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임 했더니 힘이 마구 솟네" 세계 최초 VR 헬스장

입력 2019.10.25 03:00 | 수정 2019.11.03 15:17

美 '블랙박스 V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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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운동 하기 위해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착용한 모습. 보통 사용자는 작은 침실만 한 개인 부스에 들어가 헤드셋과 암밴드를 착용한 후 자신의 계정에 로그인한 뒤 가상현실 게임을 시작한다. ②헤드셋에 떠오르는 게임을 보면서 운동한다. ③운동이 끝나면 운동 성과와 체력 수준이 VR 화면에 나타난다. ④라이언 델루카/블랙박스VR
우버·트위터를 비롯해 실리콘밸리 간판 기업 본사가 자리잡고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 마켓스트리트에 최근 색다른 헬스장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헬스장 안에 들어서면 벤치프레스, 아령 등 일반적인 헬스 기구는 보이지 않고, 14개 부스 안에 대만 전자업체 HTC의 '바이브VR(가상현실)' 헤드셋이 놓여 있다. 괴성을 지르며 무거운 운동기구를 드는 근육질 남녀 대신 후드티를 입은 사람들이 침실 크기 개인용 부스에 들어가 물안경처럼 생긴 헤드셋을 얼굴에 뒤집어 쓰고 팔밴드(arm band)를 착용한 채 몸을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땀을 뻘뻘 흘린다.

사용자가 VR 헤드셋을 쓰고 게임에 접속하면 핑크빛 크리스털 배경이 펼쳐진다. 게임을 시작하면 이내 가상현실 세계 속 적들이 화면 사방에서 달려나온다. 부스에 설치된 와이어를 당기거나 밀면 가상현실 게임 속 주인공의 팔도 그 강도로 굽혀지거나 펴지면서 적을 때려 쓰러뜨린다. 펀치 동작 등 다양한 몸동작을 활용해 게임 속 위기 상황에 대처해야 게임을 이어나갈 수 있다. 게임 난도가 높아질수록 동작 강도와 횟수도 많아진다. 30분간 치열한 사투 끝에 게임을 끝내면 왼편에 게임 속 캐릭터의 레벨이, 오른편에는 운동 기록이 나타난다.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이 헬스장은 최근 미국 대도시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VR 헬스장' 블랙박스 VR이다.

VR 기술에 운동 프로그램 접목

'VR 헬스장'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회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1호점'을 두고 있는 '블랙박스 VR'이다. 공동 창업자인 라이언 델루카(Deluca)는 20년 전부터 맨손으로 헬스 사업에 뛰어든 이 분야 베테랑이다. 1999년 헬스 보충재 판매 사이트 '보디빌딩닷컴'을 세워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속에서도 매년 5억달러 수익을 올리는 세계 최대 헬스사업 커뮤니티로 만들었다. 또 다른 공동 창업자인 프레스턴 루이스는 2008년 보디빌딩닷컴에 합류해 이 회사 해외 진출을 주도했다.

델루카와 루이스가 VR에 눈을 뜬 것은 2015년 무렵. VR 기술에 저항 훈련, 게임 법칙 등 고강도 유산소운동을 조합하면 전혀 다른 사업 모델이 탄생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듬해 이 둘은 보디빌딩닷컴을 떠나 바로 블랙박스 VR을 설립했다. 기존 헬스장 사업 모델을 뛰어넘어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게임과 VR 기술을 활용하면 헬스장 산업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델루카는 "일주일에 세 번만 체험해봐도 충분히 효과를 체감할 수 있어 샌프란시스코를 넘어 해외 진출도 모색 중"이라면서 "헬스 트레이너가 필요 없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게임에 열중하면 어느새 '몸짱'

VR 헬스장이 가진 최대 장점은 지루할 수 있는 운동을 흥미롭게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게임을 즐기면서 몸을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운동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설명이다. 게임 안에서는 무기를 던지는 동작이 실제 벤치프레스와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델루카는 "운동을 하는 건 힘들고도 지루한 과정이지만, 우리는 평생 우리 몸을 관리해야 한다"며 "VR 기술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게임에서만큼 현실 생활에서도 자신감 있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설명한다.

물론 단순히 게임 화면만 띄운다고 능사는 아니다. 적절한 유산소운동과 근육운동을 조합해야만 운동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회사는 행동심리학을 응용한 애플리케이션으로 사용자가 얼마만큼의 칼로리를 태웠는지, 어느 부위의 근육운동을 했는지 정교하게 분석하고 이를 사용자의 운동 게임에 반영한다. 자신이 원하는 강도로 모든 신체 부위를 단련할 수도 있다. 블랙박스 VR은 이러한 과정을 '피드백 루프'라고 부른다. 분석 과정은 복잡해 보이지만 사용자는 이두, 삼두, 가슴 근육을 걱정하는 대신 게임에만 집중하면 된다. 여기에 각각의 개인 부스가 설치돼 있어 운동 초보라도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운동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델루카는 "블랙박스 VR의 주요 차별화 요소 중 하나는 동적 저항 기계인데, 가상현실에서 실제 저항을 경험하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블랙박스 VR에서 사용자들이 우려하는 요소 중 하나는 위생에 대한 문제. VR 헤드셋을 여러 사람과 같이 쓰기 때문이다. 또 땀을 흘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열기가 시야를 방해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있다. 이에 대해 프레스턴은 "각 헤드셋에 커버를 씌우고 있고 나노테크놀로지 코팅과 압축 공기 발파 기술, 그리고 UV-C 조명을 응용해 헤드셋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헤드셋에 땀을 흡수하는 특수 밴드를 부착하고 부스 안에 냉각 팬을 설치해 운동 중 얼굴에 땀이 흐르는 걸 최대한 억제하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요 고객

VR이 다방 면에서 활용도가 큰 만큼 이를 운동에 접목하는 신생 기업도 속속 늘고 있다. 독일 스타트업 이카로스는 최근 운동을 겸할 수 있는 VR 경주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빠르게 회전하는 경기장에서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움직이다 보면 저절로 근력 운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 이카로스가 VR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 배경이다. 이를 위해 이카로스는 폭 1m, 길이 2m 크기 VR 운동 장치를 만들었다. 사람이 이 장치에 엎드려 손잡이로 좌우 방향을 조절하며 균형을 잡다 보면 저절로 근력 운동을 하게 된다. 이카로스는 하루 45분씩 1주일에 2회 정도 타면 충분한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세계 최초로 실내 자전거에 VR 기술을 적용한 버줌 바이크는 사용자에게 VR 헤드셋과 실내 자전거를 통해 실제 야외 사이클링 같은 경험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으로 고속 성장 중이다. VR 헤드셋과 연결된 기기로 VR 영상을 보며 실내 자전거를 타는 방식이다. 중국의 광저우 무비파워 전자테크놀로지도 VR 영상을 이용한 실내 자전거를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두 업체 모두 일반 실내 자전거와 달리 다양한 영상 체험과 게임 같은 진행을 통해 단조로운 운동에서 벗어나 재미와 운동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홀로디아는 VR 실내 자전거와 로잉 머신을 개발하여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주고 있다. 사용자들은 고글 착용과 동시에 바다, 강, 해변 등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VR 헬스장' 주요 고객층은 밀레니얼 세대다. 이들은 기성세대보다 건강관리에 돈을 2배 이상 쓰는 핵심 고객이며 필라테스나 요가, 스피닝 등 한 달에 20만~30만원씩 내는 고급 피트니스 산업을 연간 60~70%씩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미 경제전문매체 마켓워치는 지난해 미국인이 헬스장 회원비로만 약 19억달러(약 2조2000억원)를 썼다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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