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실리콘앨리가 낳은 첫 억만장자

입력 2019.11.08 03:00

[Cover Story] IT 스타트업 '셔터스톡' 존 오린저 창업자… 월스트리트 밖 첫 1조원대 거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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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실리콘앨리가 낳은 첫 억만장자 존 오린저는 실리콘밸리 대신 뉴욕을 창업지로 선택한 이유로 다양함을 꼽았다. / 블룸버그
뉴욕 맨해튼의 상징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21층은 입주자 사이에서도 '로열층'으로 여겨진다. 마천루가 빼곡히 들어선 뉴욕 시내 한복판에서 잠시 일상을 잊고 햇볕을 쬘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유일한 층이기 때문이다. 대리석이 깔린 화려한 1층 로비에서 15분가량 까다로운 보안 검색을 거쳐 어렵사리 21층에 들어서면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보통 뉴욕에 있는 회사라고 하면 작은 방 수십개가 빽빽이 들어찬 모습과, 칙칙한 고급 가구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21층만큼은 요가룸, 탁구장, 음악실, 도서관 등 마치 실리콘밸리 IT 기업에 온 것처럼 딴 세상이 펼쳐진다. 맨해튼 중심에 서부 실리콘밸리를 재현한 주인공은 온라인 사진·이미지 판매업체인 셔터스톡의 존 오린저(Oringer·45) 창업자다.

뉴욕판 실리콘밸리를 꿈꾸다

2014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20~21층에 입주한 셔터스톡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대항마' 같은 존재다. IT 스타트업이면서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 터전을 마련하지 않았다. 또 외부 투자에 목매기보다는 창업 초창기부터 수익을 창출해내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물론 오린저가 처음부터 뉴욕에서 꽃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뉴욕주립대 4학년이던 1996년에 창업 전선에 뛰어든 오린저는 7년간 홀로 아파트에서 일했다. 셔터스톡이 성공을 거두기 이전까지 팝업 차단기부터 회계·경리 설루션, 인터넷 쿠키 차단기, 로고 관리 프로그램 등 무려 열번이나 실패를 맛봤다. 직원 한 명 고용할 돈이 없어 모든 일을 도맡았고, 사이트 운영에 필요한 서버까지 집에다 들여놨다. 서버가 내뿜는 열기 덕분에 지독한 뉴욕의 혹한기에도 따로 히터를 틀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존 오린저(Oringer·45) 프로필 / 셔터스톡(Shutterstock) 개요
오린저가 초기에 시작한 사업이 몇 차례 실패하자 대부분의 사람은 뉴욕에서 창업하기보다는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가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완강히 뉴욕 창업을 고집했다. "주변에선 모두가 IT 기업을 세우려면 실리콘밸리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곳곳의 다양한 인재가 모이는 뉴욕이야말로 창업 1번지라는 생각엔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10전 11기'로 성공을 거머쥔 오린저는 뉴욕에서 WEEKLY BIZ와 만나 뉴욕 창업을 고수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링크트인·버즈피드 등 성공 잇따라

셔터스톡은 주변의 만류 속에서 탄생했지만 창업 이후 매년 20~30%씩 매출이 늘어나는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오린저 창업자가 직접 찍은 사진 몇만장으로 시작해 현재는 2억8000만개 이상 이미지와 1500만여 개 영상을 확보하고 있다. 콘텐츠가 쌓인 덕분에 셔터스톡을 이용하는 고객은 150여국 180만명에 달한다. 회사 매출은 2018년 기준으로 6억2300만달러(약 7217억원)를 기록했다. 2013년엔 그가 보유한 셔터스톡 지분 55%의 가치가 10억달러(1조1670억원)를 돌파한 덕분에 '실리콘앨리(Silicon Alley·뉴욕 창업단지)'가 배출한 첫 억만장자(재산 10억달러 이상)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렇게 뉴욕 시내 한복판에서 꽃피우는 스타트업이 탄생할 것이라고 예측한 전문가는 매우 드물었다. 1970~1990년에는 영화 배트맨의 무대 '고담시'의 모델이 될 정도로 침울하고 암울한 분위기가 주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0년대 말 닷컴 버블 붕괴는 창업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까지도 뉴욕 도심의 알짜 요지들은 금융·부동산 회사로 뒤덮였다.

분위기가 반전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 뉴욕시가 '최첨단 도시로의 회귀'를 선언하면서부터다. 창업하기 좋은 환경을 하나둘씩 만들어나간 결과, '스타트업의 무덤'으로 여겨졌던 뉴욕 곳곳에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패션 소매업체 대표주자인 엣시, 미디어 신흥주자 버즈피드, 소셜미디어(SNS) 텀블러 등이 실리콘밸리가 놓친 '틈새 분야'에서 속속 성공 사례를 쌓아가고 있다. 한때 금융회사 밀집지였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도 셔터스톡과 링크트인 같은 IT 기업들이 둥지를 틀었다. 1849년 미국 동부에서 서부 샌프란시스코로 금을 찾아 대이동이 일어났던 골드러시 현상에 빗대, '서부 실리콘밸리에서 미국 동부로의 골드러시'가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뉴욕판 실리콘밸리인 '실리콘앨리'에서 첫 억만장자 신화를 쓴 셔터스톡을 비롯, 뉴욕 스타트업의 성공 비결과 배경을 분석했다.

☞실리콘앨리(Silicon Alley)

실리콘앨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를 본떠, 뉴욕 맨해튼에서 스타트업들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을 부르는 이름이다. 맨해튼의 첼시·미드타운·유니언스퀘어 일대를 가리킨다. 영어로 앨리는 골목길이란 뜻. 맨해튼 동쪽 루스벨트 아일랜드에 있는 코넬 공대가 연구소 역할을 한다. 실리콘앨리는 1990년대 중반 뉴욕 경기가 침체를 겪자 맨해튼 41번가 빈 건물에 IT(정보 기술) 산업 종사자들이 입주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IT 위주로 성장한 실리콘밸리와 달리 금융·미디어·패션 등 다양한 분야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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