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대신한 '쟁기 끄는 말' 리더십… 팀 쿡, 애플 기업가치 3배로 키워

    • 이지훈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입력 2019.10.25 03:00 | 수정 2019.10.30 21:37

[이지훈의 CEO 열전] (10) 애플의 팀 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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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 애플 CEO. 스티브 잡스 전 CEO를 넘어서는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 블룸버그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사람은 애플 제국의 종말로 받아들였다. 새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 잡스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팀 쿡은 애플의 역대 CEO 여섯 명 중 최고임을 실적으로 입증했다. 애플은 2018년 사상 최초로 1조달러 기업 가치를 가진 회사가 됐다. 잡스가 서거한 2011년엔 그 3분의 1이 안 되는 3000억달러였다. 쿡은 또한 애플워치와 에어팟, 애플페이를 통해 스티브 잡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서도 혁신 제품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물론 아이폰에 필적할 제품을 내놓거나 대형 기업 인수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평가절하하는 의견도 있다. 쿡은 잡스의 비전을 이어받았지만, 잡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 스스로 "나의 모든 것을 회사에 쏟아붓고자 노력하겠지만, 결코 잡스와 같아지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지훈 교수 세종대 경영학부
이지훈 교수 세종대 경영학부
팀 쿡 리더십은 경영 사상가 짐 콜린스가 말한 '단계5의 리더십'으로 설명할 수 있다. 콜린스의 연구 결과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회사로 도약한 기업의 공통점 중 한 가지는 중대한 전환기에 단계5의 리더가 회사를 이끌었던 점이었다. 겸손하면서도 의지가 굳고, 변변찮아 보이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이중성을 갖춘 리더를 말한다.

드러나진 않아도 없으면 안되는 존재

팀 쿡이 바로 그랬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언제든 의지가 되는 사람이고, 조직에 없으면 안 되지만 있을 때 별로 티 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CEO가 되기 전 맡아온 업무는 빛나는 일이 결코 아니었다. 협력업체를 관리하고, 부품이 제때 공급되도록 하고, 재고를 줄이는 것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쿡은 그 일에 헌신적이었고, 잡스가 만든 놀라운 제품 이상으로 회사에 큰 기여를 했다.

쿡이 합류하기 전 애플은 운영 관리가 최악이었다. 파워맥이란 빅히트 상품을 내놓고도 모뎀과 같은 부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생산이 수요를 따르지 못했고, 고객은 주문하고 두어 달을 기다려야 했다. 반대로 수요 예측이 잘못돼 엄청난 재고가 창고에 쌓이기도 했다. 그러나 쿡이 애플에 합류하고 7개월 만에 재고가 30일치에서 6일치로 줄어든다. 그는 생산의 대부분을 능력 있는 외부 업체에 위탁하는 한편, 전사적 자원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부품 업체와 조립 공장, 매장의 IT 시스템을 서로 연결했다. 그래서 부품은 필요할 때만 공급 업체에 주문했고, 제품은 즉각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정도만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사업 운영이 개선되면서 쿡은 애플의 흑자 전환에 기여하는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이지훈의 CEO 열전]
쿡과 함께 일했던 많은 이가 그의 노동 윤리를 높이 평가한다. 쿡은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하며, 새벽 3시 45분에 이메일 답장을 보내기도 한다. 그가 애플에 입사하기 전 IBM의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크리스마스 휴가 시즌이었다. 누구나 새해까지 일주일을 휴가로 쓰기를 원했다. 공장장이 자리를 비워야 해 대신 자리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팀 쿡이 자원했다. 연말에 급증하는 컴퓨터 수요를 맞추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트레일러 트럭으로 동부 해안 선착장까지 제품을 실어 날라야 했다. 쿡은 자정까지 그곳에 나가 선적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관리 감독했다.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라 다른 사람은 머리를 쥐어뜯을 일인데도 쿡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모든 일을 처리했다고 한다.

쿡은 고향인 미국 앨라배마주의 오번대학을 졸업했는데, 그 대학 풋볼 코치가 작성한 '오번 신조'가 좌우명이 됐다. 거기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노동과 노력의 가치를 믿고, 정직과 진실을 믿는다. 그것이 없으면 동료로부터 존중과 신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질문으로 직원들의 최선 이끌어내

[이지훈의 CEO 열전]
쿡은 잡스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지만, 다른 방식으로 최선을 이끌어낸다. 질문이 그것이다. 한 직원은 그가 늘 10개의 질문을 던졌고, 그 10개에 대답을 잘하면 열 번을 더 물어봤다고 했다. 잡스는 현대 기업사 최고 혁신가였지만, 사실 CEO라기보다는 최고 제품 책임자에 가까웠다. 잡스는 묵묵히 궂은일을 맡아주는 쿡이 있었기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 혁신 제품을 개발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5단계 리더의 또 다른 특징은 카리스마보다는 높은 기준으로 구성원을 동기부여 한다는 점이다. 쿡은 애플을 포용성, 다양성, 프라이버시, 환경 이니셔티브 등 진보적 가치를 지닌 회사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직원들은 높은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 쿡은 "모든 것을 내가 접했을 때보다 더 낫게 만들어놓고 떠나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여기엔 제품은 물론이고, 환경, 노동 문제, 협력업체, 직원을 대하는 방식 등 모든 것이 해당된다.

쿡의 주도하에 애플은 거대한 태양열 농장을 짓는 등 재생에너지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했다. 2018년부터 세계 전역의 애플 시설을 100% 재생에너지로만 가동하고 있다. 또한 애플은 모든 제품을 재활용 재료로만 만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쿡은 조용한 리더이지만, 가치관에 해당하는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2013년 총기 난사 사건 때 치안판사가 용의자의 아이폰 정보를 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작해 달라고 요구하자 애플은 거절했다. 사법 당국은 그를 비난했고, 트럼프 대통령 후보는 애플 불매운동을 촉구했다.

그러나 쿡은 고객들에게 보낸 공개서한과 생방송 인터뷰를 통해 "만약 경찰관을 위해 매트 밑에 열쇠를 놓아둔다면 도둑들도 그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로 맞섰고, 제품에 프라이버시 보호 기능을 더욱 강화했다.

2014년 쿡이 게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한 것은 조용한 그의 성격에 비춰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든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프라이버시를 희생했다"고 말했다. 쿡은 남부 시골에서 조선소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성 소수자로 살았다. 그러면서도 겸양과 의지를 갖춘 5단계 리더십으로 기업 가치 세계 최고 기업을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 이상으로 훌륭히 이끌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세상엔 두 종류의 말이 있다. 쇼에 나가는 말과 쟁기 끄는 말이 그것이다. 쇼에 나가는 말만 리더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최고의 리더는 쟁기 끄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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