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플라스틱기

    • 남성현 서울대 지구과학환경부 교수

입력 2019.11.08 03:00

지상 명강의: 미세플라스틱의 엄습

남성현 서울대 지구과학환경부 교수
남성현 서울대 지구과학환경부 교수
산업혁명 이후에 근대 과학은 인류에게 급격한 물질적 성장을 가져다줬다. 산업혁명 이전 전세계 물질적인 부(富)의 총량은 2000년 동안 1.5배 성장했는데 이후 250년 동안엔 그 증가 규모가 40배였다. 이런 급속한 성장 이면에는 필수적으로 지구환경 파괴라는 부메랑이 따라온다. 인간 삶이 중심으로 자리 잡는 '인간의 시대(Age of Humanity)'에 자연환경 오염은 피할 수 없는 부산물이다. 기후변화와 대기오염뿐 아니라 해양환경 오염도 최근 '플라스틱의 역습'이란 제목을 달고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쓰나미 쓸고간 잔해가 쓰레기로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와 2011년 동일본 지진 해일 당시 지역은 쑥대밭이 됐다. 그런데 바닷물이 빠져나간 직후 대지 위엔 잔해물이 많지 않았다. 다 어디로 갔을까. 대부분 바다로 다시 휩쓸려 갔고, 아직도 대양을 떠다니고 있다. 태평양엔 이런 육지에서 발생한 각종 쓰레기가 모인 거대한 '쓰레기 섬'이 곳곳에 있다. 우리나라 면적보다도 훨씬 넓은 쓰레기 섬도 있다고 한다. 이 쓰레기들은 해류를 타고 바다를 돌아다닌다. 해류가 약해지는 곳에서 쓰레기들이 모이면서 섬을 이룬다. 이 쓰레기 섬을 '새로운 대륙'이라고 부르는 것도 과장이 아닐 정도다.

그 쓰레기 섬 구성물은 90% 이상이 플라스틱이다. 나무나 종이 같은 쓰레기들은 분해가 되지만 플라스틱은 분해되는 데 400~1000년 걸리기 때문이다. 매년 바다에 새로 유입되는 폐플라스틱 규모는 800만t에 달한다고 한다. 해류 순환 구조에 따라 이 플라스틱 쓰레기는 북태평양, 남태평양, 북대서양, 남대서양에서 인도양까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쌓여 있다. 아직 어디에 얼마만큼 쓰레기가 쌓여 있고 떠다니는지 확실한 통계는 없다. 추정치만 있다. 이 쓰레기 섬은 해양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해양포유류 120여종 중 54%가 이 해양 플라스틱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이 플라스틱 양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후 산업화가 고속화하면서 급속하게 늘어났다. 늘어나긴 했지만 분해되는 속도는 더디기 때문에 엄청난 규모 플라스틱이 그대로 쌓이고 있어 커다란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학자들이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쳐 지금은 '플라스틱기'"라고 부를 정도다.
네덜란드 소년 보얀 슬랫이 주도한 바다 플라스틱 쓰레기 수거 프로젝트에 쓰이는 거대한 해양 울타리.
네덜란드 소년 보얀 슬랫이 주도한 바다 플라스틱 쓰레기 수거 프로젝트에 쓰이는 거대한 해양 울타리. /오션클린업
네델란드 소년이 주도한 수거

우리가 흔히 쓰는 페트병은 사실 80일 정도 지나면 잘 안 보일 정도로 쪼개진다. 그러나 크기만 작아졌지 미세 플라스틱은 그대로 남는다. 화장품이나 세안제, 치약, 연마제 등 일상 제품에 첨가하는 미세한 플라스틱 알갱이, '마이크로비즈(microbeads)'는 주로 폴리에틸렌이나 폴리프로필렌, 폴리스티렌 같은 석유화학 제품이 원료다. 크기가 작다 보니 정수기 여과 시스템도 쉽게 통과한다. 이런 마이크로비즈는 하수처리장에서도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바다로 흘러간다. 이런 미세플라스틱을 물고기나 플랑크톤이 먹고, 다른 큰 물고기가 이걸 잡아먹으면서 계속 올라가다 보면 가장 상위 영양 단계 먹이사슬 정점에 있는 인간 밥상까지 미세 플라스틱이 올라오는 셈이다. 하와이 바다에서 작은 생물들 창자를 갈라보면 플라스틱 조각들이 수천 개가 나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네덜란드 16세 소년 보얀 슬랫(Slat)은 다이빙을 즐겼는데 하루는 바다에 너무 쓰레기가 많아서 이걸 어떻게 해보겠다고 행동을 구상했다. 태평양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오션클린업(The Ocean Cleanup)'의 출발이었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후원금이 몰려들면서 8년 뒤 그는 4000만달러 기부금을 토대로 본격적인 바다 청소에 나섰다. '오션포스원(Ocean Force One)'이란 탐사기까지 띄워 태평양 구석구석을 돌았다. 대한해협에 있는 대마도까지도 왔다고 한다.

오션클린업은 배를 이용해 바다에 길이 100㎞, 높이 3m U자형 울타리를 치고 해류에 떠밀려서 바다 위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은 다음 수거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원형 울타리 밑으로 생물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아래쪽은 비워둔다. 플라스틱은 못 빠져나가고 걸리게 하면서 바다를 끌고 다닌다. 아주 오랫동안 그대로 둬야 하기 때문에 배 동력은 태양열이나 태양에너지를 이용해서 자가 발전하도록 하고,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이면 한꺼번에 모아 재활용센터에 가지고 가서 판다는 사업 아이디어까지 첨가했다. 5년 내에 해양 쓰레기 725만t을 걷어올리겠다는 계획까지 공개했다. 쓰레기 길이로 계산하면 72억5000만㎞에 해당하는 규모다. 실효성 논란에다, 플라스틱 생산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지만 어쨌든 눈여겨볼 만한 움직임이다.

국제 민관 협력 통해 해소해야

전 세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규모
지구 자원은 유한하다. 인구 증가나 대도시화로 물이나 에너지, 식량은 갈수록 부족 사태에 시달리고 있다. 물은 그중에서도 핵심이다. 석유야 안 쓰고 다른 에너지원을 찾으면 그런대로 해결할 수 있지만 물은 대체 불가능하다. 이미 같은 양을 비교할 때 우리는 생수가 기름보다 비싼 시대에 살고 있다. 물을 많이 쓰는 분야는 농업이며 다음은 자원 개발이나 발전용 냉각수다. 에너지 수요가 2050년에는 2005년 대비 1.6배 늘어난다고 하면, 물이 그만큼 더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30년쯤에는 전 세계 담수의 40%가 부족하다는 관측도 있다. 물을 둘러싼 분쟁이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21세기에는 물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다"면서 "석유 전쟁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바다는 그런 의미에서 소중한 자원의 보고다. 해수담수화 기술로 물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풍부한 수산물이나 심해 광물 같은 미지의 자원도 가득 품고 있는 영역이다.

지난 2월 한국이 필리핀으로 불법 플라스틱 쓰레기 6500t을 수출하려다 국제적인 눈총을 받은 바 있다. 그린피스가 한국발 불법 수출 플라스틱 쓰레기 방치 현장을 조사하러 오겠다고 나서며 소동도 일었다. 지난해 4월 중국이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중단한다고 하면서 수거 업체들이 쓰레기 수거를 거부했다. 그 결과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면서 생활 쓰레기 문제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잠시 있었다. 그러나 그때 잠시 반짝했을 뿐 거대한 인식의 전환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장 우리 생활 주변에서 심각한 고려 없이 쓰는 플라스틱용품에 대해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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