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지 마세요, MS·애플보다 큰 놈이 곧 옵니다"

입력 2019.11.08 03:00

아람코 상장 재추진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몸값 2조달러(약 2300조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의 주식시장 데뷔가 임박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지난 3일(현지 시각)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Aramco)의 기업 공개(IPO) 작업을 시작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아람코 주식이 사우디 타다울 증시에서 공식 거래된다. 여기서 지분의 1~2%를 팔아 200억~400억달러를 조달하고 해외 증시에도 상장할 것으로 보인다.

사상 최대 IPO인 아람코 상장 프로젝트의 최고지휘자는 무함마드 빈 살만(34) 사우디 왕세자. 아람코 상장 프로젝트는 빈 살만 왕세자가 석유 고갈 이후의 사우디 미래 경제 청사진을 내걸고 경제개발 자금을 조달하는 조치다. 2016년 기업 공개 계획을 발표한 이후 지지부진했던 프로젝트가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애플·삼성 합친 것보다 큰 아람코

아람코는 1933년 설립된 세계 1위 석유회사다. 전 세계 석유의 10%를 공급한다. 매일 1000만 배럴 이상의 석유를 생산하는데, 이는 글로벌 석유회사인 셰브론(미국), 로열더치셸(영국·네덜란드), 엑손모빌(미국)의 생산량을 더한 것보다 많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239억달러(약 260조원)로 애플(818억달러)과 삼성(776억달러)을 합친 것보다 많다. 순이익은 1111억달러(약 129조원)로 매출의 3분의 1에 달한다.

아람코가 사우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 등에 따르면 사우디 GDP(국내총생산)의 70%, 정부 재정의 87%가 아람코가 내는 세금과 배당금 등에서 나온다. 억만장자가 즐비한 사우디 왕실의 돈줄이기도 하다.

아람코의 기업 공개는 사우디의 국가 프로젝트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고갈에 대비한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 계획인 '비전 2030'을 2016년 발표했는데, 그 핵심 동력이 아람코 기업 공개다. 사우디는 아람코의 기업 가치를 2조달러로 평가해 사우디와 해외 증시에 상장하고 지분 5%를 팔아 1000억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할 계획이다. 1000억달러는 비전 2030 프로젝트에 투입할 예정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당시 '알 아라비야'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석유에 중독돼 있어 위험하다"며 "2020년부터는 석유 없이도 살 수 있도록 수입원을 다각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람코 상장 추진 일지
유가 하락에 속 타는 왕세자

빈 살만 왕세자는 올해 34세에 불과하지만, 사우디에서는 '전지전능한 사나이(Mr. Everything)'라고 불린다. 2017년 왕세자가 된 그는 국방부 장관, 제1 부총리도 겸임하고 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84) 국왕은 사실상 사우디 국정의 전권을 빈 살만 왕세자에게 위임한 상태다.

하지만 이 '전지전능한 사나이'도 기업 공개 앞에선 속이 탄다. 아람코의 기업 가치에 물음표가 붙으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아람코의 기업 가치를 2조달러로 보고 있지만 시장의 평가는 1조5000억달러 정도다. 평가가 갈리는 이유는 아람코의 핵심 상품인 기름값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대 초 배럴당 100달러였던 국제 유가(브렌트유 기준)는 현재 6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발(發) 셰일가스 혁명으로 대체재가 생긴 데다 전기차 보급 등으로 수요가 줄어들고 있어서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아람코가 기업 공개를 순조롭게 추진하려면 유가가 최소한 배럴당 80달러는 돼야 한다고 말한다.

전망도 어둡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국제 유가가 2060년까지 6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뉴욕타임스는 내년부터 브라질·캐나다·노르웨이 등이 원유 공급량을 늘려 유가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예전처럼 생산량을 조절해 세계 유가를 끌어올리기도 마땅치 않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3년간 3명의 에너지 장관을 투입하며 유가 띄우기에 나섰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란과 미국의 갈등으로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위험)가 커진 상황에도 유가는 배럴당 60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며 "셰일 혁명으로 중동이 국제 유가를 주무르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결국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해 "유가가 오르는 적당한 때에 맞춰 아람코 상장을 시도할 것"이라며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칼리드 팔리흐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아람코 상장이 2019년으로 연기됐다고 밝혔다. 이후 사우디 정부가 올해 10월 상장을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지난 9월 아람코의 핵심 석유 시설들이 드론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또 한 번 발목을 잡혔다.

일각에선 사우디와 빈 살만 왕세자의 독재 정치가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17년 11월 부패 척결을 이유로 자신의 친·인척인 사우디 왕족 수백명을 호텔에 감금한 뒤 재산을 몰수한 적이 있다. 블룸버그는 "아람코가 주주들에게 연간 750억달러의 배당금을 약속했지만 왕실령으로 언제든 배당금을 깎을 수 있다"며 사우디의 국내 정치 리스크를 지적했다.

해외 상장까지 해야 제값 받을 듯

아람코의 몸값을 두고 이견이 존재하긴 하지만 아람코 상장에 대해선 그래도 낙관적인 견해가 우세하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여전하다. 아람코는 지난 4월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발행 규모가 120억달러에 달했다. 당초 계획인 100억달러를 훌쩍 넘긴 것이다. 크리스천 코츠 울릭슨 미 라이스대 베이커공공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사우디는 여전히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이며 막대한 부를 지니고 있다. 투자자들이 거부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진단했다. 빈 살만 왕세자의 상장 의지도 여전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월 자신의 측근인 야세르 알 루마이얀을 아람코 회장에 임명했고, 기업 가치 저평가에 대응해 매각 지분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중동 전문 컨설팅업체인 메나 어드바이저스의 로리 파이퍼 상무는 "국내 투자자들의 실탄만으로는 빈 살만 왕세자의 기대만큼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힘들 것"이라며 "해외 시장 상장 계획도 서둘러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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