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위기 오고 있다는 거 아시죠?" 알파걸의 경고

입력 2019.10.25 03:00 | 수정 2019.10.29 13:17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신임 IMF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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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신임 총재는 취임 이후 “세계 경제가 동반 둔화 국면에 직면했다”며 주요국에 재정 지출 확대를 주문했다. /블룸버그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2%에서 3%로 낮춰잡았다. 2009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달 초 새로 취임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신임 총재 역시 취임 일성으로 경기 침체 발생 가능성을 언급했다. 지난 8일 취임 후 첫 연설에선 "올해는 전 세계 나라 중 90%가 저성장을 겪고 있다"면서 "세계경제는 '동시적(synchronized) 경기 둔화' 시기에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선 "무역 분쟁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자연재해 등 악재로 대규모 경기 침체(disruption)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경제의 양대 엔진인 미국과 중국이 강한 파열음을 내고 있는 가운데 게오르기에바 신임 IMF 총재가 1조달러 실탄을 가진 글로벌 금융시장 소방대 대장을 맡아 세계경제 무대에 얼굴을 내밀었다.
부채 과다기업 부도 경고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따르면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이달 1일 취임하자마자 내린 첫 지시는 '마이너스 금리 연구'였다. 세계경제가 '동반 침체'에 직면한 가운데 저금리 고착 상황이 이 경제 침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분석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또 무역 분쟁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그동안 우리는 무역 분쟁의 위험성을 말해왔지만 이제는 실제로 '통행료'를 내기 시작했다"며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 활동과 투자가 줄어들었고 서비스와 소비 분야도 곧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무역 갈등으로 전 세계 총생산(GDP)의 0.8%인 7000억달러(약 820조원)가 내년까지 증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제규모 세계 20위인 스위스 GDP 규모와 맞먹는다. 특히 대규모 경기 침체가 발생하면 19조달러에 달하는 기업 부채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주요국에 금융 안정성 강화에 나서라고 재촉하고 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이런 충고를 던지며 "1분 늦는 것보다 3시간 빨리 오는 편이 낫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종종 인용한다. 현 상황에서 거대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동시다발적 위기에 하루빨리 대응해야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 재정 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독일과 네덜란드, 한국 같은 나라가 사회 인프라와 연구개발(R&D)비에 대한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수요와 잠재 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구제금융 집행 미뤄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임 IMF 총재가 취임하자마자 그리스 부채 위기로 골머리를 앓았다면,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풀어야 할 난제는 아르헨티나 부채 위기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경제가 망가진 아르헨티나는 여러 차례 국채 상환에 실패하는 바람에 투자자의 신뢰를 잃었다. 막대한 부채와 치솟는 물가 등 경제가 망가진 상황에서 금융·외환 규제마저 섣불리 완화하는 바람에 전형적인 재정·외환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지난해 9월 IMF는 재정·외환 위기를 동시에 겪는 아르헨티나에 대해 총 570억달러 규모 조건부 구제금융을 해주기로 했으나, 아직 집행을 미루고 있다.

IMF는 정치 갈등을 줄이라면서 좌파 포퓰리즘 진영인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전 총리 측에 협력을 주문하고 있는데, 양측 경제 전문가들이 IMF 본부를 찾아 구제금융 이행 협상에 돌입했다. 아르헨티나가 IMF 구제금융을 받는 데 실패하면 국제금융시장에 미칠 파급 효과가 상당하다. 하지만 섣불리 구제금융에 나섰다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구제금융은 게오르기에바 신임 총재의 리더십을 판가름하는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IMF의 투표권 지분 조정 문제도 게오르기에바 총재에게 넘겨진 숙제다. IMF는 추가 자본금이 필요하고 중국은 증자 과정에서 출자금 비중을 높여 발언권을 더 가지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를 반길 리 없기 때문에 IMF가 중국 친화적 태도를 보일 경우 자본금 확보 자체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란 경험이 사고의 토양

게오르기에바는 불가리아 출신으로 금융 전문가였던 전임 총재들과 달리 개발·원조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온 경제학자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불가리아 국립세계경제대학(구 칼 마르크스 고등경제교육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영국 런던정경대(LSE),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영미권 학계에서 연구 경력을 쌓아왔다. 전통적으로 IMF 총재는 유럽 출신이,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 출신이 맡는다. 그래서 이번 IMF 총재 레이스에서 유럽 인사 가운데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 등이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EU 내부에서 서유럽과 남유럽 국가들이 갈등을 빚으면서 결국 '동구권 출신'의 인물을 뽑는 것으로 절충안이 마련됐다고 한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서구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생소했다. 생애 첫 은행 계좌를 만들었던 것도 영국에서 유학할 때였다. 1990년대 불가리아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면서 경제난에 빠졌을 때 개혁 정책의 대가로 IMF 자금을 지원받는 것을 보면서 국제기구에 발을 들이게 됐다고 회고한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1993년 세계은행에 입행했다. 이후 2010년 유럽연합 집행위 위원으로 국제 무대 리더군에 첫발을 디뎠다. 2014년부터 2년간 EU 집행위 부위원장을 지냈고, 2015년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뒤를 이을 여성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안토니우 구테흐스 현 유엔사무총장에게 밀려 낙마했으나 유엔사무총장 하마평에 오를 정도로 국제기구 인사들 사이에서는 명망이 높다. 그는 개발도상국 문제에 적합한 능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한 세계은행 직원은 "업무를 세밀하게 지시하는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다른 직원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한다"면서 "직설적이면서 억센 편"이라고 설명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가 주로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다 금융업계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2017년 세계은행의 2인자인 최고경영자(CEO)직을 맡으면서부터다. 올해 초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사퇴하자 4월까지 총재 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 테슬라의 전기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함께 '기후변화 글로벌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IMF가 불평등, 부패, 기후변화, 급격한 기술 변화 등 다양한 현안에 좀 더 집중할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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