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주의를 막으려면 새로운 형태의 사회민주주의가 필요하다

    • 대런 애스모글루 MIT 교수

입력 2019.11.22 03:00 | 수정 2019.12.06 17:21

[WEEKLY BIZ Column]

대런 애스모글루 MIT 교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은 모든 걸 바꿔놓았다. 그 여파는 21세기인 지금까지 영향을 미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소비에트 연방(현 러시아)을 포함한 공산권은 참담했다. 국민들은 빈곤에 시달렸고 수백만명이 정쟁과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 동유럽 뿐 아니라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까지 공산주의는 억압과 독재의 상징이었다. 경제발전 측면에선 더더욱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건 떠오르는 공산주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서구 선진국들이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 제도를 앞다투어 도입하면서 노동과 자본 갈등을 완화시켜왔다는 점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서방에선 사회 안전망 확충, 독점 기업 규제, 공공 서비스 확대, 분배형 세금 정책, 노동자 권익 보호까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적 질서를 확립했다. 정치학자 랄프 다렌도르프(Dahrendorf)는 이런 이런 정책 합의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진보'라고 강조했다. 불평등은 점차 줄어들었고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이 이어졌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냉전이 끝나면서 사민주의 물결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냉전 끝나자 오히려 사회민주주의 영향력 쇠락

2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 경제는 독과점 대기업을 규제하고 경쟁 시장을 장려하는 정책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양질의 공공 교육 체계와 정부가 지원한 혁신 기술 개발은 자유 시장경제를 꽃피운 밑거름이었다. 정부는 기업이 일방적으로 노동자를 저임금에 착취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덕분에 임금이 오르고 좋은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경제 성장은 선순환으로 굴러갔다.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사민주의 정당들이 약진하면서 노사 대타협을 통한 상생 구조가 확립됐다.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재분배 세금 정책과 복지 국가 프로그램 등으로 이뤄진 사회민주주의 국가는 엘리트들이 가진 정치권력만으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사회민주주의 체계 아래에선 엘리트와 비엘리트가 모두 포함된 광범위한 정치적 참여가 이뤄졌다.
미국도 유럽과 비슷했다. 미국 정부는 사회보장연금, 실업수당과 세금을 통한 소득 재분배를 포함한 다양한 빈곤 퇴치 정책을 들여왔다.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한편, 미국식 사민주의를 채택한 셈이다.

사민주의는 사실 공산주의와 떼놓고 이해할 수 없다. 사민주의 정당들 뿌리는 대부분 공산당이었다. 2차 대전 이후 1980년대까지 유럽에선 공산당이 활발하게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사민주의 유행을 주도한 스웨덴 사민당이나 영국 노동당도 새로운 노동시장 제도를 만들고 공공 서비스 개선에 힘을 쏟는 과정에서 자기들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와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 많았다.
사회 지도층들은 공산주의를 막는 고육책으로 사민주의 논리를 받아들였다. 2차 대전 이후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 미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사민주의 정신을 받아들인 지식인들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북한 공산주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 지도자들은 토지 개혁을 단행하고 교육에 투자했으며. 임금을 낮게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어느정도 노조 활동을 용인했다.

사회민주주의 퇴행 이후 좌우 극단주의 부상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이데올로기로서나 경제체제로서 공산주의는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우파들은 공산주의가 무너진 건 바로 시장경제의 영구적인 완승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면서 사민주의 색채를 지워버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21세기 들어 더 두드러지고 있는 이런 추세는 잘못된 방향이다.
첫째, 복지국가와 노동시장 제도 개선, 정부 연구개발(R&D)투자 같은 사회민주주의 체계는 2차 대전 이후 세계 경제성장에 상당히 기여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둘째, 사회민주주의 제도가 약화하면서 기성 정치인과 부유층에게 더 많은 권력이 쏠리고 이런 양상은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셋째, 기회의 불평등과 사회안전망 해체로 좌우 극단주의만 기승을 부리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는 공산주의 붕괴를 자축하면서 효율적인 시장 질서와 규제 완화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그 때부터 촉발한 정치적 변동은 훗날 트럼프 대통령과 존슨 총리가 등장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21세기 들어 전 세계 국가들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탈규제와 금융 폭주, 자동화와 세계화가 초래한 경제 구조 변화, 이에 따른 노동 계급 감소와 영향력 저하. 이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사민주의를 새롭게 개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독점 대기업 권력을 줄이고, 공공 의료와 공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공공 서비스를 넓히는 정책적 결단이다. 더불어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지 않도록 최대한 보호해야 하며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R&D 투자는 단지 경제적 타당성만 따져선 곤란하다. 장기적인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지면 사회민주주의 프로젝트는 더 풍요롭고 안정된 사회를 실현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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