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한명 없이, 대기업에 밟히고, 미친 소리 들으며… 10전 11기

입력 2019.11.08 03:00

[Cover story] 억만장자 존 오린저와 실리콘앨리

뉴욕 실리콘앨리 첫 1조원 부자 존 오린저

존 오린저의 연봉은 1달러다. 돈을 벌어도 셔터스톡에 다시 투자해 회사 키우기에 올인하고 있다. 투자를 받는 것보다 자체적으로 매출 내는 것에 집중해 회사를 키우고 있다.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존 오린저 셔터스톡 창업자를 억만장자로 만든 셔터스톡의 핵심 사업은 사진·이미지 콘텐츠 판매다. 자신의 사업을 알리려 직접 마케팅 이메일을 쓰던 와중에 '값싸면서도 쓸 만한 사진' 구하기가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는 것을 느낀 나머지, 아예 직접 사진·그래픽을 제공하는 회사를 만들기로 했던 것이 출발점이다.

오린저는 디지털카메라가 급속히 확산하는 데 주목했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디지털 파일로 올리고, 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사갈 수 있게 플랫폼을 만들었다. 다만 콘텐츠 소유권을 직접 보유하지는 않는 사업 모델을 택했다. 언뜻 보면 간단해보이는 비즈니스 모델이지만 당시로서는 정액 구독 방식으로 싼값에 사진을 구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의 수요를 유일하게 충족하는 기업이었다. 그래서 사진·이미지 판매 공룡업체인 '게티 이미지'가 독점하다시피 한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대기업이 안 하는 아이템을 잡아라

―창업을 여러 번 했는데, 셔터스톡 창업 이전의 신사업들은 왜 실패했다고 생각하나.

"대부분 대기업의 진입으로 갑작스레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한때 인기를 끌었던 팝업 차단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팝업 차단기를 삽입해 배포하면서 수요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말 하루아침에 망해버렸다. 통계적으로 볼 때 당신의 사업 목표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셔터스톡을 시작할 때도 실패를 각오하고 도전했다."

―실패의 경험에서 뭘 배웠나.

"우선, 사업 아이템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대기업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분야는 곤란하다. 애당초 사진 매매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나가다 보니 상당수 소비자가 평범한 사물 이미지를 찾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뉴욕시를 돌아다니며 관광객이 찍는 멋진 이미지와 정반대의 일상적인 풍경을 담아냈다. 대기업이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의외로 아닌 분야도 꽤 있다. 또 누군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기술만으로는 장기적인 생존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셔터스톡의 사진 검색 효율성은 다른 어떤 기업도 모방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언제를 전환점이라고 생각했나.

"도저히 내 힘만으로는 사업을 꾸리기 어려워 다른 직원을 고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사업이 실패할 때마다 툭툭 털어내고 항상 다음 기회를 엿보았는데, 실패를 여러 차례 감수한 끝에 사업이 커졌다고 생각한다."

뉴욕은 대형 금융사는 물론, 뉴욕타임스·NBC 등 주요 신문·방송사, 광고·미디어 기업, 출판사, 그리고 패션업계가 밀집한 '세계의 중심'이다. 셔터스톡이 창업 초창기에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달리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사진 자료를 판매할 고객사들이 바로 주변에 밀집해 있었던 덕분이다. 특히 출판사가 셔터스톡의 주거래처였다. 뉴욕시가 2000년대 중반부터 기존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결과, 실리콘앨리만의 독특한 스타트업이 성장할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뉴욕, 금융·미디어·패션 중심지 독보적

―왜 실리콘밸리가 아닌 뉴욕을 택했나.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왜 실리콘밸리 같은 '스타트업 공장'에 진입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물론,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도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뉴욕보다 엔지니어 구하기는 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리콘밸리는 뉴욕이 가진 금융·미디어·패션 중심지로서 독점적인 역할은 부족하다. 하물며 통근하기에도 실리콘밸리보다 뉴욕이 훨씬 더 편하지 않나."

―실리콘밸리에 창업해야 투자받기 더 쉬운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 투자를 받는 것을 매우 꺼렸다. 많은 스타트업이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는 것을 목표로 회사를 운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빨리 외부 자금에 의존할수록 빨리 망할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당장 500만달러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 기분이 째질 것이다. 또 시장에서 인정받았다는 착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벤처캐피털은 20개 회사에 투자해 1곳만 성공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당신의 비즈니스가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을 해준 게 아니다. 반면, 내 돈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면 마음가짐이 다르다. 이 돈이 절대 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내 모든 것을 걸고 죽기살기로 덤벼들게 된다."

―실리콘앨리의 인프라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던 일화가 있다면

"스타트업 초기에 무엇보다 더 중요한 점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해 줄 직원, 나의 부족한 면면을 채워 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뉴욕은 이러한 장점을 충족해 줄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인 곳이다. 예를 들어, 회사 창업 3년 차인 2005년 셔터스톡 사이트를 일본어로 번역할 일이 있었는데, 사람 구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근처에 좋은 대학과 기업을 다닌 인재가 많은 덕분이다. 개인적으로도 함께 작업하는 사진작가들의 열정을 보며 그들을 닮아가게 됐다."

―사무실은 실리콘밸리를 통째로 옮겨온 듯한 인상이다.

"샌프란시스코 스타트업의 개방적 문화와 장점만을 따오려고 했다. 직원들도 만족하는 듯하다."

구독 모델 처음 시작하자 "미쳤다" 반응

셔터스톡도 처음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딜레마를 해결해야 했다. 아무리 스타트업이라 해도 데이터베이스에 사진 파일이 어느 정도 쌓여 있어야 신규 고객을 끌어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첫 1년간은 오린저가 직접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 3만장을 찍어 올리는 방법을 택했다.

―셔터스톡은 동종 업계에서 구독 모델을 처음 시작했는데 반응이 어땠나.

"다들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곧 망할 거라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결국 잘됐다. 사진은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사업자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유료 사진에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을 봤다. 또한 사진 용도와 이용 기간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고 과금 체계도 매우 복잡했다. 이를 단순하게 만들면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창업 초기를 되돌아볼 때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생계를 꾸렸던 정도는 아니지만, 창업 초기에는 일이 정말 많았다. 사진을 찍는 것부터 고객 전화 응답 등 모든 일을 도맡았다. 셔터스톡 역시 하루에 10장, 20장 이런 식으로 찍어 올리면서 시작했다. 사업을 이것저것 벌일 땐 큰 구상 아래 4개 사업을 동시에 한 적도 있다. 공간이 부족해 집에도 컴퓨터 서버를 들여놨었는데, 그마저도 공간이 비좁아 지하실로 옮겨둔 서버가 전원 과부하로 폭발하고 나서야 사무실 확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새 사무실을 얻었다."

―연봉이 1달러라던데, 앞으로도 연봉은 안 받을 생각인가.

"그렇다. 사실 기업이 성장하면서 이미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연봉에 관심 없다. 내가 가진 자본도 재차 셔터스톡에 재투자하면서 기업을 성장시키고 있다."

―WEEKLY BIZ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행동으로 먼저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웹사이트 개발자든 사진작가든 누구든지 바로 시작하지 않는 데 대한 변명은 없다고 생각한다. 첫걸음을 떼는 데서 그 어떤 과정보다 많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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