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영국 꺾고 물은 미국 꺾고… 120살 일본 산토리의 마법 경영

입력 2019.11.08 03:00

위스키 종주국 英도 "제대로 재현" 찬사
생수 '천연수'는 日 코카콜라 커피의 '28년 1위' 자리 뺏어
맥주도 세계 최고賞
신화 뒤에는 'M&A 천재' 니나미 사장과 그를 발탁한 창업 3대 사지 회장이 있어

지난 9월 영국 일간지 더선(The Sun)은 '떠오르는 산토리(Suntory)'라는 특집 기사를 내고 "위스키의 정수를 제대로 재현했다"는 헌사를 보냈다. 일본에선 "'재패니스 위스키'가 위스키 종주국을 정복했다"면서 열광했다. 산토리는 일본 위스키 서양 침공을 진두지휘하는 첨병이다. 경매에서 3억원에 낙찰, 화제를 부른 야마자키 50년산 한정판이나 600만원이란 고가에도 없어서 못 판다는 히비키 30년산은 세계 위스키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산토리의 돌격대장이다. 하쿠슈 위스키는 지난해 영국에서 열린 국제증류주품평회 경연대회에서 세계 굴지 위스키 브랜드 500여개를 제치고 싱글 몰트 부문 최고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산토리 맥주 역시 뒤질세라 지난 5월 벨기에 주류식품품평회 몽드셀렉션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미국 뉴욕 유명 술집에선 산토리 야마자키 25년산 더블샷(60ml) 한 잔에 500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산토리는 1899년 창립한 식음료업체. 위스키 제조로 출발했지만 맥주, 건강 음료, 커피까지 영역을 넓혀가며 줄줄이 히트 상품을 출시한 관록이 남다르다. 경영학계에선 산토리 경영 전략을 '과대 확장(overextension)'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타미 히로유키 히토쓰바시대 교수가 정리한 용어로 기업이 현재 능력 범위에서 벗어나는 활동을 추진하면서 내부 구성원들을 창조적 긴장 상태로 몰아넣어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한다는 내용이다. 산토리는 위스키에서 맥주, 차, 칵테일, 과즙 탄산까지 핵심 제품이 침체에 빠질 무렵, 과감하게 신개념 제품을 밀어붙여 내놓으면서 위기를 극복해왔다.

산토리는 위스키에 이어 1963년 맥주 시장에도 뛰어들었지만 아사히·기린에 밀려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다. 그러나 2003년 출시한 프리미엄 몰츠 맥주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반전에 성공했다. 40년 만에 맥주 부문에서 첫 흑자를 기록하면서 회사 전체가 들떴다. 그런데 일본 내 인구 감소에 고령화 악재가 심화하면서 맥주 시장이 급격하게 위축, 산토리 맥주 전성기는 개막하자마자 종영하는 신세가 됐다. 그런데 산토리 지난해 매출은 2조2508억엔. 전년 대비 4.3%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509억엔. 매출에선 아사히(2조1203억엔)와 기린(1조9305억엔)을 앞질렀다. 어떤 마법이 발휘된 것일까.

글로벌 M&A는 '신의 한 수'

최근 들어 돋보인 산토리 전법(戰法)의 핵심은 모험을 각오한 인수·합병(M&A)이다. 2014년 5월 미국 최대 위스키 회사 짐 빔(Jim Beam)을 160억달러에 사들인 게 절정이었다. 이전에도 1980년 미 펩시 계열 제조판매회사(bottler)를 시작으로 프랑스 와인 샤토 라그랑주, 영국 위스키 모리슨 보모어, 프랑스 청량음료 오랑지나 슈웹스, 뉴질랜드 청량음료 풀코어, 영국 루코제이드와 리베나 등이 차례로 산토리 품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 정점을 찍은 거래는 짐 빔이었다. 당시 사지 노부타다 회장은 "위스키는 와인이나 맥주와 달리 제조와 브랜드 확립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번 거래로) 브랜드 가치와 이익률을 한꺼번에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짐 빔과 합쳐 탄생한 빔산토리는 단숨에 디아지오·페르노리카에 이은 세계 3위 위스키 업체로 도약했다.

산토리는 인지도가 높은 해외 브랜드를 인수한 다음, 현지 공장을 통해 산토리 위스키와 음료를 생산·공급하면서 해외 시장을 우회 공략한다. 세계 120여곳에 진출해있는 짐 빔 판매망을 활용, 미국·유럽 시장에서 산토리 위스키 인지도를 높여가는 전략은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다. 빔산토리는 올 3월 미국 뉴욕에서 합작 버번 위스키 '레전드'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시너지 효과 극대화를 선언했다.

산토리의 지난해 해외 매출은 9445억엔으로 전체 매출의 42%를 차지했다. 10년 전인 2008년 1821억엔(12%)과 비교하면 5배 이상 증가한 규모. 경쟁 주류 업체 기린 28.4%, 아사히 13.5%를 감안하면 그 성장세는 위력적이다.

핵심 제품은 자매 상품 크게 늘려

올 초 일본음료총연이 발표한 일본 음료 판매량 순위에선 이변이 탄생했다. 1990년부터 28년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던 일본 코카콜라 '조지아 캔커피'를 제치고 산토리 생수 브랜드 '천연수'가 1억1730만 상자를 팔아치워 1위에 오른 것. 그 저변엔 핵심 제품을 내놓을 때 다채로운 자매 상품을 전방위로 동시에 밀고 나가 매장 진열대에서 판매 면적을 늘리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결과적으로 상품 구매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전술이 깔려 있다. 천연수 생수도 자매 상품이 과즙 맛 워터, 요구르트 맛, 녹차 워터 등 10여 종에 달한다.

다른 음료도 마찬가지다. 녹차 음료 이에몬(伊右衛門)과 스포츠 음료 다카라(DAKARA)도 자매 상품을 지속적으로 투입해 히트 상품으로 입지를 굳혔다. 사탕수수, 토마토 등 11종류 건강 소재를 섞어 만든 그린 다카라, '도쿠호(특정보건용식품 약자)' 인증을 받은 이에몬 특차 모두 인기를 끌고 있는 자매 상품이다. 캔 음료 자매 상품 캔보리차는 농축 보리차 제품으로 물로 희석해서 마시도록 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발굴했다는 평가다.

직접 가정 방문 조사 통해 트렌드 분석

기존에 없던 고부가가치 제품을 쉴새 없이 발굴하는 것도 산토리가 가진 저력이다. 일본 캔커피 대명사인 보스(BOSS)를 페트병으로 재단장해 내놓은 '크래프트보스'는 편의점과 커피 전문점 커피에 대항하기 위한 야심작. 가정에서 우유를 섞어 카페라테로 만들어 먹을 수 있게 2L 농축 페트병 커피도 선보였고, 대용량 무설탕 홍차도 출시했다. 소비 저변을 넓히기 위해 2017년엔 시리얼 브랜드인 후루그라와 아이스크림 업체 하겐다즈와 손잡고 시리얼과 아이스크림에 곁들여 먹는 커피를 세트 상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올 4월엔 건강생활 지원 서비스 '특차스마트앱'도 공개했다. 체중과 걸음 수를 기록하는 기능을 지녀 1000보를 달성할 때마다 10점씩 주고 적립한 점수를 경품 응모와 상품 구매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앱이다.

산토리는 이런 기발하고 창의적인 신제품 연구·개발을 위해 브랜드 개발사업부 직원들이 수시로 수십 가구를 직접 찾아 부엌과 냉장고를 살펴보고 대화를 나누면서 소비자들 일상생활의 작은 변화를 제품에 반영하고 있다. 대개 이런 소비자 분석을 외주 업체에 맡긴 뒤 결과만 받아보는 관행을 벗어나 직접 피부로 느껴야 더 현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해법이 나온다는 믿음에서 시작한 접근법이다. 오키나카 나오토 산토리 식품사업본부장은 "상품 기획과 개발 담당자가 소비자의 생생한 생활을 맞닥뜨리면서 얻는 단서와 영감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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