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앨리의 두뇌 '코넬 공대'

입력 2019.11.08 03:00

[Cover story]

맨해튼 동쪽 루스벨트 아일랜드 뉴욕 스타트업 요람
2010년부터 名門 코넬 공대 짓기 시작
블룸버그 전 시장 1100억원 통 큰 기부… IT 인재의 산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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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 아일랜드의 코넬 공대는 뉴욕 실리콘앨리에 인재와 아이디어를 공급하는 원천이다./게티이미지
미국 뉴욕시 맨해튼 동쪽에서 가장 붐비는 렉싱턴 애비뉴와 63번가 교차점에서 지하철 F호선을 타고 딱 한 정거장만 가면 루스벨트 아일랜드가 나온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 맨해튼섬과 이스트강 사이에 낀 '섬 안의 섬'. 지하철을 타고 딱 3분만 왔을 뿐인데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뀐다. 빼곡한 건물 사이마다 일차선 도로가 간신히 자리 잡은 맨해튼 도심의 콘크리트 정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수천명은 너끈히 누울 법한 널찍한 잔디밭에 드문드문 솟은 기하학적인 건물들이 나타난다. 고개를 돌려 반대쪽 강변에 아늑하게 꾸며진 산책로를 바라보면, 벤치에 앉아 맨해튼의 마천루를 감상하며 휴식을 즐기는 후드티와 펑퍼짐한 스웨터 차림의 젊은이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맨해튼에서 찾아보기 쉬운 말쑥한 정장에 넥타이를 목 끝까지 올린 회사원들은 여기서 찾아보기 어렵다. 한때 월스트리트를 상징했던 단어가 '탐욕'이라면 이 섬을 표현하는 단어는 '자유(freedom)'다. 섬 남쪽 '자유를 위한 루스벨트(Roosevelt for freedom)' 공원에는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두려움과 결핍으로부터의 자유가 새겨진 거대한 벽이 서 있다.

20세기 중반까지 범죄자·정신병자 섬

실리콘밸리가 캘리포니아 스타트업의 요람이라면 '자유의 섬' 루스벨트 아일랜드는 뉴욕 스타트업 생태계의 '뿌리'다. 뉴욕은 미국 '제2의 기술 혁신 도시'를 향해 뒤늦게 발걸음을 뗐지만, 불과 10여 년 만에 독자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를 자랑하게 됐다. 단지 세계 경제·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의 후광 덕택에 저절로 이뤄진 성과가 아니다. 1950년대부터 반도체와 첨단 산업 관련 인프라를 착실히 쌓아온 실리콘밸리에 비하면 10여 년 전의 루스벨트 아일랜드는 지리적으로 맨해튼에 가까울 뿐 아무런 첨단 시설이 없었다. 20세기 중반까지 이 섬은 중범죄자를 가두는 교도소, 천연두 환자와 정신병자를 격리하기 위한 특수목적 병원이 자리 잡은 '가고 싶지 않은 섬'이었다.

그야말로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고담시' 같던 섬이 달라지기 시작한 때는 2010년 무렵. 뉴욕 지도자들은 아파트나 상업 시설로 재개발하면 그야말로 '떼돈'을 벌 수 있는 금싸라기 땅을 뚝 떼내어 학교를 짓기로 했다. 실리콘밸리가 스탠퍼드대로부터 첨단 기술과 수준 높은 학생을 끊임없이 수혈받으며 성장했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명문대학 코넬(Cornell)이 손을 들어 코넬텍(Cornell Tech·코넬 공대) 캠퍼스를 내겠다고 자청했다. 그러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바로 이듬해인 2011년 사비 1억달러(약 1160억원)를 털어 첨단 기술로 무장한 '에마 조지나 블룸버그 센터'를 짓고 통째로 코넬텍에 기증했다.

2017년 코넬텍 개교식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지역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우리는 기술 경쟁에서 지고 있었다. 우리가 경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반성하며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민주당 소속이었던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850만 뉴욕 시민을 대신해 전(前) 시장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공화당 소속이었던 블룸버그 전 시장의 결단을 칭찬했다.

월스트리트 자금 풍부해 창업 천국

1950년대 미국 최대의 제조업 도시였던 뉴욕은 주력이었던 의류 산업이 침체하자 금융업을 일으켜 세계 최고가 됐다. 우수한 교육 기관에서 나온 전문 인력이 학생과 교수 구분할 것 없이 창업에 도전하고, 이들이 가진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상천외한 기법을 막대한 자본이 지원하는 선순환 생태계가 뉴욕이 꿈꾸는 혁신 성장의 미래다. 코넬텍에 대한 뉴욕시의 투자가 끝나는 시점은 2043년. 30년 후를 내다본 중장기 투자다. 뉴욕시는 코넬텍이 230억달러 규모의 경제 가치를 창출하고, 코넬텍에서만 최소 8000여 개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뉴욕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지원 기관) 햇지메모스리비의 창업자 올리버 리비는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루스벨트 아일랜드는 외식·교육·예술·패션처럼 대도시다운 다양한 산업 기반을 끼고 있고, 가능성이 보이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는 월스트리트 액셀러레이터들의 관심도 뜨겁다"며 "꼭 IT 관련 기술을 가진 예비 창업자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시장과 틈새시장을 노리는 창업자들이 자유롭게 스타트업을 시작할 만한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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