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회사 몬샌토 인수가 사업 다각화?… 제약 연구개발 강화 전략입니다"

입력 2019.10.25 03:00

바이엘 최고의료책임자(CMO) 마이크 드부아

약 성분이 크게 변하지 않으면서도 세월이 흐를수록 몰랐던 효능이 120여 년에 걸쳐 새롭게 밝혀지는 신기한 약이 있다. 독일의 세계적 제약·화학 기업인 바이엘(Bayer)의 아스피린이 그렇다. 전 세계 인류가 하루에 1억알을 복용하는 이 약의 효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 1897년 처음 나왔을 무렵에는 해열·진통제로 쓰였다. 1970년대에는 뇌졸중과 심근경색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이제는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 여기에 알츠하이머병 개선, 잇몸 질환 치료 효과도 있다는 보고까지 들린다. 현대의 만병통치약인 셈이다.

"올해로 아세틸살리실산(아스피린의 주성분) 첫 샘플이 나온 지 딱 122년 됐습니다. 아스피린은 의심할 여지 없이 바이엘의 역사와 전통, 혁신을 상징하는 대표 품목이죠. 아직도 전 세계에서 아스피린 관련 연구 논문이 매년 1500건 넘게 새로 나옵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마이크 드부아(Devoy) 바이엘 의료최고책임자(CMO)는 바이엘의 혁신을 언급하면서 수많은 신약 이름을 뒤로하고 아스피린 이름부터 꺼냈다. 아스피린은 사실 이전에 없던 약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낸 신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의료 목적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희귀했던 살리실산 성분을 화학적 방식으로 대량생산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낸 사례에 가깝다.

남들이 놓친 틈을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는 바이엘의 사운을 바꿔놨다. 1863년 창업 이후 30년 넘게 염료 회사로 잔뼈가 굵었던 바이엘은 아스피린 탄생을 기점으로 세계적 제약사로 발돋움했다. 드부아 CMO는 "'끊임없이 혁신하라'가 바이엘의 생존 철학"이라며 "우리 제품은 우리가 제일 잘 안다는 자만심을 버리고, 확실한 전문성이 보인다면 어떤 외부 자원에도 권한을 위임해 혁신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몬샌토 인수는 의약품 응용 가능성 때문

바이엘 최고의료책임자(CMO) 마이크 드부아
혁신을 강조하는 기업은 제약 사업 분야에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과감히 실행에 옮기는 기업은 많지 않다. 바이엘은 2016년 이후 올해까지 줄곧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제약 회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6년은 바이엘이 세계 최대 종자(種子) 회사 미국 몬샌토(Monsanto)를 660억달러에 사들인 때다. 이 파격적 인수로 바이엘은 기존 농약·비료 분야에 이어 종자 분야까지 진출, 농화학 3대 부문을 모두 아우르는 세계 최대 농화학 기업으로 도약했다. 드부아 CMO는 "몬샌토 인수는 단순히 농화학 부문에서 점유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아니다"라며 "몬샌토가 확보한 종자 정보를 분석해 각 품종에 최적화된 성분을 적용하는 법을 익힌 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의약품이나 전문의약품에 이 기술을 응용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종자 산업에 독자적인 기술을 보유한 몬샌토가 가진 창의적인 연구 방식을 옆에서 관찰하면서, 공동 프로젝트 같은 방식을 통해 제약 사업에서 놓친 틈새시장을 파고들겠다는 것이 바이엘의 큰 그림이다.

경쟁사 보다 연구개발비 4배 투입

바이엘 최고의료책임자(CMO) 마이크 드부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바이엘 크롭사이언스(농화학) 부문 연구소에서 연구원이 제초제 대체 성분을 조사하고 있다. / 블룸버그
바이엘 최고의료책임자(CMO) 마이크 드부아
드부아 CMO는 제약 업계 경쟁 기업인 글락소그룹을 거쳐 2014년부터 바이엘 제약 사업 전략을 총괄하는 CMO 자리에 올랐다. 그가 제약 사업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한 이후 바이엘은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Eylea)'와 뇌졸중 예방에 쓰이는 항응고제 '자렐토(Xarelto)' 같은 히트 상품을 배출했다. 이 두 제품은 글로벌 전문의약품 시장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베스트셀러다. 성공 비결을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답했다. "끊임없이 새 치료법이 등장하는 제약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는 가장 강력하고 믿을 만한 요소는 압도적인 연구·개발(R&D) 능력입니다. 우리는 2014년 이후 매년 최소 35억유로(약 4조5000억원)를 연구·개발에 쏟아부었습니다."

글로벌 거대 제약사들은 신약 한 종류를 내놓기 위해 평균 13년에 걸쳐 평균 10억달러(약 1조1700억원) 정도를 쏟아붓는다. 그런데도 신약이 출시에 성공하는 확률은 5% 남짓하다. 시장에 나왔다 할지라도 신약에 대한 특허 기간(통상 10~15년)이 만료되면 복제약이 쏟아져 살벌한 이전투구가 벌어진다. 최근에는 재정 악화에 시달리는 선진국 정부들이 건강보험 지출을 대폭 줄여 약값이 낮아지고, 경기 침체 영향으로 약품 소비까지 줄었다. 이런 가운데 바이엘은 오히려 경쟁 제약사 평균의 4배 가까운 돈을 쏟아가며 연구·개발에 올인하는 역발상을 했다는 것이다. 바이엘은 지난해 전체 직원 가운데 10%가 넘는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지만, 연구·개발 인력과 예산은 전년보다 늘렸다.

드부아 CMO는 "환자 건강 상태나 전자 의료 기록, 건강 보험 청구 내용을 포함해 의료 분야에서 나오는 빅데이터가 하루에 7억테라바이트에 이른다"며 "이 데이터를 익혀서 완전히 생산적으로 활용하려면 인공지능(AI)과 머신 러닝에 대한 연구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 다각화해도 기본은 역시 제약

제약 기업은 최종 고객인 환자가 약을 계속 복용하고 '1등 브랜드'로 알아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 바이엘은 본사가 자리 잡은 독일 레버쿠젠 인근 자체 연구소와 바깥의 병원·대학·연구소·벤처기업은 물론 환자와 경쟁사까지 모두 협력 파트너로 삼고 있다. 초기 연구 단계 대학부터 첨단 혁신 기술 연구소, 빠르게 임상 결과를 수집할 수 있는 환자까지 촘촘하게 뻗친 문어발식 연결 고리는 힘의 원천이다. 드부아 CMO는 "초기 임상 단계의 신약 후보 물질 개발부터 정식 치료제 투여까지 한 번에 이뤄지는 구조"라며 모든 이해 당사자들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수백 개의 '바이오 네트워크'는 연구·개발의 빈틈을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몬샌토와 같은 거대 인수합병 건에 가려 눈에 띄지 않았지만, 바이엘은 가능성이 보이는 협력 파트너를 직접 인수해 새롭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도 한다. 올해 8월 바이엘이 인수한 바이오 벤처 블루록세러퓨틱스가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2016년 바이엘과 생명과학 전문 투자사 버산트벤처스가 2억2500만달러를 초기 투자하면서 만들어진 조인트벤처다. 바이엘은 블루록 설립에 참여하면서 블루록 주식의 40.8%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한 재생의학 세포 치료제가 각광받기 시작하자 이 기술을 보유한 블루록세러퓨틱스를 아예 사버린 것. 유도만능줄기세포는 성인의 피부 세포를 유전자 조작으로 시간을 거꾸로 돌려 마치 배아 단계로 되돌아간 상태처럼 유도해서 만드는 줄기세포다.

드부아 CMO는 "농화학 분야와 서비스 부문이 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지만 바이엘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검토하면 힘을 쏟을 분야는 차별화된 전문 의약품"이라며 "유도만능줄기세포와 정밀 진단 시약 부문 연구·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Interview in Depth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