어 총재는 유럽투자은행이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 사업에 지원하는 자금을 끊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유럽 지도부의 기후변화 대응책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려는 포석이다. 그는 "전기 자동차 등 지속 가능한 친환경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유럽 경제 어디로… 전문가 5인 긴급 진단
카롤로스 모에다스 EU 집행위원회 과학·혁신위원장
"미국식 혁신 따라가지 않을 것"


카를로스 모에다스 EU 집행위원회 과학·혁신 담당 위원장은 EU가 반드시 '미국식 혁신'을 모방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타트업 육성 정책을 세울 때 '유럽의 실리콘밸리'라는 목표와 표어는 어울리지도 않고 잘못된 접근 방식"이라며 "EU 집행부는 암스테르담, 베를린, 리스본 등 각 도시가 가진 장점과 다양성을 유럽이라는 한 지붕 아래 모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은 미국보다 더 많은 언어와 문화를 가진 다양한 국가들의 집합체이고, 이러한 다양성이야말로 유럽의 미래를 이끌 원천"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지금 유럽의 미래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스타트업이 아이디어만으로 창업할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모에다스 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에서 유럽이 경쟁 우위를 갖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유럽은 현재 상위 1%의 과학 저널 게재 논문 비율에서 미국을 앞지르는 등 기초과학 연구가 탄탄한 편"이라며 "200만이 넘는 유럽의 과학자는 인공지능(AI), 바이오테크, 양자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차세대 기술 개발 경쟁에서 세계를 선도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했다. 모에다스 위원장은 '유럽식 혁신'의 차기 과제로 교육 개혁을 꼽았다. 그는 "인공지능 등 미래 혁신의 핵심은 한 과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각 과목 간 융합에서 탄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대학교 입학 전까지 특정 분야 교육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 다양한 학문과 융합을 꾀할 수 있는 인재가 더 절실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경제 어디로… 전문가 5인 긴급 진단
유럽 경제 어디로… 전문가 5인 긴급 진단
미셸 바르니에 브렉시트 협상 EU 측 수석 대표
"브렉시트 이후에도 새 협상"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는 유럽 경제의 최대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EU와 영국 정부는 지난달 말 브렉시트 발동 시기를 내년 1월 31일로 연기하는 방안에 합의했으나, 여러 차례 혼란을 겪어온 터라 아직 불확실성이 걷혔다고 보기엔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 지난 3년간 브렉시트 협상 EU 측 수석 대표를 맡아 온 미셸 바르니에는 "여기서 일정이 더 늦춰질 가능성은 작은 편"이라면서도 "벼랑 끝에서 떨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기 때문에 협상이 끝날 때까지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바르니에 대표는 "내년 1월 브렉시트가 실시되면 약 11개월간의 잠정 전환 시기를 거쳐 2020년 12월까지는 모든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며 "그러나 11개월 안에 모든 협상을 마무리하기는 매우 힘든 과제인 데다, 특히 아일랜드 국경 문제가 협상의 가장 큰 난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국이 추후 협상에서 유럽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좋은 것만 따 먹는 혼합식 협상 결과를 원할 수도 있는데, EU는 결코 불공평한 이득을 얻지 않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르니에 대표는 "브렉시트당 대표인 나이절 파라지조차 나에게 브렉시트의 장점을 말해준 적이 없다"면서 "보리스 존슨 총리가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길 원하고 있으나, 진정한 무역협정은 경제·금융 이득이 아니라 유럽인들의 삶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브렉시트는 이 모든 혼란의 종착점이 아니다. 브렉시트 후에도 무역·어업·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경제 어디로… 전문가 5인 긴급 진단
도로시 베어 독일 디지털 담당 장관
"美·中 데이터 독점 막을 것"


도로시 베어 독일 디지털 담당 장관은 기술 정책의 핵심 현안인 개인 정보 보호 문제와 관련, "미국 국민의 데이터는 기업이 갖고 있고 중국 국민 데이터는 정부가 통제하지만, 유럽은 정부의 적절한 시장 참여로 균형을 꾀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셜미디어가 개인의 권리 증진에 도움이 됐다는 것이 착각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일부 동의한다"면서 "거대 기업과 정부 통제를 받는 소셜미디어로 수집된 정보가 실질적으로 소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형태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베어 장관은 데이터 독점을 해결하려면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독일 정부가 프랑스 정부와 손잡고 추진 중인 가이아X 프로젝트를 대응책 중 하나로 소개했다. 그리스 신화 속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에서 이름을 땄다. 유럽 국가들이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아마존 등 미국 IT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자체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골자다. 프로젝트에는 지멘스, 보슈그룹, SAP 등 독일 IT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다. 내년 초 구체적 추진 계획을 공개한 후 유럽 각국 기업들을 끌어들일 예정이다.

베어 장관은 "데이터 기술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권리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페이스북 사용자가 데이터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 "독일은 디지털 분야에서 전 세계에 도덕적 기준 등 기본적 기준을 제시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이를 통해 모든 유럽 국가가 적절한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 경제 어디로… 전문가 5인 긴급 진단
베라 주로바 EU 집행위원회 법무위원장
"민주주의 해치는 가짜 뉴스 대응"


유럽에서는 수년 사이에 극우 정당들이 민족주의와 반세계주의를 내세워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극우 정치 세력은 소셜미디어로 가짜 뉴스를 증폭시켰다. 베라 주로바 EU집행위 법무 담당 위원장은 소셜미디어를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인터넷 시대에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규제와 검열 사이에서 적정선을 찾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상의 거짓말은 테러 조장 등 매우 극단적 사례를 제외하면 불법 행위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2016년 미국 선거부터 브렉시트 선거 등 많은 부정적 사례를 보아왔기에 EU는 결코 이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보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민주주의를 해칠 정도로 가짜 뉴스가 퍼지면 정부가 적절하게 나설 준비도 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정보 공급자를 규제하는 것만큼이나 시민들이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도록 더 심층적인 공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럽 지도부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이 기업에 지나친 부담을 지운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많은 EU 시민은 본인들의 개인 정보가 '블랙박스'로 흘러가는 상황을 바라보고만 있었다"며 "거대 테크 기업이 EU 시장에 진출할 때 모든 회원국에 적용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GDPR은 상대국의 개인 정보 보호 수준을 평가하는 제도로, 이를 통과한 국가의 기업은 EU 시민의 개인 정보를 좀 더 쉽게 상대국으로 이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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