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A는 쿨(Cool)함의 상징이 되며 전례없는 수직 성장을 이어가고 있고, 브랜드 B는 하루가 멀다하고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 B는 6개월 동안이나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을 지켰던 책과 영화의 제목으로 나올 만큼 패션 업계의 상징이었으나, 지금은 파이낸셜 타임스와 같은 금융권 언론사의 입에만 오르내릴 뿐이다. 그것마저도 조롱조의 제목으로 나온 기사였다.
구찌(Gucci)와 프라다(Prada)의 이야기다. 이들의 운명은 어쩌다 이렇게 엇갈리게 되었을까?
케링 그룹과 프라다 그룹
구찌 그리고 케링 그룹
구찌는 글로벌 다국적 럭셔리 하우스인 케링 그룹(Kering Group)의 대표 브랜드이자 가장 많은 매출과 수익을 담당하는 기업이다. 그룹은 구찌를 포함해 보테가 베네타, 생로랑, 발렌시아가, 알렉산더 맥퀸, 브리오니 등을 소유하고 있다. LVMH Moët Hennessy Louis Vuitton SE(이하 LVMH), 리치몬트 그룹(Richemont)처럼 의류와 시계, 신발 등의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지주회사다.
케링 그룹은 딜로이트가 집계한 세계 럭셔리 마켓 매출 순위에서 LVMH, 리치몬트, 에스티 로더, 룩소티카를 이어 5위에 드는 럭셔리 파워 하우스다.* 또한 구찌는 케링 그룹의 대표 브랜드로, 2016년 케링 그룹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그룹 전체 매출의 35%를 담당하고 있다.**
* 관련 보고서: <Global Powers of Luxury Goods 2017> (Deloitte, 2017)
** 관련 보고서: <2016 Annual Report> Kering Group
고객층이나 가격대가 달라도 그룹 산하의 브랜드들은 파트너십이나 컬래버래이션 제품 출시 등의 전략적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해낸다. 구찌는 그룹의 얼굴로서 계열사의 벤치마킹 모델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프라다 그리고 프라다 그룹
프라다 그룹은 프라다를 포함해 미우미우, 처치 등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럭셔리 하우스다. 케링 그룹과는 규모에서 차이가 있지만, 프라다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임은 반문의 여지가 없다.
현재는 프라다 가문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와 그의 남편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가 공동 대표를 맡고 있고, 미우치아는 크리에이티브도 총괄하고 있다. 그룹의 세계 럭셔리 매출 순위는 17위로, 그중 프라다가 그룹 전체 매출의 80.5%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그룹의 전략적인 측면이 상당 부분 프라다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을 의미한다.
프라다 그룹이 공개한 프라다의 2016년 매출액 규모는 약 31억 유로(약 4조 1천억 원)*, 구찌의 매출이 같은 해 44억 유로(약 5조 8천억 원)다. 규모 면에서 두 회사는 경쟁 구도를 그리고 있다.
* 출처: <2016 Annual Report> Prada Group
구찌의 '놀라운 변화'
It's gucci
미국에서 10대와 20대들이 즐겨 쓰는 속어다. 무언가가 쿨하게 느껴지는 것을 표현할 때 쓴다. 구찌라는 브랜드는 패션을 넘어 힙(hip)하고 쿨한 사람들을 위한 대명사가 되었다.
영국 패션 검색 엔진인 리스트(Lyst)는 '2017 가장 핫한 브랜드' 1위로 구찌를 선정*했다. (케링 그룹의 다른 브랜드인 발렌시아가는 2등을 차지했다.) 해당 사이트에서 소비자들은 신발이나 드레스 보다도 '구찌'를 더 많이 검색할 정도로, 2017년은 구찌의 해였다.
* 관련 기사: Gucci or Balenciaga: Which Was the Hottest Fashion Brand in 2017? (BoF, 2018.1.29)
섹시한 이미지로 브랜드의 재기를 한 차례 성공시켰던 디자이너 톰 포드가 구찌를 떠난 후, 브랜드는 11년 동안 눈에 띄는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도태된 브랜드로 치부되었다.
2015년 구찌는 새로운 리더십을 맞이했고, 수많은 언론사들은 이를 '도박'이라 칭하며 반신반의 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상황은 역전됐다. 언론사들은 '놀라운 변화(striking transformation)'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기 시작했다.*
* 관련 기사: The New CEO Behind the Gucci Moment (WSJ, 2015.11.4)
구찌는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되는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여러 기관들의 리포트와 각 그룹의 실적 발표를 위한 컨퍼런스 콜(earnings call), 연간 보고서, 기사 등을 참고하고, 여기에 개인 견해를 더해 정리해 보았다.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비즈니스 측면을 다루고자 노력했다.
마르코 비자리의 승부수
변화의 바람
구찌의 로고가 촘촘히 수놓아진 가방과 모자는 어느 순간 소비자들에게 외면 당하기 시작했다. 의류에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던 중국 고객들조차 점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2014년을 기점으로 루이뷔통, 토리버치와 같이 로고백 만으로도 선전하던 브랜드들은 이런 안일한 디자인을 버리고, 좀 더 오리지널에 근접한 디자인을 선보이려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적나라한 아이템들로 브랜드 가치를 소비하기보다, 패션 하우스로의 정체성에 집중한 것이다.
구찌의 운영 체제가 바뀐 2015년 1월은, 소비자가 무언가 신선하고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있던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많은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소비자들이 럭셔리 하우스에 새로운 핸드백과 가죽제품을 기대하고 있다고 예측 했다.
* 관련 기사: Gucci Picks Alessandro Michele as Its Next Creative Director (NYT, 2015.1.21)
경제흐름 역시 2008년 이후의 경제 침체에서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되던 단계였다. 이를 거시적으로 볼 수 있는 지표는 미국 연방준비이사회(FRB)가 조정하는 금리일 것이다. FRB는 2014년 10월에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럭셔리 굿즈의 소비도 점차 늘고 있었다.
세계는 자본(capitalism)에서 '재능(talentism)'으로 움직이고 있다.
- 클라우스 슈밥, 다보스포럼 의장
디자인보다도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 감각
2015년 1월, 구찌의 CEO로 기용된 마르코 비자리(Marco Bizzarri)는 디자인을 공부한 적도, 직접 해본 적도 없는 경영 컨설턴트 출신이다. 지금은 액센츄어로 잘 알려진 다국적 컨설팅 기업 앤더슨 컨설팅에서 금융기업들의 컨설팅을 담당했던 비즈니스맨이다. 비자리는 2005년 스텔라 매카트니의 대표이사(CEO)로 케링 그룹에 입사했고, 그 이후 보테가 베네타의 CEO를 맡았다.
컨설턴트 출신이니 그가 깜짝 놀랄만한 솔루션을 제시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 컨설턴트가 제시하는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단순하다. 어쩌면 클라이언트가 이미 알고 있는 이슈일수도 있다. 그러나 간단한 것들이 쌓여 큰 문제를 만들고, 그것은 난국으로 이어진다. 2015년부터 비자리는 그런 작지만, 큰 문제로 귀결되는 것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빠른 의사 결정
빠른 의사결정은 CEO의 중요한 역량 중 하나다. 비자리는 대부분의 결정을 신속하게 처리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하는 파격적인 인사도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아 결정했다.
비자리와 미켈레는 로마에서 진행한 사내 행사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수많은 언론사와 패션업계 인사들이 입을 모아 미켈레의 기용을 '도박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외부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할 수도 있었고, 한 번 브랜드를 경험해본 톰 포드를 기용해 리스크를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 관련 기사: Marco Bizzarri of Gucci remodels fashion for Instagram generation (FT, 2017.3.5)
스케일 있는 업무를 해본 적이 없는 미켈레를 발탁한 것은 비자리가 자신의 직감에 대한 확신이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는 어떻게 미켈레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을까? 사실 그의 혜안은 그룹 산하의 럭셔리 브랜드를 두루 경험하며 길러졌다. 그룹 경영진의 신임 아래 구찌를 제외한 브리오니, 보테가 베네타, 스텔라 매카트니 등을 관리해왔다. 보테가 베네타의 경우엔 최고의 장인 중심 브랜드로 탈바꿈시키고 매출을 두 배나 끌어올리는 등 화려한 경력도 있다.
유통채널 정리
취임 2개월 후부터 비자리는 구찌가 너무 많은 매장들을 열고, 유통 채널 또한 아무렇게나 고르는 것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220개나 되는 매장을 열었다. 심지어는 메이시스와 같은 중저가 백화점*에서도 팔았다.
* 아울렛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미국 내에선 럭셔리 이미지가 없다.
또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지아니니가 디자인한 스토어 컨셉을 500개가 넘는 매장에 모두 적용하는 고비용의 계획까지 있었다. 비자리는 여기저기 뻗쳐있는 유통 채널을 정리하고 핵심 유통채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백화점 사장들과의 면담 및 자사 스토어를 방문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비자리의 전임 CEO였던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Patrizio di Marco)는 거의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 관련 기사: Fashion Executive Sets About Fixing Gucci (WSJ, 2015.2.25)
그는 대형 유통 채널인 삭스 피프스 애비뉴, 버그도프 굿맨은 물론이고 새로운 채널에도 힘을 쏟았다. 그동안 브랜드 가치가 희석될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관계를 끊어가고 있던 소규모 독립 편집숍들과의 관계도 부활시켰다. 포티파이브텐과 같은 작은 편집숍에게도 구찌의 컬렉션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비자리 측근들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는 굉장히 의지가 강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비자리는 미켈레와 함께 구찌의 브랜드, 마케팅, 컨셉, 그리고 회사의 가치관과 문화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케링 그룹의 회장인 프랑수아 피노(Francois Pinault)는 그들이 발탁되고 나서 얼마 안 가 이렇게 말했다.*
* 관련 기사: Reinventing Gucci (BoF, 2015.9.22)
그들은 이미 구찌를 깊숙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브랜드의 아우라를 다시 회생시키고 성장 동력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구찌는 이미 성공적인 턴어라운드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라는 신성
구찌에게 2015년은 완벽한 티핑포인트였다. 무명에 가깝던 미켈레가 디자인과 브랜드를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뒤 브랜드는 대성공을 일구어냈다. 비자리는 패션 브랜드란 마치 축구팀과 같다는 점을 강조해 왔지만, 확실히 미켈레는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비교할 프라다에게 없는 '젊은 피'이기도 하다. 핸드백, 그리고 액세서리 부문을 담당하던 디자이너는 우연히 만난 경영진과 4시간이나 구찌의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그 토론에서 미켈레는
자신이 생각해 오던
구찌의 비전을
비자리에게 이야기했다스타 디자이너보다 구찌의 역사와 헤리티지, 브랜드만의 가치를 깊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찾던 비자리는 이 자리에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일주일 만에 새 컬렉션을 런칭하다
앞서 말했듯 비자리는 빠른 의사결정을 신봉하는 인물이며, 이를 조직의 강점으로 가져가고 싶어했다. 그가 취임했을 당시, 모든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브랜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런웨이와 매장에 주입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비자리는 미켈레를 고용하기 전에 이렇게 물었다.
5일 안에 남성 컬렉션을 런칭할 수 있나요?
미켈레는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후에 한 인터뷰에서 밝힌 사실이지만 비자리는 미켈레를 시험해보기 위한 질문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정신 나간 요구에 응할만한 미친 디자이너를 원했다고 말이다. 만약 못할 것 같다 했으면, 고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리고 미켈레는 실제로 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가 회사를 떠난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새로운 남성 의류 컬렉션(Fall 2015 Menswear)을 런칭했다.*
* 관련 기사: Gucci Picks Alessandro Michele as Its Next Creative Director (NYT, 2015.1.21)
미켈레의 크리에이티브
구찌는 패셔너블한 느낌(fashionableness)을 모두 상실했다.
비자리가 취임하면서 한 말이다. 패션 브랜드에게 '패셔너블함을 잃었다'라고 하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상황이니, 오히려 새로움을 부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미켈레는 부임하자마자 브랜드의 디자인을 재점검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냈다. 그는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보관해왔던 빈티지 의상들에서 영감을 받아, 구찌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였다. 괴짜스럽지만 쿨한 '긱시크(geek chic)'와 과할 만큼 장식적인 '맥시멀리즘((maximalism)'이 그의 새로운 스타일을 설명한다.
지아니니의 업적이라 부를 수 있는 '플로랄 프린트(Floral Print)' 라인을 정리하는 대신, 로맨틱한 꽃무늬를 혁신적인 방법으로 재해석했다. 진이나 가죽재킷 위에 자수를 놓는 과감한 방식이 그것이다. 그는 100년이 넘는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완벽하게 동시대적으로 풀어냈다.
구찌는 고객층이 젊어졌음을 직감했다
옴니채널, SNS, 스냅챗이 마케팅 화두가 된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그러나 2018년 NRF*에서도 여전히 리테일 브랜드들은 새삼스럽게 이러한 내용들을 반복한다. 이는 브랜드들의 변화가 생각보다 느리게 진행된다는 점을 반증한다.
* National Retail Federation. 미국의 리테일 산업과 관련된 기업 인사들이 모이는 컨퍼런스
구찌도 이 흐름에서 가장 앞서 나가지는 않았지만, 다른 럭셔리 브랜드들에 비해서는 흐름을 빨리 따라잡으려 노력했다. 비자리와 미켈레는 취임하자마자 디지털 전략을 손봤다. 취임 첫 해 새 웹사이트를 런칭하고, 이듬해인 2016년 유럽 및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했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젊은 층들이 브랜드에 관해 이야기하는 메인 커뮤니케이션 채널임을 인지하고 스냅챗, 인스타그램 같은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제품 가격을 내리지는 않되, 젊은 층에 어필하는 액세서리 아이템을 위주로 해당 채널의 콘텐츠를 기획한 것이다.
2017년 진행한 밈(Meme)* 캠페인이 대표적인 예다. 새로운 시계 라인을 홍보하기 위해 다양한 밈을 제작하고, 이를 #TFWGucci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SNS에 공개했다. 처음엔 럭셔리 브랜드의 이미지를 해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이 캠페인은 자그마치 1억 2천만 명에게 도달하는 경이로운 효과를 냈다.
* 이미지나 GIF에 자막을 입혀 위트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흔히 '짤방'이라고도 부른다.
유명 패션 블로그 하이스노바이어티(Highsnobiety)의 편집디렉터 지안 들리온(Jian DeLeon)은 구찌가 젊은 층과 소통하는 법을 터득한 것을 성공의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소셜 미디어 느림보가 명품 업계 중 스냅챗을 가장 앞서 사용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된 것이다.
* 관련 기사: 'Outstanding': Inside Gucci's ascent to record-breaking growth (Glossy, 2017.4.27)
제품 라인 정비
구찌는 먼저 제품 라인의 수와 재고를 대폭 줄였다.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넘어가며, 재고의 이월을 60% 가량 줄였고, 새로운 컬렉션도 21% 적게 냈다. 그리고 메인 카테고리인 가방, 신발, 기성복 컬렉션부터 새롭게 재해석했다.
미켈레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구찌의 컬렉션을 새롭게 해석하면서도, 브랜드의 뿌리가 되는 헤리티지를 절묘하게 오마주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롭게 나아가야할 구찌의 명확한 크리에이티브 비전을 선사했다. 그가 재해석한 프린스타운 로퍼나 디오니소스 백은 말그대로 없어서 못파는 초 히트 상품이었다. 미켈레의 컬렉션은 출시 이후 계속 할인대상 품목에서 제외되었다.
언제까지고 성장만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구찌는 지난 3년 간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향한 비전을 세울 수 있었다. 이 성공 스토리는 '100년 역사의 브랜드와 젊은 사상가의 혁신적인 비전이 결합한 예술'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발행일 : 2018.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