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감 있는 그림의 신기한 눈속임… 트릭아트와 사진은 공범관계

    • 채승우 사진가

입력 2019.11.08 03:00

[채승우의 Photographic] <12>트릭아트

채승우 사진가
채승우 사진가
언젠가부터 '트릭아트' 혹은 '3D트릭아트'라고 하는 그림이 눈에 많이 띈다. 트릭아트라는 말부터 낯선 사람도 많을 듯하다. 국어사전에는 없고, 영어권 언어 사전에서도 찾을 수 없는데, 국내 뉴스에서는 무난하게 사용되는 정도의 단어이다. 인터넷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는 상황을 대충 살펴보면 동남아시아에서, 특히 관광산업 주변에서 사용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트릭아트는 바닥이나 벽에 그려진 꽤 큰 크기의 그림이다. 그림을 보는 위치가 지정되어 있는데, 그 정확한 위치에서 그림을 바라보면 그림이 입체로 보인다. 잘 그려진 트릭아트는 바닥이나 벽과 잘 어울려서 마치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거나, 벽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눈속임 그림이다.

관객이 그림 속에 들어 있는 듯

사람이 그림 가까이에 서면 그림 안에 들어가 있는 듯 보여 신기하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서 이 신기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다. SNS에 올리기 딱 좋은 그림이다. 그래서 관광지에는 트릭아트를 전문으로 전시하는 곳도 있고, 지방자치단체들은 자신들의 고장을 홍보하기 위해 여기저기 트릭아트 그림을 그려 놓기도 한다. 모두가 잘 그려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 아쉽기는 하다.

이탈리아 로마 예수회 교회의 천장화. 천장이 없이 하늘 위가 보이는 듯 환상적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위치는 교회 중앙의 딱 한 자리뿐이다. 다른 자리에서는 오히려 기울어진 이상한 그림들이 보인다.
이탈리아 로마 예수회 교회의 천장화. 천장이 없이 하늘 위가 보이는 듯 환상적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위치는 교회 중앙의 딱 한 자리뿐이다. 다른 자리에서는 오히려 기울어진 이상한 그림들이 보인다. /채승우
한데 재미있는 것은 이 트릭아트에는 사진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금은 마치 카메라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시대인데, 이는 마치 우리에게 산소가 꼭 필요한데 너무 자연스러워 지각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트릭아트에 사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기록을 하거나, SNS에 올리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진이 꼭 필요한 이유는 트릭아트가 트릭아트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사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사진기 없이 눈으로 트릭아트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눈으로는 아무런 신기한 장면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설픈 그림이 보인다. 사진을 통해서만 눈속임이 완성된다. 사진과 트릭아트는 공모 관계에 있다. 둘은 공범이다. 그렇다면 트릭아트가 언제부터 유행했는지 짐작할 수도 있다. 휴대폰 카메라가 대중화된 때부터일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원근법 원리를 활용한 눈속임

왜 사진이 있어야만 눈속임이 만들어질까? 왜 사람 눈으로는 재미없는 그림만 보일까? 그 답은 오랫동안 사진과 원근법을 연구한 사람들이 이야기한 바에 있다. 원근법이란 입체인 세상을 평면인 화폭에 옮겨 그리기 위해 고안된 작화 방법이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에서 발명되었다. 그 전 시대에도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정확히 그려내는 방법이 없었다. 15세기 초 이탈리아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화면에 소실점을 정하고 소실점을 향해 비례에 따라 그림을 그려가는 방법을 처음 고안해냈다. 브루넬레스키는 실험을 했다. 자신이 원근법에 따라 그린 그림의 소실점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눈을 대고 들여다 보았다. 그 상태로 거울에 반사해서 보면 원근법에 따라 그린 그림이 세상과 얼마나 정확히 일치하는지 알 수 있었다.

15세기 원근법을 발명한 브루넬레스키의 실험. 원근법으로 그린 그림의 소실점에 구멍을 뚫어 눈을 대고 거울을 이용해 대상과 비교했다.
15세기 원근법을 발명한 브루넬레스키의 실험. 원근법으로 그린 그림의 소실점에 구멍을 뚫어 눈을 대고 거울을 이용해 대상과 비교했다. /채승우
이 실험에는 상징적 부분이 있는데, 구멍을 하나 뚫어 그 구멍으로 들여다본다는 점과 관련 있다. 파노프스키를 비롯한 원근법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 브루넬레스키의 실험에서 눈은 움직이지 못하고 고정된다. 또 두 눈이 아닌 한 눈으로만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화판에 뚫린 구멍이 시야를 제한한다. 이렇게 제한되고 움직이지 않는 한 눈이 있어야만 원근법에 따른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제한되고 움직이지 못하는 한 눈! 그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카메라이다.

사람이 실제로 보는 법과는 차이

르네상스에서 원근법이 탄생한 직후 많은 트릭아트 혹은 눈속임 그림이 만들어졌다. 지금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귀족의 저택이나 성당의 천장화에서 그 명작들을 볼 수 있다. 한데 이미 그때에도 어떤 예술가들은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비판하기도 했다. 다빈치나 미켈란젤로가 그랬다. 사람이 실제로 세상을 보는 방식은 원근법과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두 눈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세상을 본다. 심지어 현대 뇌 과학에서는 몸으로 보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눈속임 그림의 공범인 사진에 대해서도 의심이 시작되었다. 사진은 정말 세상을 재현하는 최고 방법인가? 아니면 우리는 르네상스 때부터 이어진 눈속임에 속아주기로 모두 공모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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